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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워 바디'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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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워 바디'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노컷 인터뷰] 영화 '아워 바디' 배우 최희서-안지혜, 한가람 감독 ②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아워 바디' 주역들을 만났다. 배우 안지혜(맨 왼쪽)와 최희서(맨 오른쪽)가 한가람 감독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 영화 '아워 바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시나리오 보면서 이렇게 한 여성의 변천사, 변화 과정이 면밀히 드러나는 작품은 드물고 용기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 역할을 잘하면 저도 용기 있는 배우가 되겠다 싶었고,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최희서는 영화 '아워 바디'(감독 한가람) 언론 시사회 때 이 영화가 가진 '용기'를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아워 바디'는 8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지만 자꾸만 떨어져 더 이상 무너질 곳도 없는 30대 여성 자영(최희서 분)을 주인공으로 해, 달리기 시작하며 차츰 달라지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희서에게 이 영화의 '용기'에 관해 질문했다.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아워 바디'만이 가진 멋짐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워 바디'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한가람 감독도, '아워 바디'로 첫 주연을 맡은 안지혜도 각자 느낀 이 영화의 매력을 들려줬다.

    세 사람과 함께한 대화를 질문과 답 형태로 옮긴다.

    ▶ 한국사회를 사는 3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라서 그런가 공감 가는 대사가 많았다. 각자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무엇인가.

    최희서 : 저는 "조금만 더하면 날개를 달고 날아갈 텐데"라는 엄마(김정영 분)의 대사. 그걸 촬영했을 때 되게 슬펐다. 모녀가 서로를 아끼기는 하지만, 서로 생각하는 성공의 잣대가 다르고 잘 사는 삶에 대한 가치 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엄마 입장에서는 고시 공부를 포기하는 게 (딸에게) 행복한 삶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지만, 여태까지 해온 딸의 공부와 노력이 아쉬운 거다. 자영이도 엄마 말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고시 공부를 시작할 건 아니지 않나. 삶의 기로에 섰을 때도, 엄마가 "잘했어"라는 말 한마디 못 해주는 그 심정. 그래서 되게 슬펐던 것 같다. 울음을 참으면서 연기했던 장면이다.

    안지혜 : 저는 그… 자영 엄마의 말 중에 "나이 서른인데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라는 대사가 콕 와 닿았다. 저도 20대 중후반 때는 가족들이, 특히 언니가 되게 마음적으로 지원을 많이 해줬다. 도움도 많이 줬다. "열심히 해 봐라, 네가 좋아하는 거니까" 하면서.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20대 후반쯤에 언니가 "언제까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웃음) 그전에도 언니가 되게 걱정했겠지만 티를 안 내고 지원해줬다는 걸 그때 느꼈다. 나이가 차면서 앞이 안 보인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걱정돼서 언니가 티를 낸 거다. 숫자 '서른'이 코앞에 닿으니까, '나이 서른이 참 어른이구나. 뭘 보여줘야 하는 시기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다. 그 대사가 많이 와닿았다.

    '아워 바디'는 8년간 행정고시에 번번이 떨어지며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청춘 자영이 우연히 달리는 여자 현주를 만나 함께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 제공)

     

    최희서 : 저희 어머니도 거의 비슷한 말씀 하시는 것 같다. 딸들이 공감할 만한 대사가 많았던 것 같다. (웃음)

    한가람 감독 : 몇 개 있긴 한데 자영이 대사 중에는 "이것만 하면 세상에 못 할 게 없을 것 같다"는 것. 제가 운동 좋아하는 지인들과 같이 운동할 때, 저는 운동을 잘 못 해서 잘하는 분들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아니 이렇게 엄청나게 힘든 일을 하는데!' 회사 다니고 이런 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거다. 물론 회사에 다닐 땐 그게 아무 일도 아닌 게 아니지만. 사는 건 여전히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 꼽은 대사다.

    ▶ 자영은 8년 동안 고시 공부에만 매달리면서 지칠 대로 지친 상태고, 현주는 자기 삶에서 답을 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워 바디' 속 인물들처럼, 본인 삶에서도 자신을 압도하는 벽을 느낀 적이 있나.

    한가람 감독 : 이 영화 찍기 전에는 방송사 정규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스물아홉 살에 마지막 시험 떨어졌을 때 '이건 안 되겠구나', '이 길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안지혜 : 저는 운동을 하다가 연기 쪽으로 들어오면서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너무 낯설었고 적응이 안 됐다. 현장을 간다거나 사람을 만난다거나 이런 것들이 낯설고 너무 힘든 거다. '내 길이 아닌가 보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가 보다' 싶었고, (연기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느껴서 안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니다! 해야 하는구나. 연기 다시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그런 새로운 환경이 좀 힘들었다.

    최희서 : 저는 데뷔한 지 6~7년차 됐을 때 진짜 오디션에서 전부 떨어지고 소속사 미팅도 떨어졌다. '아무도 날 원하지 않는구나' 싶었던 시기가 진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때 저의 극복 방법은 연극을 자체적으로 제작해서 올리고 단편영화 찍는 거였다. 연기 활동을 계속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약간 돌파구였던 것 같다.

    ▶ 이렇게 다들 옆에서 보는데 말하기 좀 그럴 수도 있지만, 같이 작업해 본 소감을 듣고 싶다.

    안지혜 : 저는 희서 언니 옆에서 이렇게 보면서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계속 느끼는 것 같다. (웃음) 진짜로 너무 그런 것 같다. 촬영할 때도 사실 희서 언니 옆에 계속 있고 싶어 했는데 희서 언니가 잘 챙겨주셨다. 매 순간 너무 열심히 하시는 것 같다, 뭐가 됐든지. 그런 에너지를 옆에서 받으면 너무 좋다, 나도 같이 이 공기 안에 있다는 게. (일동 폭소) 진짜다! 그래서 희서 언니 계속 보고 싶고 많은 걸 배우고 싶다. 그리고 감독님은,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낯을 많이 가리시는 것 같다. 지나면서 그런 걸 느꼈다. 또 되게 정확하고 명확한 사람인 것 같다. 뭔가 아닌 것 같으면 다른 걸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고, 더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건데 귀여우시다. (웃음) 단계별로 느끼는 것 같다. 여성스럽고 되게 강하면서도 여린 사람이라는 걸 느낀 것 같다.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 제공)

     

    최희서 : 기본적으로 지혜가 갖고 있는, 운동을 오래 한 사람의 건강한 아우라가 좋았다. 현주라는 캐릭터는 되게 어렵다. 배우 중에서도 운동한 사람이 있지만 지혜 정도로 운동이 삶의 일부인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캐스팅도 당연히 오래 걸렸다. 지혜가 왔을 때 감독님이랑 저랑 '어디서 현주가 나타났지?' 하고 얘기했다. 그게 신기했다. 가끔 보면 기회가 그 사람의 맞춤옷처럼 딱 만날 때가 있는데, (이번이) 지혜한테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굉장히 열심히 하는데 그걸 내세워서 보이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되게 좋았다. 나를 좋아해 주니까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이 들었다. 감독님은 자영이랑 되게 비슷하다. 조용하고 감정적인 이야기를 잘하지는 않지만 되게 강단이 있는 사람이다. 체구가 작으심에도 불구하고 포스가 있다. 현장에 가면 감독님들은 다 포스가 있는데 그런 게 굉장히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왔다. 소신과 결단력이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다 보니까. 워낙 베테랑 감독님이랑 (작업)하다가 한 살 많은 여자 감독님이랑 하니까 다른 재미가 있더라.

    한가람 감독 : 저는 희서 배우는 되게 뭐랄까 의지가 된 면이 있었던 거 같다. 경험이 많다는 것도 그렇지만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정적이고 꼼꼼했다, 놓치는 부분이 없이 다 얘기해서,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의지가 되는 동료 같은 느낌이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은 그때는 저도 첫 촬영이라서 잘 챙겨주지 못했다. 내 코가 석 자라. (웃음) 편집하면서 생각했던 게 있다. (자영은) 몸을 만들어야 하는 거라서 식단(지키기)도 되게 어렵고 운동도 많이 해야 했다. 주인공이고 모든 씬에 다 나오는 데다가 되게 섬세한 감정 연기까지 해야 하는데, (그걸) 힘든 내색 없이 한다는 게 배우를 떠나서 인간적으로 멋있고 놀라웠던 거 같다. 지혜 배우 같은 경우는 '이 정도면 진짜 현주를 위해 태어났구나!'라고 생각했다. 준비된 상태였다. 몸이 주는 그 느낌도 되게 좋았다. 처음 오디션 봤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나자마자 같이 하자고 했다. 모니터로 보면서도 되게 많이 놀랐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 언론 시사회 때 '아워 바디'를 용기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좀 더 자세하게 들려줄 수 있나.

    최희서 : 예기치 못한 장면이 되게 많이 나온다. 스토리라인이 전형성에서 많이 벗어나고, 되게 새로운 시도인 장면이 많았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주제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데 비틀었고,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만들어서 개봉까지 시키는 것 자체가 한국영화 산업에서 되게 좋은 시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 있다고 느낀 건) 두 가지다. 전에 없던 소재를 연구하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 두 번째는 여성이 주연인 영화를 찾아보기도 힘든데, 살인 사건도 없고 귀신도 안 나오고 강간도 안 당한다는 거다. 어떤 사회적 이슈를 조미료처럼 막 뿌리지 않으면서, 평범한 여성의 섬세한 성장 과정을 다룬 영화라는 것. 앞으로도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완전한 확신이 들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앞으로 이런 영화 못 만난다는 생각이 확실히 있었다.

    '아워 바디'에서 자영 역을 연기한 배우 최희서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 한가람 감독에게도 묻고 싶다. 영화를 찍으면서 이건 빠뜨려선 안 된다 싶었던 게 있었나.

    한가람 감독 : 개봉을 앞두고 여러 얘기를 들었다. 내가 오히려 경험이 없고 학교(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다 보니까 진짜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걸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달리기가 중요하긴 하지만 ('아워 바디'가) 달리기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달리기는 하나의 소재였다. 제가 방황했던 서른 즈음에 동 세대 작가가 쓴 소설, 영화로부터 되게 위로받았다. 주인공이 잘 사는 게 아니고 뚜렷한 해답이 있지도 않았는데 (그들도) 이런 감정을 겪고 있다는 것만으로 되게 위로가 됐다. 나도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힐링이 있지도 않고 나도 해답을 줄 수는 없지만, 자영이를 통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보여줘 감정을 대변하길 바랐다.

    ▶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아워 바디'를 추천해 달라.

    안지혜 : 아, 제가 먼저 하겠다. (웃음) 주인공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보면 뭔가 힘이 불끈 솟는 느낌을 받는 거 같은데 저희 '아워 바디'가 그런 영화인 것 같다. 영화 감상하는 동안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할 거다. 가을의 시작을 '아워 바디'와 함께하면 좋을 것 같다.

    최희서 :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투성이인데 몸은 사실 뜻대로 이룰 수가 있는 거다. 달리기나 운동에 한 번도 도전해 본 적 없는 사람들도 이 영화 보면 공감할 것 같은데, 운동해 본 분은 더 공감할 수 있는, 정직한 몸에 관한, 앞으로도 보실 수 없는, 지금 놓치면 안 되는 영화다.

    한가람 감독 : 극장에서 만나요~ (일동 웃음) 이 영화는 진짜 두 번 보는 게 훨씬 낫다고 하더라. 한 번 보면 사실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고 내가 기대하던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 두 번 보면 낫다! (웃음) <끝>

    지난달 26일 개봉한 영화 '아워 바디'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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