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취업 면접을 앞둔 엄모(31·부산 해운대구 좌동) 씨는 ''본관은 어디냐'' ''몇 대손이냐'' 등의 예상 질문에 대비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았다. 본관은 알고 있어도 몇 대손인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족보를 찾았지만 족보는 집에 없었다. 체면을 구긴 엄 씨의 아버지는 수소문 끝에 도서관을 찾았지만 수천 명의 인명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는 게 어려웠다. 결국 엄 씨의 아버지는 집안 어른에게 혼쭐이 난 뒤에야 답을 구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사람들을 위해 한국성씨연합회(이하 연합회)가 ''뿌리찾기 운동''에 나섰다. 국내 유일한 단체로 올해 출범 30주년을 맞지만 연합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연합회가 지금까지 모은 한국의 성씨는 모두 122개로, 이에 따른 족보만 6500여 권에 달한다. 족보가 없거나 구하기 힘든 시민들은 도서관 내 연합회를 찾아 족보를 살펴보고 공부할 수 있다. 현재 연합회 사무실에는 50여 개의 열람석이 준비돼 있지만 소속 회원을 제외한 일반인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2~3명 정도에 그치고 있다.[BestNocut_R]
연합회는 궁리 끝에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젊은 층의 ''뿌리찾기''를 장려하고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족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최근 부산시민도서관 인터넷 홈페이지(www.siminlib.go.kr) ''자료실'' 내 ''사이버 족보 자료실''을 개설했다. 13일 현재 이 자료실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2개 성씨, 447개의 본관이 정리돼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상근 직원은 여든 살의 김쾌도 사무국장. 김 사무국장은 "각 문중에 협조공문을 보내는 등 꾸준히 족보를 모으고 있지만 아직 성씨별 족보를 갖추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젊은 층이 보다 쉽게 자신의 뿌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며 돋보기를 쓴 채 검지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다.
연합회에 족보를 기증하면 열람실에 영구히 보존돼 해당 문중은 물론 일반인들도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연합회는 전직 교장 10여 명을 강사진으로 구성, 부산지역 초·중·고교를 돌며 ''족보 바로 보는 법''을 강의할 작정이다. 새로 수집되는 족보를 토대로 인터넷 홈페이지 업데이트 작업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김 사무국장은 "뿌리를 모르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모르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