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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니가 세월호 참사로 친구 잃은 소녀를 표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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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소니가 세월호 참사로 친구 잃은 소녀를 표현하는 법

    [노컷 인터뷰] '악질경찰' 장미나 역 전소니 ①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악질경찰' 장미나 역을 맡은 배우 전소니를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 이 기사에는 영화 '악질경찰'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속 미나는 "들고양이"(이선균의 표현) 같았다. 극중 양희숙(이유영 분)은 잔뜩 날이 서서 삐딱하게 구는 미나의 얼굴에서 "살려달라"는 외침을 들었다. 누구를 잘 믿지 않고 경계하며, 때로는 적대적인 느낌이 들 정도의 '센' 소녀. '악질경찰'(감독 이정범)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전소니가 맡은 장미나는 그런 인물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친구 지원(박소은 분)을 잃고, 어른들도 세상도 불신하게 된 역할이다 보니 미나는 좀처럼 웃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전소니는 감정 표현이 풍부했다. 그의 기분 좋은 웃음은 인터뷰어의 서툶 때문에 간간이 생기는 빈틈을 채워줬다.

    매체 인터뷰는 '악질경찰'로 처음 하게 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소니는 질문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해 자기만의 언어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전소니의 인터뷰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나눈 이야기를 옮긴다.

    다음은 일문일답.

    ▶ 그동안 인터뷰는 많이 안 한 것으로 안다.

    인터뷰라는 걸 이번에 처음 해 봤다. (웃음) 낯설고 어색하지만, 누가 저한테 그런 궁금증을 갖고 계신 게 되게 신기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 '악질경찰'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오디션을 본 건가.

    오디션이 없었다. 처음부터 제안해주셨다. 나중에라도 한 씬이라도 (대사) 한 줄이라도 시켜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뭘 보여달라고 안 하시더라. 그래서 제가 '감독님, 리딩하는 거 보셔야 하지 않아요?'라고 했는데 '아니. 볼 생각 없다'고 하시더라. (웃음) 감독님은 아마 나름대로 정하고 계셨나 보다.

    ▶ 나중에라도 캐스팅 배경을 들은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처음 만나뵀을 때 얘기해주시긴 했다. 감독님이 강의를 하시는데, 그걸 듣는 학생이 연출한 단편영화에 제가 출연한 거다. 제가 좀 불안감이랄까. 이런 거에 짓눌린 역할을 했다. 힘들어하는 고등학생 연기하는 걸 보고 미나랑 되게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소니가 맡은 장미나는 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잃은 고등학생 역할이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극중 미나는 세월호 참사로 친구 지원을 잃은 상황이었다. 미나의 슬픔과 허무함,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는지.

    연기할 상황을 모두 경험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인물이 됐건 제 나름의 이해방식을 항상 그때그때 찾아내는 게 제 일인 것 같다. 이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보니까,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그때쯤에 저 개인적으로 슬픈 일도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미나라는 사람이 제가 아닌데 전부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할 순 없겠지만,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면서 어림짐작 정도는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시각도 있고.

    결정하기 전까지는 정말 고민이 많았다. 오히려 결정하고 나서는 억지로라도 그 고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먹었다. 사실 그런 시선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바라보는 건 좀 속상하다. 호불호라는 건 꼭 이 영화가 아니라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부분에 너무 지나친 부담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

    ▶ 미나는 조금은 버릇없어 보일 정도로 내키는 대로 굴고, 어른 앞이라고 굽히거나 굳이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말도 태도도 거칠다. 하지만 사실은 '살고 싶어 하는', 누구보다 구원받길 바라는 인물 같았다. 그래서 불량해 보이는 겉모습도 '위악'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게 봐주셔서 되게 감사하고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미나는 사람들이 보기에 뭐다, 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나는 어떤 사건을 겪은 후 지금의 환경에 혼자 놓여있지 않나. 그 '혼자 놓여있음'을 버텨내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 선택한 위악이라고 느꼈다. (미나의 행동이) 일탈이라든지 불량하다는 느낌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길 바랐고, 그 부분들을 많이 신경 썼다. 처음에는 바로 모르시는 게 이해된다. 얘를 좀 더 알아갈수록 이해되는 부분이 있길 바랐다.

    ▶ 동시에 미나는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돌보기 위해 애쓰는 인물 같다. 소희(권한솔 분)을 보살피고, 민간인 잠수사에게 거액을 부치고, 비 맞는 조필호(이선균 분)에게 우산도 건네지 않나.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사람이 다 다르지 않나. 미나한테는 그런 이유, 기댈 곳이었던 게 자꾸만 사라졌다. 할머니랄지 지원이랄지… 아마도 처음부터 그런 부분들이 풍족하지 않았을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부모님과 할머니까지 다 있는데, 미나는 처음부터 부족했고 두 번이나 잃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그게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본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고 세상에 기대가 있었던 친구라서, 약간 집착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면서까지 소희를 지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이 세상에 얘를 혼자 버려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미나를 강하게 몰아붙였던 것 같다.

    배우 전소니 (사진=황진환 기자)

     

    그렇게 달려오던 걸 (되돌아) 보게 된 타이밍도 되게 중요했단 생각이 든다. 작고 아무것도 없는 내가 누군가를 지키려고 했던 행동들이 돈과 권력 앞에서 손짓 하나로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걸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내 삶에 거는 기대가 없어졌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 기대가 없어진 순간에 또 다른 기대를 찾으며 살았을 텐데, 미나한테는 그런 보기(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그게 너무 안쓰럽고 제가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나가 안타까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너무 그 목적에만 집중해서였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해내고 싶은 욕심으로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왔는데, 앞으로도 (다다르기)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했을 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이 그거였을 것 같다.

    ▶ 미나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결말에 공감했나.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고민이 많았다. 이 결정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 촬영하면서도 두고두고 계속 고민했던 부분이다. 결정의 내용도 그렇고 그사이에 나오는 대사들도 되게 고민했던 것 같다. 근데 어쨌든 미나가 그러는 것에 대해서는 감독님이 결정하신 거니까 저는 그 부분을 스스로 납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나가) 오직 필호의 감화를 위해서 희생한다기보다는… 이 인물이 가진 여러 가지 내면을 생각했고, 그런 사람이라면 옥상에서 그런 사건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 무력감 같은 게 굉장히 클 거라고 생각했다. 이 인물이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책임감 때문에 여기까지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더 의미 없어졌을 땐 삶을 포기할 만하다고. 전 거기에 설득이 됐다. 다른 사람이 옥상에서 사건을 겪었다면 이렇게까지 결정 안 할 수 있는데 미나이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한다.

    ▶ 미나와 필호의 관계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여고생과 아저씨라고 하면, 어떤 여지를 주기 위한 연출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게 전혀 없고 인간적인 이해와 최소한의 믿음 정도만이 있어서 좋았다. 또, 여고생=교복 차림 공식을 깬 것도 눈에 띄었다.

    너무 공감을 받는 느낌이다. (웃음) 저도 미나의 멋진 행동력이라든지 이런 것도 좋았지만 교복을 입지 않는 것도 좋았다. 또, 필호가 (나이로는) 어른이지만 가장 어른이고 가장 책임감 있고 또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미나이지 않나. 우리는 나이나 성별 등 가지고 있는 것들로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만, 그것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미나가 되게 좋았다.

    필호와 미나가 가까워지거나, 서로 의지하는 부분을 보여줬다면 오히려 좀 더 아쉬운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정도가 딱 좋았다. 미나는 다른 사람들만큼의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거나 어떤 기대를 안 하려고 했을 것 같다. 미리 방어하면 했지. 미나가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마음이라고 할까.

    누군가는 너네 둘이 뭐 얼마나 봤다고 서로 애틋해 하냐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다. 미나는 (사람에게)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근래에 누구와 교류한 적이 없었을 거다. 자기 모습을 의도치 않게 필호한테 들키면서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보여줄 수밖에 없지 않았나. 그러니 필호가 미나에게는 다른 사람과 조금은 다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악질경찰'은 전소니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액션 연기를 경험해 봤는데 어땠나. 배우들 얘기를 들어보면 맞는 역할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하더라.

    저도 그 말을 하려고 했다. (웃음) 맞는 게 마음이 편하다. 하는(때리는) 입장에서는 많이 조심해야 하고 감정이 상할 수도 있고 연기지만 신경 쓸 게 많은데 저는 받아들이는 입장이라 사실 마음이 편했다. 액션은 걱정하시는 만큼의 힘들고 고된 부분이 별로 없었다. 현장에서 그 액션 씬을 하면서 물론 사고도 없었다. 하나하나 봐주고 (다치지 않게) 지켜봐 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보이는 것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 장편영화 데뷔작을 이정범 감독과 함께 했다. 소감은.

    감독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기 진심을 저한테 보여주는 것에 되게 주저함이 없으셨다. (그런 모습이) 처음에 되게 낯설기도 했는데,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게 되더라. 이걸 '같이 만들어가면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민을 하게 해 주는 감독님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되게 잘 들어주시고 알고 싶어 하신다. 대화하는 게 굉장히 편했다. 본인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다른 의견도 받아들일 줄 아는 분이셨다. 대화했던 시간이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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