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르포] 극강한파 속 '하루 일감' 찾아나선 노동자들



사건/사고

    [르포] 극강한파 속 '하루 일감' 찾아나선 노동자들

    한숨 쉬는 일용직노동자·대리기사…"추운데 경기도 안 좋아 일감 없어"

    한파가 몰아친 지난 13일 새벽 서울 남구로역에 일용직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나와 있다. (사진=정석호 기자)

     

    수은주가 영하 12도까지 떨어져 올 겨울 가장 추운 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어김없이 하루치 밥값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선 이들이 있다. 하루의 가장 이른 시간과 늦은 시간, 겨울을 유독 춥게 보내고 있는 일용직노동자와 대리운전 기사들을 만나봤다.

    ◇ "크레인 사고에 일감 뚝 떨어졌다" 한숨 쉬는 일용직노동자들

    "아주 오늘 장난 아니네. 귀가 떨어질 것 같아."

    한파가 몰아친 13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은 이른 새벽을 여는 일용직노동자들로 금새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 최대의 인력시장인 남구로역 사거리에는 이날 400명 가까이 되는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50·60대로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두건과 마스크 등으로 눈만 빼고 모두 가렸지만 추위를 이기기 어려운듯 연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었다.

    3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서 왔다는 유형신(56) 씨는 "영하 22도까지 떨어지는 중국에서 왔지만 3년 적응하며 지내고나니 서울 추위도 너무 매섭다"며 "차라리 얼른 일 나가서 몸을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진저리를 쳤다.

    추운 날씨만큼 일용직노동자들의 인력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일용직노동자로 일한지 20년째인 김병철(53) 씨는 요새 일감이 뚝 떨어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는 "요새 날씨가 춥고 크레인 사고도 있고 하다보니 건설현장이 잘 안돌아가는 것 같다"며 "20년 전 호황이었던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은 가뭄인 상황"이라고 근심을 표했다.

    그는 "독산동에서 아내가 식당을 하는데 경기 탓에 돈벌이가 잘 안되는지 여기(건설노동현장)에 나오겠다고 하더라"며 "이 추운 날 무슨 소리냐고 학을 떼며 말렸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30년 경력의 이모(59) 씨도 CBS노컷뉴스 취재진이라고 밝히자 "목동에 있는 CBS 건물을 내가 직접 공사에 참여해 세웠다"라며 "당시 인근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는데 요새는 그런 일감이 안 들어온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CBS 목동 사옥은 1992년에 준공됐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교차로를 기준으로 남과 북이 나뉘어져 있다.

    교차로 남쪽 길목에는 주로 한국인 노동자들이 서 있고 북쪽 길목에는 중국인 동포들이 모여 있다.

    수가 월등히 많은 중국인 동포들은 빼곡하게 모여 있어, 남쪽에 있는 한국인 노동자들은 이따금씩 날선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30년간 일용직노동자로 일했다는 박모(62) 씨는 남쪽 길목에서 중국인 동포 노동자들을 비난하며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씨는 "지금 중국인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사람이 없어 우리 일거리를 다 빼앗아가고 있다"며 "세금도 안 내면서 인건비를 마구 후려치니 우리(한국인)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오전 5시 30분쯤 도로를 꽉 메웠던 인력수송차량들은 노동자들을 싣고 하나 둘 현장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자리를 떠나는 노동자들은 숙련된 기능공들이 대부분. 경력이 일천한 이들은 중국인 동포에게도 밀려 일감을 따내지 못한다는 게 박 씨의 설명이다.

    오전 6시가 지나 더이상 인부들을 찾는 사람이 없자 일자리를 구하던 노동자 50여명은 머뭇머뭇거리다 인근 지하철 역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일용직노동자들을 위해 설치됐다는 쉼터는 이날 제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당초 서울시는 구직환경 개선을 약속하며 오전 4시부터 8시까지 겨울철 쉼터를 설치해 난방시설, 따뜻한 음료 등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쉼터에는 문 열린 텐트만 있을 뿐 난방시설조차 없었다.

    ◇ "길에서 모닥불도 피워"…'겨울철 낭인' 대리운전 기사

    "큰일났네. 이 날씨에 어떻게 밖을 돌아다니지…."

    지난 12일 밤 10시 대리운전 기사 등을 위해 마련된 서울 마포구의 '휴 이동노동자쉼터'. 손님의 콜을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60대 맹 모 씨는 벌써부터 바깥 날씨에 걱정스런 얼굴이었다.

    대리기사 경력 10년에 남다른 노하우로 소속 업체에서 '최우수대리기사'로 뽑힌 맹 씨지만 그도 매년 돌아오는 겨울이 제일 무섭다.

    맹 씨는 속옷을 드러내면서 "오늘 날씨가 심상치 않아 내복과 바람막이, 파카 등 5겹을 껴입고 왔다"며 "이렇게 입고 나가도 10분 걸어다니면 추워서 견디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리기사들은 손님을 내려주고 나면 해당 지역 인근에서 콜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이 때문에 한 겨울 맹추위를 길거리에서 보내야 한다. 보통 빈 상가나 회사 빌딩에 들어가서 다음 콜을 기다리지만 이것마저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맹 씨는 "얼마전 빌딩에서 쉬고 있다가 경비원이 도둑으로 몰아서 쫓겨났다"며 "대리기사라고 어플을 보여줬지만 마구 내보내는 통해 속상했다"고 서러움을 표했다.

    13년차 대리기사인 60대 박 모 씨는 "도심은 그나마 외풍을 막을 곳이라도 있지만 경기도 외곽에서 손님을 내려줄땐 정말 각오해야 한다"며 "한번은 동두천까지 갔다가 아파트 주위에 아무것도 없어 길거리에서 모닥불을 피우기까지 했다"고 일화를 전했다.

    박 씨는 "10년 전만 해도 대리운전이 호황이었다"며 "지금은 업체도 우후죽순 생겼고 기사도 너무 많아 예전 수입의 절반밖에 안되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른바 '극한직업'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집에 있는 가족 때문에 한겨울에 거리를 뛴다고 입을 모은다.

    박모(34) 씨는 낮에는 회사에서 편집 업무를 하고 퇴근 후에는 대리기사 일을 한다.

    늦지 않은 시각임에도 벌서 눈에 핏발이 서 있던 박 씨는 "경력이 얼마 안 돼 하루에 한 건도 못한 날도 있어 실망스럽다"면서도 "얼마전 아내가 둘째를 임신해 가족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말했다.

    맹 씨도 "지난달 열심히 뛰어서 손에 쥔 돈이 112만원이다"라며 "큰 돈은 아니지만 아내랑 둘이 쓰면서 가끔 자식들 용돈 주기엔 부족하지 않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노동권익센터는 이러한 이동노동자들을 위해 서울 지역 3곳에 이동노동자쉼터를 마련했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