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2시쯤 정식으로 문을 연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본관 2층에서 학생들의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한아름 기자'5·18 최후 항쟁지' 옛 전남도청이 복원을 마치고 마침내 시민들에게 정식 개방됐다.
18일 오후 2시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문을 연 옛 전남도청에는 첫날부터 수많은 시민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안내 지도 동선 따라 마주한 80년 5월 흔적들
이날 오후 2시 개관 전부터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은 시민들로 북적였다. 광주 신가중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관람객들이 안내지도 책자를 받아 들고 차례로 입장했다.
관람객들은 안내된 동선에 따라 도청 본관, 도경찰국 본관 및 민원실, 도청 회의실, 상무관 등 80년 5월 항쟁의 거점이었던 건물을 차례로 둘러봤다.
시민들의 발길이 가장 먼저 머문 곳은 도청 앞마당에 서 있는 은행나무였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점령할 당시 이 은행나무에도 계엄군의 총알이 박혔다. 시민들은 계엄군의 총알을 품고 있었던 은행나무를 보며 당시의 긴박했던 현장을 가늠했다.
이어서 도청 본관 1층에 들어서자 당시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에 남은 흔적이 벽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걸음이 또 한 번 멈춰섰다.
경남 창원에서 광주를 찾은 김영애·옥채영(24) 씨는 "광주 여행 중 옛 전남도청 개관 소식을 듣고 왔다"며 "도청 내부의 탄흔을 직접 확인하고 시민군 기동타격대의 모자를 써보니 당시의 상황이 한층 실감 나고 아주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18일 오후 2시쯤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본관 1층에 여대생 박영순의 마지막 방송이 재현되고 있다. 이 가두 방송은 1980년 5월 27일 당시 계엄군의 '광주재진입작전'을 앞두고 도청에서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전달됐다. 한아름 기자본관 한편에서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당시 여대생 박영순 씨가 도청에서 한 마지막 가두 방송 음성과 재현 영상이 흘러나왔다.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절박한 음성을 청취하고 방을 나서는 관람객들 중에는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많았다.
80년 5월 당시 전남 장성에 거주하다 현재는 광주에 살고 있다는 강모(72)씨는 "하마터면 없어질 뻔했던 역사적 공간이 이렇게 복원되어 다행스럽다"며 "당시 도청에서 마지막 방송을 했던 박영순 씨의 목소리가 현장에서 생생하게 들려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어떻게 남을 위해 싸우고 제 피를 나눌 수 있나"
본관과 연결되는 옛 전남도경찰국은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이었던 문재학·안종필 열사가 숨진 채 발견된 곳이다. 문재학 열사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경찰국 3층에는 계엄군에 맞서다 산화한 문재학·안종필 열사를 기리는 추모판이 설치돼 있다. 일부 시민들은 추모판 앞에 한참을 서서 열사들의 넋을 기리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어서 도청 맞은편 상무관은 항쟁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이 임시 안치되었던 공간이다. 내부 영상실에서는 당시 항쟁 과정과 시신 수습 과정을 주제로 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관람객들은 자리에 앉아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이를 시청했다.
매년 5월 18일을 전후해 강원도에서 광주를 방문한다는 이재정(62) 씨는 "어떻게 한 사람이 개인의 이익이 아닌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싸우고 피를 나눌 수 있느냐"면서 "복원된 도청을 한 바퀴 돌며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개관 첫날 옛 전남도청을 찾은 시민들은 1980년과 연결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46년 전 그날의 의미를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