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가자 지구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학살과 폭력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신학적으로 성찰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현대의 세속 국가 이스라엘을 구약의 '언약 공동체'와 무비판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심각한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오요셉 기자입니다.
[기자]
'기독교 시온주의'는 현대 국가 이스라엘을 성경 속 이스라엘과 동일시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종말의 시간표와 직접 연결해 해석하는 입장을 뜻합니다.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영향을 받아온 한국교회 안에도 현대 이스라엘의 국가적 번영을 신앙과 연결해 지지하는 시온주의가 넓게 퍼져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극우 개신교계 집회에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함께 등장하는 모습. 발제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의 영적 이스라엘을 정치적 이스라엘 국가와 동일시 하면서 이스라엘 극우 정치세력을 맹목적으로 지지한다"며 "생명과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구약학자 김회권 숭실대 명예교수는 "극단적 세대주의·시온주의 관점은 오늘의 이스라엘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성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팔레스타인에 가해지는 가혹한 악행을 가볍게 여기게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기독교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 사태를 묵인하고 도리어 그 폭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김회권 명예교수 / 숭실대학교]
"하나님의 종말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그 엄청난 장중한 프로그램에 비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분노를 느끼면서 약한 사람을 쏴 죽이는 것은 별거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아주 나쁜 생각이 발생합니다. 현재 이스라엘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데 필요한 이스라엘의 모태라고 믿어버리고, 너무 그걸 동일시하면서 국가 자체를 숭배하는, 이는 구원을 주는 국가를 숭배할 뿐이고, 국가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김 교수는 특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신 것은 난민과 고아, 과부, 도망친 노예를 영접하고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함"이라며 "하나님 약속의 핵심은 '땅 자체'가 아니라 그 땅에서 이루어야 할 정의와 환대"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성경 속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방을 품는 '다인종 합중국 사회'에 가깝다"며 "'아브라함의 후손'을 생물학적·민족주의적 담론으로 좁혀 배제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구약 성경의 본래 의도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김회권 명예교수 / 숭실대학교]
"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대해 호소하는 그 맥락이 너무 잘못됐습니다. 성경의 모든 미래 회복 약속은 그걸 듣는 사람의 이해력, 공감, 신인 협력적인 충분한 응답이 확보될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는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공평과 정의를 이루어서 천하만민에게 위협이 아니라, 복이 되는 나라 만들기 위하여 땅을 주신 것이다. 이 땅은 나그네와 난민과 고아와 과부 등 국가 바깥에서 떨거지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람들을 영접하라고 환대의 장소로 땅을 주신 것이다…"
지난 13일, 서울 성동구 성락성결교회에서 진행된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와 기독교 시오니즘' 세미나. 이번 세미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법률가회, 청년신학아카데미, 평신도신앙실천운동, 화해포럼 NARI가 공동주최했다. 오요셉 기자제노사이드 연구 전문가인 김상기 목사는 팔레스타인 사태를 '교과서적인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하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역사상 가장 긴 학살"이라고 말했습니다.
분류와 차별, 비인간화, 절멸 시도 등 제노사이드가 진행될 때 나타나는 10단계 흐름이 팔레스타인 현실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며, 이를 외면하는 것은 폭력을 지속시키는 방관자적 동조 행위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상기 목사 / 겨자나무교회 ]
"이데올로기가 작동했죠. 시온주의, 그다음에 식민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분류화. 이 (분리) 장벽 있지 않습니까? 그 장벽을 (길이) 714km에다가 (높이) 7m짜리 만들어 가지고 막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비인간화. '아말렉처럼 완전히 지워야 한다', 제노사이드적인 사고, 수사들이 나오는 거죠."
가자시티의 무너진 건물 더미 사이로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어린 소녀를 안고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한편, 이번 세미나에선 가자지구 구호 선단 항해와 관련된 국제법적 쟁점, 인도적 연대 방안 등도 폭넓게 논의됐습니다.
참가자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역사적·정치적·신학적으로 복합적인 사안이지만, 압도적으로 기울어진 지금의 힘의 구조 속에서 한국교회가 추상적인 중립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며 "복잡한 타래를 풀고 실천적 대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태윤 선교사 / 팔레스타인]
"미래의 세대를 보호하고 그들이 바르게 자라서 그 땅에 좋은 이웃으로 유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하는 일에 한국교회가 앞장서야 되지 않겠느냐…"
세미나 참가자들은 "종교적 신념이 정치적 폭력의 명분으로 소비되는 '기독교 시온주의'의 문제는 우리 신앙의 본질을 다시 묻게 한다"며 "한국교회가 침묵을 넘어 성찰과 연대, 공의와 환대의 길로 나아가자"고 당부했습니다.
CBS뉴스 오요셉입니다.
[영상기자 정용현] [영상편집 이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