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산 수국동산. 노원구 제공| ▶ 글 싣는 순서 |
①투표해 봐야 안 바뀐다고?… 일상이 콘텐츠가 된 동네의 비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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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면 공약은 넘쳐난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마음 한켠에는 늘 비슷한 의문이 남는다. "투표한다고 우리 삶이 정말 바뀔까."
서울 노원구 주민들도 처음엔 그랬다. "꽃 심는 데 예산을 왜 쓰냐"는 반응도 있었고, "구청장 바뀌어 봐야 우리 동네가 얼마나 달라지겠냐"는 냉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 노원의 풍경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폐역이던 화랑대역 주변은 기차 테마공원으로 변했고, 한때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초안산(위 사진)은 산책로와 수국동산을 갖춘 힐링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봄이면 붉은 물결처럼 10만 주 철쭉이 장관을 이루는 불암산 철쭉동산(아래 사)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동네 곳곳의 낡은 공원들도 새 단장을 거치며 '걸어서 5분 거리마다 정원'이라는 말이 더 이상 구호가 아닌 일상이 됐다.
변화는 특히 산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예전 영축산은 중증 장애인들에게 '같이 갈 수 없는 장소'였다. 돌길과 계단 앞에서 휠체어 이용자들은 산 중턱도 오르지 못한 채, 함께 간 사람들이 내려오기를 산 아래서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노원의 '무장애 순환산책로' 공약이 현실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완만한 데크길이 정상까지 이어졌고, 불암산 정상에는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됐다.
국제장애인문화교류서울노원구협회 우화숙 회장은 "이제는 다 같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불암산 정상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서울시 전체가 다 보여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산책길이, 누군가에겐 처음으로 '함께 정상에 오른 경험'이 된 셈이다.
철쭉동산. 노원구 제공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일상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주말마다 아이 손을 잡고 외곽 체험시설로 나가야 했다. 차 막힘과 주차 스트레스는 기본이었다. 어린이집 역시 아이들이 어려 먼 현장학습은 엄두 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노원의 부모들은 집 앞 공원과 정원을 '생활형 체험장'처럼 누린다. 화랑대 철도공원 기차마을, 불암산 나비정원, 새로 단장한 공원들이 유모차를 끌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생겼기 때문이다. 마들체육공원에는 장애·비장애 아동이 함께 뛰노는 통합놀이터가 들어섰고, 중평어린이공원은 서울형 키즈카페를 품은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한 학부모는 "이제는 유모차 끌고 걸어서 가면 되니까 너무 좋고 피로가 덜하다"며 "마치 문화시설이 공동육아를 해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집 교사들도 "교실 안에서 못하는 감성교육을 숲이 대신해 준다. 밖에 나가면 아이들 표정부터 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노원의 정원도시 정책은 단순히 '예쁜 꽃길' 만들기에 머물지 않았다. 쓰레기 투기장과 불법 경작지였던 공간이 공원과 힐링타운으로 되살아났고, 주민이 직접 마을정원사가 돼 동네 정원을 가꾸는 구조도 만들어졌다. 주민 참여로 조성한 '휴가든' 가운데 비석골 근린공원은 '대한민국 아름다운 정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주민들의 표현은 행정 성과 보고서보다 더 직관적이다.
"97세 어머니가 '효자 구청장'이라고 한다."
"예전엔 슬로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일이 기대되는 도시'라는 말이 공감된다."
"공짜라서 좋은 게 아니다. 일상이 콘텐츠가 되는 순간이 많아졌다." 정치는 종종 거대한 담론으로 이야기되지만, 유권자가 체감하는 변화는 의외로 작고 구체적이다. 집 앞 공원 하나, 유모차로 갈 수 있는 정원 하나, 장애인도 함께 오를 수 있는 산책길 하나.
노원 사례는 공약이 말에 그치지 않고 행정으로 구현될 때, 주민들은 정치의 무력감 대신 '표의 효능감'을 체감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시작은 결국, 내 일상을 바꾸겠다는 한 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