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우리 나비집을 지어요''''
지난해 2월18일 대구지하철 참사 때 25년간 고이 기른 큰딸 지은이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윤근(58·재활용업)씨가 10일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딸의 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초등학생 지은이의 일기장에는 순진무구함과 부모에 대한 사랑,가정의 화목,벗에 대한 신의,세상을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가득차 있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가 자기 일기장을 몰래 훔쳐볼까봐 마음 졸이는 모습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제법 나이가 들어서는 부모의 건강과 동생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의젓한 딸과 언니·누나로서의 역할을 되새기고 있었다. 어느날 하교길 문방구에서 물건을 산 뒤 깜빡 잊고 계산을 하지않고 왔다가 되돌아가서 지불한 뒤 정직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성인이 된 지은씨는 행복한 가정을 한없이 자랑스럽게 생각했다.''''친한 내 친구는 부모님이 별 것 아닌 불화로 이혼을 해 불행한 것 같다. 그러나 우리집은 부모님이 잘 계시고,그래서 그동안 지나온 25년이 너무나 행복하다. 부모님께 감사할 뿐이다. 나도 우리집 장녀로서 더욱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영남대 수학과를 졸업한 지은씨는 교사가 꿈이었다. 대구대 교육대학원(수학교육과)에 다니던 지은씨는 참사 당일 신천역에서 1080호 전동차를 타고 중앙로역으로 갔다가 변을 당했다.
윤씨는 참사 이후 희생자대책위원회에서 사고수습에 매달려 정신없이 지내다 지난해 말 딸의 방을 정리하던 중 일기장을 찾아내고는 너무나 아름다운 딸의 숨결을 느꼈다. 윤씨는 ''''딸 아이의 변고가 너무 원통했는데,그 아이의 착한 마음씨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일기장을 책으로 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책 제목인 ''''아빠,우리 나비집을 지어요''''는 딸의 초등학생 시절 일기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윤씨는 ''''한없는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며 딸의 일기장을 읽고 또 읽었다''''면서 ''''무엇보다 딸과 함께 있을 때 아버지인 내가 알지 못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어 가슴이 미어졌다''''고 눈물지었다. 그는 ''''어린시절 내 아버지가 나를 걱정했듯이 나도 대학원에 다니는 딸을 걱정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모두 기우였다''''며 ''''딸은 제 아빠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해 있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딸의 일기장 출판을 계기로 실의에서 벗어나 부인과 둘째딸 주은(23·대구대3)양,아들 준용(20)군과 더불어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대구=김상조기자 sang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