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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이전의 세계…양솽쯔 '꽃 피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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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1938 타이완 여행기' 이전의 세계…양솽쯔 '꽃 피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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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재 연작소설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마티스블루 제공마티스블루 제공
    '1938 타이완 여행기'로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한 작가 양솽쯔의 첫 장편소설 '꽃 피는 시절'이 한국어로 출간됐다.

    소설은 대학 졸업을 앞둔 양신이가 호수에 빠진 뒤, 1920년대 일제강점기 타이중의 대저택 '지여당' 막내딸 쉐쯔의 몸으로 깨어나는 데서 시작한다. 작가는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통해 과거 중국 대륙이 아니라 식민지 타이완으로 시선을 돌린다.

    쉐쯔가 마주한 지여당에는 가문을 이끄는 할머니, 혼처가 정해진 언니들, 가족 안에 있으면서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첩과 양녀가 있다. "지여당의 막둥이 아가씨인 이상 너에게는 모두를 돌보고 가족을 위해 봉사할 책임이 있어"라는 말처럼, 소설은 어린 소녀가 가문의 질서와 시대의 한계를 배워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작품은 한 소녀의 성장담이자 식민지와 계급, 젠더의 틈에서 살아간 여성들의 이야기다. 쉐쯔는 여성도 교사, 의사, 음악가가 될 수 있고 여성운동을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동시에 결혼과 가문, 책임이라는 현실 앞에 놓인다.

    소녀들의 우정도 중요한 축이다. 낯선 시대에 떨어진 신이는 사키코와의 관계를 통해 이 세계를 마주할 힘을 얻는다. "지금의 나는 그 넋을 잃어버렸다 해도 이 세계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고백은 이 소설이 시간 이동담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꽃 피는 시절'은 양솽쯔가 이후 발표한 '1938 타이완 여행기'의 출발점으로도 읽힌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2024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에 이어 202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으며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양솽쯔는 음식과 언어, 여성들의 일상과 감정을 통해 타이완의 정체성을 묻는다. 각 장을 꽃 이름으로 세운 이 소설은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소녀들의 우정과 고군분투를 그려낸다.

    양솽쯔 지음 | 문현선 옮김 | 마티스블루


    다산책방 제공다산책방 제공

    폭력의 기억에 갇힌 네 여자 '우리는 한때…'


    2023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탱크'로 데뷔한 김희재 신작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는 폭력의 기억에 갇혀 살아온 네 여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 연작소설이다.

    소설의 중심에는 '성'이라는 은유가 놓인다. 성은 보호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벗어나기 어려운 감옥이기도 하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과거에서 빠져나왔다고 믿지만, 기억은 다른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표제작의 신영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과 통제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는 "악몽의 소리는 고막에 깊게 새겨졌고, 사는 내내 귓속에서 울렸다"고 말한다. 상담사들이 이를 트라우마라고 부르지만, 신영은 그 말이 고통을 "대충 뭉뚱그리는" 것 같아 침묵을 택한다.

    '돌들을 주우러'의 이소는 화가다. 그는 자신의 기억인지, 어머니의 일기를 읽으며 짜 맞춘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과거를 작업의 재료로 삼는다. "어쩌면 내가 기억이라고 믿는 것은 엄마의 일기를 읽으며 퍼즐처럼 짜 맞춘 이야기의 한 조각이 아닐까"라는 문장은 기억과 예술, 생존이 뒤엉킨 이소의 내면을 보여준다.

    요양병원 간병인 성희는 기억을 잃어가는 신영의 이야기를 듣는다. 신영은 성희를 상담사로 착각하고 과거를 털어놓고, 성희는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묻어둔 폭력의 기억과 마주한다.

    마지막 이야기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방법'에서는 이소의 엄마 주연의 비밀이 드러난다. 주연은 죽음에 가까워진 뒤에야 신영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며, 폭력의 기억과 이를 끊어내기 위한 선택을 고백한다.

    김희재는 폭력의 장면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건이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 기억의 시간을 조용히 따라간다.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슬픔에 머물지 않고,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버티고 살아내는 생존의 방식을 묻는다.

    김희재 지음 |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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