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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잠든 척 플레이?"…허술한 사건 종결, 성범죄 피해자들은 '고통' 뒤집힌 성범죄 수사…"보완수사, 피해자 보호 최소 장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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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건의 판단은 단순한 사실관계 확인을 넘어, 관계의 구조와 맥락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CBS노컷뉴스가 초기 수사에서 간과됐던 정황이 뒤늦게 드러나 결론이 바뀐 사례들을 살펴본 결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만 문제 삼거나 관계 맥락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사건이 종결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관련기사: "잠든 척 플레이?"…허술한 사건 종결, 성범죄 피해자들은 '고통').
이 때문에 사람의 판단이 개입되는 수사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걸러낼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 보완수사와 같은 '재검토 절차'가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용주, 직원에 16차례 성범죄…종속적 관계 간과된 초기 수사
대구지검 김천지청이 기소한 업무상위력에 의한 추행 사건을 면밀하게 되짚어보면 보완수사의 필요성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해당 사건은 식당 업주 A씨가 종업원인 피해자를 상대로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 등)로 재판에 넘겨진 사안이다.
A씨는 2021년 10월부터 12월까지 약 두 달간 총 16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신체를 만지거나 입으로 접촉하는 등 고용관계에서 비롯된 위력을 이용해 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또 잠든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하고, 피해자를 폭행하거나 휴대전화를 손상시킨 혐의도 함께 적용됐다.
사건은 2022년 1월 피해자의 고소로 시작됐지만, 같은 해 6월 경찰은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녹음파일 분석과 피의자·피해자 추가 조사 등 핵심 보완수사를 충분히 진행하지 않은 채 사건을 송치했다.
피해자는 피의자가 일부 범행을 시인하는 취지의 통화 녹음 파일을 제출했지만, 경찰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진술 신빙성 부족을 이유로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피해자가 지적장애가 있음에도 언어 능력이 유창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판단 능력 역시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며 피해자와 피의자를 재조사하고, 휴대전화 포렌식을 진행하는 한편 대검찰청 법과학분석과에 피해자 진술 분석도 의뢰했다. 대검 법과학분석과는 피해자를 직접 면담한 뒤 "언어 능력이 유창하다고 해서 사고력과 판단력을 과대 추정해선 안 된다"며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피해자의 행동을 둘러싼 해석도 엇갈렸다. 경찰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안부 연락을 하거나 친근한 태도를 보인 점 등을 불송치 판단의 근거로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검찰은 이를 관계 구조 속에서 해석했다.
검찰은 통화 녹음 등 피해자 휴대폰 포렌식 결과를 종합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생계와 주거를 의존하고 있던 상황을 확인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가해자가 소개한 다른 업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또 피해자 지인이 가해자 소유 주택에 세를 들어 살고 있어 관계를 쉽게 단절하기 어려운 구조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종속적 관계 속에서 나타난 행동을 두고 단순히 '피해자답지 않다'고 판단하기보다는, 오히려 업무상 위력에 의한 범행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은 이 같은 정황과 증거를 종합해 사건을 전면 재구성했고, 결국 A씨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초기 수사에서 간과됐던 증거와 관계 구조가 보완수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사건의 판단이 뒤집힌 것이다.
"가·피해자 관계 입체적으로 파악해야…단일 판단은 한계"
이 사건을 수사한 안주원(변호사시험 9회, 수원지검 성남지청 소속) 검사는 수사기관이 성범죄 사건의 특성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성범죄는 직접적인 물증이 남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들은 '나의 진술만으로 피해를 입증할 수 있을까'라며 고민하다가 신고하기를 주저하곤 한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증거를 발굴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안 검사의 설명이다.
안 검사는 수사기관이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 분석을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절차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수사기관도 결국 사람인 만큼 피해자를 직접 대면하며 받는 인상이나 주관적 판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전문기관 의견을 수사에 반영하는 것이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안 검사는 또 "피해자들은 법리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거나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특히 성범죄는 개인 간의 내밀한 영역에서 발생해 당시 상황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운 특성이 있는 만큼, 수사기관이 이를 보완해 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개별 수사자 감수성에도 영향…전반적 인식 개선 필요"
연합뉴스전문가들은 이를 특정 기관의 권한 문제가 아니라 절차적 안전장치의 문제로 본다.
성범죄 사건을 주로 대리하는 이은의 변호사(이은의 법률사무소)는 "수사 결과를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피해자 보호 장치"라며 "보완수사는 검찰을 위한 권한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줄이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완수사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특정 수사기관을 두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나온 요구"라며 "성범죄처럼 정황과 진술에 의존하는 사건일수록 초기 수사가 부실하면 이후 항고나 재정신청 절차도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완수사를 통해 최소한의 수사 기반이 갖춰져야 이후 판단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수사 결과는 제도뿐 아니라 개별 수사자의 판단과 감수성에도 영향을 받는 만큼, 수사 주체를 넘어서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무법인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 가운데도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된 사례를 여러 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수사기관이 어디냐가 아니라, 결국 사건을 담당하는 개별 수사자의 역량과 감수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현실"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특정 사례만으로 제도의 필요성을 단정하기보다, 수사 전반의 편차를 줄일 수 있는 구조적 개선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경찰이든 검사든 판사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구조 자체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