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허술한 증명서 한 장이면…사위·며느리도 '법원 문서감정인'



법조

    허술한 증명서 한 장이면…사위·며느리도 '법원 문서감정인'

    연 70건 수임하는 법원 문서감정인에 '초짜'도 가능
    관련 기관 출신이면 문서감정 경력 없어도 등록 'OK'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법원의 지정으로 문서 위·변조를 판별하는 '공식 감정인'이 되는 문턱이 턱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 문서감정 일을 하던 사람이 써준 경력증명서 한 장이면 별도의 증빙 없이 법원에서 1년에 약 70건의 감정을 의뢰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들에 의한 '문서 감정' 자체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실제 '문서감정 업무' 수행 여부 검증 소홀

    19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법원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문서감정인에 대한 심층 면접을 실시했다. 면접이 실시된 것도 처음이었지만 문제는 대부분 합격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송부한 27명의 문서감정인 후보 중 3명만이 탈락했다. 올해 건설 감정 부문에서는 신청자 703명 중 303명이, 측량감정에서는 신청자 122명중 18명이 떨어진 것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비율이다.

    더 큰 문제는 면접 대상자 중 일부가 실제로 문서감정 업무를 수행해 온 경력이 없거나 관련 업무 도중 징계를 받아 등재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움에도 합격했다는 점이다.

    (사진=자료사진)

     

    문서감정인으로 신청 할 때 법원감정이나 조사업무 종사 경력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하지만 이는 법원 감정 유경험자에 한정된 내용이다. 새로 등재하려는 경우에는 사실상 유경험자가 날인한 경력증명서만 제출하면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서감정인은 "5년 이상 문서감정 경력을 증빙할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도 감정인으로 등재될 수 있다"며 "감정인으로 일해 온 아버지가 아들, 사위, 며느리 등의 경력증명서에 사인해주면 법원 감정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인 등 선정과 감정료 산정기준 등에 관한 예규'에서는 문서 등의 감정인 명단에 등재하는 요건으로 3가지를 정하고 있다. △국가기관연구소 문서감정실에서 5년 이상 감정·연구를 하거나 △그와 같은 사람으로부터 문서감정 등에 관하여 5년 이상 연수를 받은 사람 △이와 동등한 수준 이상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현재 국내에서 이러한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국가기관은 대검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방부 3곳이다. 원칙적으로는 이 기관들에서도 문서감정 업무를 수행한 사람만 문서감정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올해 문서감정인으로 등재된 L씨는 국과수에서 문서감정이 아닌 다른 업무를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 기존 감정인이 써준 '증명서'가 만병통치약(?)

    특히 기존 문서감정인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경력증명서만 써주면 5년간 연수를 받았다는 별도의 증빙 없이도 감정인으로 등재될 수 있다. 5년간 주감정인과 함께 보조감정인으로서 업무를 했다는 자료나 주감정인 지도 아래 실제로 근무 했는지 여부 등은 제출 의무 사항이 아니다. 이에 일부 감정인들은 자신의 자녀와 사위, 며느리 등 친인척에게 경력증명서를 써주고 함께 문서 관련 감정사무소를 차려 일하고 있다.

    법원은 등재된 문서감정인 20여 명에게 골고루 사건을 배분하기 때문에 감정인 1명이 1년 평균 70건 내외의 사건을 수임하게 된다. 이들이 법원을 거쳐 의뢰인으로부터 받는 연간 수임료는 5000만 원에서 1억 원 수준이다. 사건 수임을 더 하길 원하는 감정인이 가족이나 지인을 허위 등재해 '대리 감정'하거나 감정 경험이 전혀 없는 이른바 '초짜'가 감정인으로 나서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문서감정인은 "현재 활동 중인 문서감정인은 25명 내외인데 국가기관 출신자는 5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20여 명은 5년 이상 연수를 받았다는 요건에 의해 등재된 감정인들"이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친인척이며 업무 경험이 전무한 사람도 있다"고 주장했다.

    문서감정 업무는 다른 측량·시가 감정 업무와 달리 자격시험이 없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온라인에서 감정인 신청을 받아 후보자 명단을 작성하고 이를 일선 법원에 송부하면 각 법원들이 적정한 감정인을 평가해 등재를 요청하고 최종적으로 행정처가 명단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만약 특정 지방법원에서 배제됐더라도 다른 지방법원에서 명단에 들면 대법원 최종 명단에 포함될 수 있다. 애초에 대법원이 문서감정인 후보자 명단을 추릴 때 더욱 꼼꼼한 선별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대법원 "제도 개선 통해 검증 절차 강화하겠다"

    문서감정 경력 증빙이나 면접 심사, 감정 장비를 갖춘 사무실 방문 등의 절차를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특히 예규에서는 감정업무와 관련해 형사처벌이나 징계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은 감정인 명단에 등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범죄경력조회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김형영 전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은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에서 허위감정을 하고 이후에도 다른 사건에서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 등으로 두 차례에 걸쳐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도 버젓이 법원 문서감정인으로 등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유서대필 사건 관련 국과수 내부 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도 현재 문서감정인으로 활동 중이다.

    CBS노컷뉴스의 취재에 대해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문서감정인 등재와 관련한 문제 사항들을 인식하고 있고 올해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며 "검증 절차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