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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유재명 "외로움을 가장한 추악함 보여주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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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트' 유재명 "외로움을 가장한 추악함 보여주고파"

    [노컷 인터뷰] '비스트' 한민태 역 유재명 ①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비스트' 한민태 역 배우 유재명을 만났다. (사진=NEW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비스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희 영화 매력을 마음껏 어필하고 싶은데 잘 떠오르지 않네요. 정말 좋았고요. 우리가 (이걸) 찍었는가 싶을 정도로 가슴 뻐근한 기분을 느껴요. 인물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처절한데, 공감 가기도 하고 이야기가 반전에 반전을 느낄 수 있어요. 영화를 직접 보신다면 그걸 알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말씀밖에 드릴 수 없네요."

    지난달 18일 열린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 언론 시사회에서 유재명은 영화 관전 포인트를 알려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사흘 후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막연함'이 있었다.

    '비스트'는 희대의 살인마를 잡을 결정적 단서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은폐한 형사 정한수(이성민 분)와 이를 눈치챈 라이벌 형사 한민태(유재명 분)의 쫓고 쫓기는 범죄 스릴러다.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재명은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선명하고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영화의 세계관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어느 정도까지 깊을지 잘 가늠되지 않았다고.

    자신이 맡은 민태 역시 속을 알 수 없어 어쩌면 의뭉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안개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유재명. '비스트'에 합류하게 된 이유가 더욱더 궁금해졌다.

    ◇ 막연해서 오히려 더 매력적이었던 '비스트'

    이날 기자들과 마주 앉은 유재명은 펜과 메모지를 가지고 와 질문을 적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인터뷰에서 흔히 보긴 어려운 장면이라 물었더니, "저희 영화 잘 설명하고 잘 전달하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유재명은 보통 시나리오를 읽으면 이야기가 가진 재미를 느끼고, '이건 이런 이야기야' 하는 과정을 겪는데, '비스트'는 달랐다고 말했다. "세계관은 알겠는데 어느 정도까지 깊은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단다.

    유재명은 "인물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가야 하는데 막연한 느낌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선명하고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라고 부연했다.

    유재명이 맡은 한민태는 동료 형사 한수(이성민 분)의 살인 은폐를 눈치챈 라이벌 형사다. 무표정 속 들끓는 열망을 감춘 캐릭터다. (사진=NEW 제공)

     

    이정호 감독과 민태라는 캐릭터에 관해 내린 결론은 '민태는 민태다'라는 것이었다. 유재명은 민태가 태생적으로 성격적 결함을 가진 인물로, 좌천성 인사를 당해 지금이 경찰서로 왔고, 한수와는 신념이 달라서 평행선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것들을 저희 영화는 아주 용기있게 과감하게 보여주지 않고 지금 현재에 머물러 있는 그들의 눈빛, 상태에 포커스 맞춰서 영화를 끌고 나간다. 쉽게 설명했으면 편했겠지만 동력은 떨어지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창신빌라 잠복 수사 장면을 예로 들면, 민태는 기존의 민태답지 않은 짓을 한다.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수와 달리 냉정을 유지했던 민태가 갑자기 튀어 나가 존재를 일부러 '들키고' 마는 것이다. 이때 '왜 가지?'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민태는 갈 것 같다'는 게 유재명의 생각이다.

    이어, "이율배반적인 모습들, 그런 씬들이 반복되고 끝도 없이 밀어붙이는데,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려는 미학을 (작품을) 읽을 때보다 (촬영) 하면서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유재명은 '비스트'가 관객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극중 인물의) 동기나 개연성이 저희의 마지막 비빌 언덕인데 그걸 삭제했을 때, 배우에게 오는 책임감이 뭐냐면 '내가 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했냐고 질문하고 역추적하면 할수록 민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 민태같이 되지 않으려면? 유재명의 조언

    이정호 감독은 유재명에게 사실상 민태를 맡겼다. '민태를 잘 모르겠으니, 선배님이 만들어주세요'가 그의 주문이었다.

    유재명은 "민태는 지독히 외로운 사람인데, 그 지독한 외로움조차 스스로 과장해서 위장한 것 같다. 외로움을 가장한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히려 한수는 솔직하다. 화내고 웃기도 하고 고함도 지르니까. (민태는) 자기는 안 그런 척 위장하고, 그래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사람이다. 괴물의 모습이고, 그게 잘 표현됐다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좀처럼 편들어주기 쉽지 않아 보이는 민태를 직접 연기한 입장에서, 그럼에도 마음이 쓰이는 부분은 없었는지 묻자 유재명은 "민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따로 하진 않았다"라며 "민태 같은 사람 보고 나면 정말 불쌍한 것 같다"라고 답했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영화 '비스트' (사진=NEW 제공)

     

    유재명은 "민태가 실존한다면 과장 달고 승진 계속할 거다. 절대 안 쓰러지고 나중에 꼰대가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내 선택이 맞는다고 하고, 말 끊어버리고, 눈 안 마주치고, 막 싫어하니까. 스스로 정의로운 척, 합리적인 척하는 그런 어른들, 정작 후배들한테는 '너넨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는. 그게 정말 괴물 아닌가.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이라며 웃었다.

    그럼 민태 같이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재명은 "남의 말을 듣자!"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서로 소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민태와 한수 대사에 나타난 '전사'의 힌트들

    유재명이 맡은 민태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이벌 관계인 한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민태에 관한 단서들은 한수와 대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유재명은 "일상에 살다가 '그냥 싫어' 하면서 어떤 사람이 싫을 때가 있지 않나. 밑도 끝도 없이 미워하는 사람. 민태는 한수가 싫은 것"이라며 "우월감일 수도 열등감일 수도 있는 한계를 가졌고, 현재 조직에 외부적인 자극이 들어와 상황이 더 꼬이고, 점점 파멸하게 되는 게 우스꽝스러운 것 같다. 어떤 기자분이 (한수-민태가) 되게 우스웠다고 했는데 전 그 말이 되게 재밌더라"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민태가 한수에게 느끼는 가장 결정적인 감정은 무엇일까. 유재명은 "(그게) 만약 한수에 대한 질투심, 성공욕, 승진이었다면 그 파국으로 치닫진 않을 것 같다. 틀림없이 큰 동기는 되겠지만 결정적인 건 아니고 서브일 것 같다. 승진하려면 오히려 발 뺐을 거다.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자기 것을 챙기려고 했을 테니"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민태 역시 한수만큼이나 무언가 꼬여있는 인간이고, 그걸 드러내는 게 다른 방식인 거다. 차가운 얼음장 속에 용광로가 들끓고 있어, 얼음이 녹을수록 민태의 욕망이 드러나는 느낌이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씬에서 손을 씻지 않나. 자기 죄를 씻는 것처럼 하지만 (카메라는 끝까지) 그의 눈을 보여주진 않는다"고 말했다.

    유재명은 "같은 듯 다른 두 사람, 스스로 선택한 게 낫다고 믿고 진심으로 행동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정상인 듯 비정상인 듯한 모습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한수와 민태는 극과 극의 성향을 가지고 사사건건 부딪치는 것처럼 보이나,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사람이 한때 동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힌트가 드러나는 장면은, 부제(아직 사제가 되지 않은 성직자)가 여고생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서로 온 때다.

    배우 유재명 (사진=NEW 제공)

     

    한수가 부제에게 자백을 받아냈지만, 민태는 자체 조사를 한 후 부제를 풀어줬다. 한수가 민태에게 '꼭 그랬어야 됐냐'라고 할 때, 민태는 '절차대로 한 것뿐이야'라고 답한다. '범인을 잡아야지, 잡고 싶은 놈이 아니고'라는 민태의 대사에 유재명은 '매번' 두 글자를 추가했다.

    한수의 대사에도 두 사람의 전사를 상상할 수 있는 표현이 나온다. '또 풀어줄 거야?'라는. 유재명은 "빠르게 지나가서 많은 분들이 캐치하기 힘들 수 있는데, 알아봐 주신다면 그런 것들을 찾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유재명은 영화 속 모든 인물과 상황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부제 말이 사실일까? 한수 말이 사실일까?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 인물들이 진실하다고 하는 행위가 정말 진실일까? 이게 느껴진다면 저희 영화는 되게 재밌는 영화이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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