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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 ·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는 기지촌 할머니들

한 많은 그녀들의 인생 ③ 병원은 꿈도 못꾸는 팍팍한 삶

기지촌

 

의정부시 가릉동 미군 캠프 스탠리 주변 빼벌 마을의 쪽방촌.

부대 정문으로 향하는 언덕 옆 골목길에는 낡은 판잣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보통 6~7개의 쪽방이 있는 판잣집들은 기지촌 여성들이 집단으로 생활해왔지만 지금은 미군이 빠져 나가 대부분 비어 있었다.

언덕을 따라 한참을 오른 뒤 부대 담장 바로 밑에 있는 한 판잣집에 들어섰다. 꽃다운 나이에 이 집 11개의 쪽방에 들어왔던 방주인들은 돌봐주는 이 없이 늙고 병들어 쓸쓸히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4명의 할머니만이 남아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빼벌 최초의 기지촌 여성으로 알려진 윤순자(83·가명) 할머니.

한국전 당시 고향인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남편과 시댁식구를 모두 잃고 혼자 서울로 내려와 거리를 전전하던 윤 할머니는 23살 때 먹고살기 위해 빼벌로 들어왔다. 이후 흑인 병사와 사랑에 빠져 아들(53)을 낳았지만 남편은 얼마 뒤 귀국해버렸고 혼자 힘겹게 아들을 키웠다.[BestNocut_R]

하지만 주위의 손가락질과 놀림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보는 것이 힘들었던 윤 할머니는 결국 초등학교 때 하나뿐인 혈육을 미국으로 입양보냈다.

"정말 키워보고 싶었어. 하지만 나와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국이 낫다고 생각했지."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는 윤 할머니는 위궤양 때문에 일주일에 서너번씩 의료원을 다니고 있다. 기지촌 여성 대부분이 앓고 있는 질병이다. 주위에서는 윤 할머니의 병이 암이며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바로 옆 쪽방에 살고 있는 고현성(76·가명) 할머니. 수년 전 연탄가스 중독으로 생긴 기억상실증 때문에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고향인 개성에서 19살 때 피란 온 고 할머니도 서울 거리를 떠돌다 먹고살기 위해 이곳 빼벌까지 오게 됐다.

"혼자여선지 늘 아이를 갖고 싶어 했어요. 미군하고 살 때 수술까지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죠. 아마도 우리 일 때문일겁니다."

고 할머니를 옆에서 돌봐주고 있는 전춘자(68·가명) 할머니는 최근 기관지염까지 생겨 고생하는 고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1970년 빼벌에 들어온 전 할머니도 몇 명의 미군과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그 역시 혼자다. 몇년 전부터 갑상선염까지 생겨 고통을 받고 있는 전 할머니는 일반 병원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게 주는 한달 20만~30만원의 돈이 전부인 상태에서 다른 할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월세 15만원과 난방비 10만원을 쓰고 나면 도저히 병원 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뭐 어쩌겠습니까. ''선택한 삶이니 당신이 책임지라''는 말에는 할 말이 없는데요.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어도 늘 입안에서만 맴 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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