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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변하기'와 '변하지 않기', 그 사이의 유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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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변하기'와 '변하지 않기', 그 사이의 유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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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인터뷰] '비스트' 한민태 역 유재명 ②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비스트' 한민태 역 배우 유재명을 만났다. (사진=NEW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비스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재명은 스무 살 때 연극을 처음 만났다. 올해 마흔일곱이니, 연기를 시작한 지 27년이 된 셈이다. 극단에 소속돼 있기도 했고, 직접 운영하기도 하면서 15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드라마, 영화 등 매체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평생 지하 소극장에서 연극을 하며 살 줄 알았다.

    연극은 본업, 매체 연기는 아르바이트로 받아들였던 생각은 영화 '하루'에 출연하면서 바뀌었다. 정말 자기의 '일'이라는 점을 인지한 후,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차츰 대중에게 다가왔다.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된 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vN '응답하라 1988'이었다.

    유재명은 최근 3년간 드라마, 영화를 가리지 않고 자주 얼굴을 비추며 바쁘게 지내왔다. '욱씨남정기', '화랑', '힘쎈여자 도봉순', '비밀의 숲', '슬기로운 감빵생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라이프', '탁구공',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 '자백', '국민 여러분!' 등 드라마만 따져도 11편이다.

    '4등', '비밀은 없다', '하루', '브이아이피',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골든슬럼버', '봄이 가도', '죄 많은 소녀', '명당', '영주', '마약왕'까지 영화도 10편 넘게 출연했다. '비스트'가 11번째 작품이다.

    무대에서 실력을 다지고 이후에 영화와 드라마를 해야지, 하는 계획은 없었다. 그는 그저 "산다는 게 참 이상한 일의 연속"이라며 신기해할 따름이었다.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유재명을 만났다.

    ◇ 눈 실핏줄 터진 이성민을 보며 든 생각

    유재명은 두 형사의 쫓고 쫓기는 범죄 스릴러 '비스트'에서 속을 알 수 없는 형사 한민태 역을 맡아, 정한수 역의 이성민과 라이벌 구도를 연기했다. 유재명은 "성민 선배님 계셔서 큰 의지를 했다"면서 "여전히 선배님 앞에서는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더라"라고 말했다.

    이성민은 전작 '방황하는 칼날'로 이정호 감독과 이미 작업해 본 경험이 있었다. 이 감독이 이성민에게 "선배님은 믿겠습니다"라며 전적으로 역을 맡긴 이유다. 이성민은 정말 해냈고. 유재명은 그걸 보고 '이상한 오기'가 발동해 '나도 해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성민은 촬영 후반부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눈 안의 실핏줄이 터지는 열연을 펼치기도 했다. 유재명은 "실제로 실핏줄 터지는 걸 옆에서 보셨다면 (여러분도) 너무 놀랐을 거다. 후배 배우인 제가 보기에는 그때 선배님 촬영 순간은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너무 처절한 모습이었고 거기에 저는 총을 겨누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총으로 저걸(한수를) 죽여버릴 거야 하는 마음에, 미안함, 연민 넣어야 하고, 녹음기에선 비명이 나오고… 그때 한수 바라보는 눈빛을 어떻게 말로 설명하나. 선배님이 (연기로) 보여주셔서 (저도) 그렇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선배님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유재명은 '비스트'에서 이성민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라이벌로 열연을 펼쳤다. (사진=NEW 제공)

     

    유재명은 극중 희대의 살인마를 잡을 결정적 단서를 쥔 마약 브로커 춘배 역을 맡은 전혜진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제가 사실 혜진 씨 보면서 놀란 게 매 씬 집중하고 고민하더라. '경찰이랑 같이 있었어요'라는 씬도 버전이 몇 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이 참 재밌는 게 뭐냐면 오케이가 나도 또 다른 버전이 보고 싶다고 한다. 그럼 저희는 또 다르게 한다"면서 "직접 (각본을) 쓰셨지만 작품을 그렸던 이미지는 여전히 몽환적이고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배우가 구체화했다. 되게 재미있고 열려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유재명은 "서로 '고생했어' 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그 과정이 저희 현장에서는 흐뭇한 동료의식이 생기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늘 확신을 갖고 가진 못했다. '이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은 항상 있었지만, (이성민) 선배님도 저도 감독님도 춘배도 열어두고 했다. 다 같이 힘들었기 때문에 서로 위로하고 의지했다"고 전했다.

    "저희 영화가 대중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낯설게 다가가기'였어요. 친절하게 설명하면 그냥 서사가 강한 액션물로만 끝날 것 같았어요. (…)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냐면 그들의 눈, 그들의 꺾여 있는 욕망이었어요. 그것들을 집요하게 따라가면서 춘배가 나타나고 이야기가 꼬이고 파국으로 치닫는 거죠. 표현하긴 좀 그렇지만 '지랄맞은'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서 과연 당신은 정상이냐, 너네가 말하는 괴물을 가지고 있지 않으냐는, 다소 공격적이지만 묵직한 질문이 전달된다면… ('비스트'가) 다양한 영화 중 하나의 영화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 떨리고 부담스러워도 이젠 '책임져야' 할 위치

    유재명은 오랫동안 극단 활동을 하며 무대에 올랐다. 그는 "평생 지하 소극장에서 연극하고 살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살게 됐다. 영화 일해야지, 영상 일 많이 해야지 이런 계획은 없었다. 나를 불러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산다는 게 참 이상한 일의 연속이라서, 비결은 없고 그냥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그의 진가가 알려지면서,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다작했던 유재명은 자신의 위치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저희 팬들이나 제 연기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기대가 있다는 걸 안다"면서도 "저는 '연기 변신'은 사실 만들어낸 말이라고 본다.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제 외모와 목소리는 어디 가지 않으니까"라고 밝혔다.

    이어, "제가 스스로 선택하고 해석한 연기적인 부분의 변화는 이번 텀에서 고민을 해 봐야 하는 타이밍이다.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걸 느낀다. 잘못하면 여지없이 혼날 것 같다. 혼날 땐 혼나야 반성도 한다"며 "주어진 역할을 아주 깔끔하게 하고 빠지는 게 아니라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역할을 맡았으니, 이젠 (제가) 떨리는 건 중요하지 않다. 떨리더라도 해내야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유재명은 최근 3년간 영화 11편, 드라마 11편(모두 개봉일자/방송일자 기준)에 출연하며 쉴 새 없이 활동했다. (사진=NEW 제공)

     

    유재명은 "있었던 것을 잘 비우고 잘 말려서 새롭게 채워야 하는데, 그게 점점 잘 안 되는 것 같다"면서 "여행가든지 뭘 하든지 새롭게 리프레시해서 환기 잘 된, 신선한 느낌으로 가고 싶다. 하던 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 '잘 변하기'와 '변하지 않기'에서 줄타기하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일상의 생기를 유지하기 위해 유재명은 뭘 할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맛있게 한 잔'과 '산책'을 거론했다. 캠핑 장비를 사 놓고 일 년째 한 번도 못 가고 있다는 아쉬움 섞인 설명도 이어졌다.

    더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인정하는 배우가 되면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정말 좋은 작품을 많이 읽을 수 있게 됐다. 유재명은 "정말 좋은 작품이 많다. 좋은 시나리오가 많고. 그걸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저예산영화든, 각각 미학을 가진 작품이 많고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잘 선택하는 게 내 몫이 됐기 때문에 잘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 중 좋아하는 것을 꼽아달라고 하자, 단막극 '탁구공'의 김득환 역과 '비밀의 숲' 이창준 역을 든 유재명은 "그런 인물을 거치면서 배우로 산다는 게 때로는 힘들지만 정말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과 소통하는 게 너무 감사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하고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재명이 후배들에게 하는 조언

    유재명이 대중에게 널리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건 40대 초반의 일이었다. 어찌 보면 조금 늦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재명은 그걸 '지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는 "결혼 얘기로 기사가 많이 나오길 바라진 않지만, 제가 늦게 결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 삶의 시기와 맞춰서 결혼한 것뿐이다. 꼭 서른 살에 결혼해야 하나? 그런 건 아니니까"라며 연기에 관해서도 "조급해 할 필요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혹시 결혼 후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묻자, "거의 없다. 그동안 너무 가난해서 작품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을 겪어서 저한테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좋은 작품, 나를 원하고 내가 선택한 좋은 작품을 내 삶의 시기에 맞춰서 하다가 어느 날 좀 지치면 그때쯤에 잠시 멈출 수도 있다"고 전했다.

    아내가 연기에 관해서도 특별히 언급하냐는 물음에는 "되게 좋은 작업자다. 되게 좋은 배우이고 조연출도 해서 되게 날카롭다. 좋은 부분을 많이 봐주려고 한다"라고 답했다.

    배우 유재명 (사진=NEW 제공)

     

    어렸을 때부터 선배들과 배우란 무엇인가 열띤 토론을 해 왔던 그는 여전히 '좋은 배우'가 어떤 건지 답을 확실히 내리진 못했다. 유재명은 선배들과 논쟁할 때도 선배들은 '제발 묻지 좀 마, 알아서 해'라고 했다고 해 웃음을 유발했다.

    지금도 연기하다가 힘들 때 부산에 있는 선배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그는, "주어진 걸 할 수밖에 없는 게 배우라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자기 페이스 유지하면서 선택한 걸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라고 말했다.

    이제 누군가에게는 '선배'가 된 유재명. '선배님 연기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는 후배들도 늘어났다. 유재명은 "고마우면서도 용기를 주고 싶다. '나 같은 배우들도 됐기 때문에 너희 충분히 가능성 있다, 너무 절망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술 많이 먹지 말라'고도 하고"라고 전했다.

    연기를 하면서 대중과 소통했을 때 감사함을 느낀다는 유재명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역시 연기를 잘했을 때다. 그는 "감독님, 동료 배우들이 너무 좋았다고 해 주시면 되게 기분이 좋다"면서 "좋은 씬의 좋은 디테일 하나가 찾아졌을 때처럼… 믿고 의지하는 동료가 작업자들이 너무 좋았다고 해주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밝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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