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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내결혼이 죄인가요?" 이번엔 농협 '부부사원 퇴사 강요'



사건/사고

    [단독] "사내결혼이 죄인가요?" 이번엔 농협 '부부사원 퇴사 강요'

    강원 원주 모 농협 '女은행직원 출산 복직하자 마트 정육파트로 발령'

    원주의 한 농협에서 오랜 시간 사내결혼을 한 여직원에 대해 퇴사 요구가 이어진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박정민 기자)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 따고 시험봐서 들어온 회사인데 왜 갑자기 저한테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사내결혼하고 아이를 낳은게 죄인가요?"

    아르바이트로 인연을 맺은 뒤 따뜻한 분위기에 끌려 목표가 된 회사. 여직원 김 모(30)씨에게 그 농협은 꼭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 꿈이 됐다.

    "하나로마트에서 대학교 2학년때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분위가 너무 좋고 따뜻한 거예요. 모두들 말 한마디도 고맙고 친절하게 해주시고. 그래서 '나는 여기에 입사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죠"

    다른 곳은 둘러볼 필요가 없었다. 입사를 위해 관련 시험을 준비하고 농산물품질관리사, 유통관리사 자격도 하나씩 따냈다. 2010년 도전해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계약직 직원으로 입사해 보안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지칠 법도 했다. 하지만 1년간 주경야독 끝에 2011년 하반기 정규직 채용 시험에 합격했다. 꿈을 이뤘다. 그때를 회상하는 김씨의 눈이 맑게 빛났다.

    2014년 '사랑'을 만났다. 듬직한 외모에 성실한 모습. 함께 일하며 호감을 갖게 된 그 사람. 2014년 9월 부부가 됐다. 두 사람 사이에는 축복처럼 새 생명도 찾아왔다. 행복했다. 적어도 그 때까지는…

    임신 9개월, 출산을 앞두고 출산휴가를 준비하던 2015년 5월말.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부부사원이 포함된 명예퇴직 공고 메일을 보냈다. 6월 2일 전직원 월례회의에서 특정인을 염두해 둔 것이 아니라는 간부의 말에 안도했다.

    사흘 뒤 남편(34)이 경영진에게 불려갔다. 고통의 시작이었다. 부부사원 중 한명은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 금전적인 보상 제안도 있었다. 남편은 거부했다.

    퇴사요구는 남편 뿐 아니라 만삭의 김씨에게도 지속됐다.

    "6월 10일쯤이었어요.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아기 태동이 약하다는 거예요. 의사가 '힘든 일이 있냐'고 묻더라구요. 출산 휴가를 냈죠. 아기가 위험할 수 있으니까"

    김씨의 출산 휴가 기간 남편은 혼자서 퇴사 압박을 견뎌내야 했다. 아기를 키워야 하는 경제적 여건도 이유였지만 아내가 현재 일을 얼마만큼 간절하게 원했었는지 알기 때문에 싸워 이겨내야 했다.

    2015년 9월. 김씨의 출산 휴가 복귀를 앞두고 퇴사 요구는 더 거세졌다. 은행 업무를 보던 김씨를 해당 농협이 운영하는 정육파트로 보내겠다는 협박도 더해졌다.

    "너네 버텨봐야 못 버텨. 막말로 ○○○(김모씨)을 마트 축산 이런데 가서 고기 썰라 그러면 어떻게 할거야?"

    녹취록에 담긴 상무의 말은 현실이 됐다. 10월 1일 출근을 앞둔 김씨에게 하나로마트 '정육파트' 발령 지시가 내려졌다. 은행업무나 마트 관리 업무를 맡는 6급 일반관리직으로 입사한 김씨에게 전문 능력이나 훈련이 필요한 정육업무가 떨어진 것이다.

    "정육파트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아기를 낳은 지 백일밖에 안됐는데 무거운 고기를 들어야 하고 날카로운 정육칼로 피가 떨어지는 고기를 부위별로 해체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내가 뭘 잘 못 했길래 이러나…"

    곁에서 듣고 있던 남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들썩이는 남편의 넓은 어깨를 다독이는 아내. 말을 잇는다.
    "고민 많았죠.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해야 하나. 그러다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여직원들에게 전례가 될 텐데, 다음 여직원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그만 두게 될테니까. 버티자고 마음 먹었죠. 그리고 엄마 연배의 주변 분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이겨냈죠"

    김씨의 성실함은 정육파트에서도 고객서비스만족도(CS) 평가에서 두 번이나 만점을 받는 것으로 표출됐다.

    2015년 12월 말 정기발령에서 김씨는 다시 은행 예금계로 발령이 났다. 동료들은 자기 일처럼 축하하고 환호했다. 하지만 사실상 대기발령. 회사는 예금파트에서 일하는 직원은 5명인데 6명을 발령 한 것이다. 그 중 김씨는 앉을 자리도 없고 전무 사무실 앞 빈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2016년 1월 남편은 결국 아내의 퇴사 결정을 조합장에게 전달하기에 이른다. 회사는 석달간 자택근무 후 4월 말 퇴사 처리하는 '배려(?)'로 보답했다. 그러나 끝까지 상처를 남겼다. 김씨의 사직서를 회사가 작성해 도장까지 대신 찍어버린 것.

    고민 끝에 김씨 부부는 회사를 상대로 긴 싸움을 결심한다. 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10쌍 가까운 부부 사원이 같은 대우로 둘 중 한명이 퇴사했지만 자신들부터는 부당한 해고에 맞서겠다는 것. 지금까지 겪은 부당함을 담은 내용증명으로 보냈다.

    김씨는 28일부터 다시 회사로 출근하기로 했다. 후배들에게 자신이 겪은 억울함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걱정하고 불안해하지 않고 그렇게 회사를 다녔으면 좋겠어요. 지금 시급직(계약직) 사원들도 회사에 굉장히 많아요. 제가 시급직으로 들어와서 정규직 꿈을 이룬 것 처럼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이루고 지켜갈 꿈이 있는 그런 직장이 됐으면 좋겠어요"

    해당 농협 경영진은 "부부사원의 경우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둘 중 한 명은 퇴사하는 관례가 있어 의견을 제시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시대가 변한만큼 관례를 바꿔야한다는데 경영진의 방침이 정해져 최근 여직원을 퇴사처리 안하기로 결정하고 당사자에게 통보했다"고 말했다.

    여직원을 출산 직후 정육파트로 배치한 것 역시 부부사원이 함께 금융파트에서 근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판단에서 어쩔 수 없이 이뤄진 결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김씨의 동료들은 "계속 근무를 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문제는 부부사원에 대한 잘못된 시각과 오랜 시간 동안 이들 부부사원에게 가했던 퇴사 강요 행위에 누군가는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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