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정부가 기름값을 잡기 위해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지 일주일째다. 주유소 기름값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인하 속도가 더뎌 국민 체감 가격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정부의 강경책에도 '올릴 땐 빠르게, 내릴 땐 느리게' 전략이 유지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중동 사태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원유 수급 위기 단계를 '주의'로 격상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차량 5부제·10부제 등 적극적인 수요 억제 정책도 검토 중이다.
주유소 90% 휘발유 가격 내렸지만…인하 폭, 속도는 '거북이'
연합뉴스18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24.37원, 경유는 1821.73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최고가격제 시행 직전인 12일과 비교해 휘발유는 1898.78원에서 74.41원 하락한 수치다. 경유는 1918.97원에서 97.24원 내렸다. 정부의 강경한 억제책에 시장은 일단 반응한 모습이다.
시민단체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전날 발표한 전국 주유소 가격 동향 분석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시행 전보다 휘발유 가격을 내린 주유소는 9213곳으로 조사됐다. 이는 조사 대상인 전체 1만341곳의 89.34%에 해당한다. 경유는 9367곳으로 90.38%를 차지했다.
인하 비율은 높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인하 폭은 크지 않다. 감시단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는 중동 사태 발발 이후 4일 만에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84.61원 끌어올렸다. 반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4일차 때 내린 금액은 66.07원에 그쳤다. 경유 역시 전쟁 발발 이후 4일 동안 130.92원 올랐지만, 이후 하락 폭은 87.15원에 머물렀다. 결국 '올릴 땐 빠르게, 내릴 땐 느리게' 전략이 유지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정부가 정유사의 휘발유·경유 공급가를 지난 11일 대비 각각 105.9원, 211.2원 낮춘 것과 비교해도 인하 폭은 부족한 수준이다.
주유소가 기존에 높은 가격으로 구매한 물량을 소진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인하 폭이 제한적인 점을 고려하면 정책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당초 2~3일 내 시장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대표는 통화에서 "가격을 인하한 주유소 비율은 높지만, 전쟁 발발 이후 급격한 인상 폭을 고려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라며 "국민들이 체감 가격을 높게 느끼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중동 사태 장기화 시 '시한폭탄'…차량 5부제 등 검토 중
연합뉴스문제는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정부 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고가격제는 정부 재정으로 정유사 손실을 보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태가 길어질수록 부담이 '시한폭탄'처럼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부는 전날 오후 3시를 기점으로 원유 수급 위기 단계를 기존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다. 자원안보 위기경보는 관심-주의-경계-심각 4단계로 운용된다. 최근 중동 석유 생산·수송시설 파괴로 생산과 수출에 제한이 발생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불확실성이 커진 점이 격상 배경이다.
또 중동 사태 이후 국제 유가가 40% 안팎 상승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된 점도 고려됐다. 국제 유가가 최고가격제 상한선을 웃돌 경우, 정유사에 대한 보전 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이에 정부는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과 협력을 통해 비상시 우선 공급 물량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는 전날 UAE로부터 다양한 공급선을 통해 총 1800만 배럴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수요 억제'라는 고강도 대책도 검토 중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시행됐던 통제 카드가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오른 셈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차량 5부제 또는 10부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공공부문에 한정할지, 민간까지 확대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기후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자동차 5부제 등 에너지 수요 절감 방안을 주문한 만큼, 적용 범위와 시기 등을 포함한 구체적 시행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