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연합뉴스2004년 이라크 파병 논란 이후 20여년만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가 정치권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다만 과거와 달리 여야 모두에서 신중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경기 고양시 병·초선)과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비례대표·초선)은 17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각각 '반대'와 '신중' 입장을 밝혔다. 설사 파병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국회 동의와 국민적 공론 형성의 필요성을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시간 없어 빨리 나섰다…반대 목소리는 정상적 과정"
지난 16일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파병 반대 1인 시위에 나선 이기헌 의원. 의원실 제공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반대 목소리를 낸 이기헌 의원은 지난 16일부터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당 내에서도 매우 빠른 대응이다.
이 의원은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로, 시간이 많지 않다고 봤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기습적 파병 요청이 잘못된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요청에 따른 파병이 보수·진보의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파병 동의를 둘러싼 동맹 관계 우려, 불이익 감내 등을 이유로 정부가 파병에 빨려 들어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2004년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당시 여야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민주당 이기헌 의원. 의원실 제공이 의원은 과거 베트남전 파병을 언급하며 "당시에는 미국에 종속적인 구조였고, 경제적 이익을 기대한 측면이 있었다. 사실상 용병에 가까운 성격"이라면서, 이번 호르무즈 파병은 "차원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함정 진입 즉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고, 육지로부터 가깝기에 현재 군의 능력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다"는 취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 자체에 대해서도 '작심 비판'에 나섰다. 그는 "본인들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불안한 지역에 동맹국을 넣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하다"며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지역에 동맹을 투입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현 상황에서 교전이 벌어질 경우,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파병을 간 장병들의 안전은 물론, 중동 지역 인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 중동 외 이슬람 국가의 우리 국민들과 기업 등을 차례로 거론하며 "장기적으로 보면 큰 위해가 될 수 있는데, 위해 요소를 지금 만들어 둘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틀어지면 곤란하지만…" 보수서도 '신중론' 펴는 이유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 박희영 기자30년간 국방부를 출입한 전문기자 출신인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도 파병 문제가 거론되자마자 당 내에서 가장 빠르게 입장을 냈다.
그는 파병 필요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으면서도 "양면성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주 어려운 과제가 던져졌다"며 신중론을 폈다.
동전의 '한 면'은 한미동맹이다. 관세 협상, 대미투자 등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거센데 핵추진 잠수함, 핵연료 농축·재처리 문제 등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것도 많아 딱 잘라 거절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유 의원은 이라크 파병 당시 미국은 전투병을 요청했지만, 국민 여론과 안전 문제 등으로 위험도가 낮은 지역에 비전투병을 파병했던 사례를 들었다. "규모 자체는 1개 여단급으로,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처음 기대했던 규모와 달랐기에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른 '한 면'은 현실적인 리스크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는 이란의 기뢰·드론·미사일·소형 고속정 등 다양한 군사력이 집결돼 있어 위험도가 매우 크다. 인공지능(AI)과 드론 기술의 발달로 이 같은 무기체계들의 치명성은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유 의원이 "보수 진영에서도 선제적으로 파병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이라크 파병 때에 비하면 신중론이 크다"며 "그만큼 이라크전보다 복잡하고, 위험과 안전 문제 등이 더 안 좋은 상황이므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너무 늦으면 안 되지만, 미일 정상회담(19일) 결과 등을 보며 판단해야 한다"며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 박희영 기자군사적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청해부대의 대조영함(충무공 이순신급)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며 "
만약에, 굳이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 속에 보낸다면 이지스함(세종대왕급·정조대왕급 구축함) 정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경우 북한 미사일 대응 전력 문제가 제기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지스함 4척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교대로 북한 미사일 탐지와 함께 유사시 요격(정조대왕급)까지 담당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공군의 그린파인 레이더, 공중조기경보통제기가 중첩·보완 역할을 한다"며 "이지스함 승조원들은 3척 체제에서 근무 강도가 높아 매우 힘들어했는데, 현행 4척 가운데 1척이 빠지게 되면 또다시 강도가 높아진다. 그래도 구멍이 뻥 뚫리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야 모두 "파병한다면, 동의안 다시 의결"…'다양한 의견' 제시 필요성도
두 의원은 만약 파병이 진행될 경우, 동의안을 국회가 새로 의결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이 의원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파병과 관련해서는 어떤 이유이든 국회 동의는 필수"라며 "집권 여당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단일한 목소리'가 나오는 일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 대신 "국회가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론 형성의 장에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도록 해야 한다"며 "특히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국회에서 나오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강조했다.
행정부 또한 그러한 반대의 목소리를 판단 근거로 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 의원도 "청해부대의 현재 임무(해적 퇴치, 우리 국민 보호)와 달리 지금 같은 전투 상황에서의 파병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며 "국회의 새로운 파병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나치게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보수주의자이지만 찬성하기 어렵다"면서도 "안전이 담보된다면 한미동맹과 해상교통로 보호 측면에서 찬성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파병의 시기, 규모, 성격이 관건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그 또한 이번 국면에서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유 의원은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어떤 요청이 있었고, 어떻게 협의되고 있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국회가 자연스레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공감대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선 이미 논의 시작…안규백도 "국회 동의 필요"
윤창원 기자
국회에서의 관련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날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조현 외교부 장관·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각각 관련 질문이 집중됐다.
조 장관은 파병 관련 공식·비공식 요청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요청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첫 언급이 트럼프 대통령의 SNS였다는 점을 다분히 의식한 답변이다.
안 장관은 "SNS에 메시지를 남긴 건 공식 요청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며, 공식 요청이 올 경우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엔 "공식 요청이 오기 전에 내부적으로 여러 검토는 하는데 아직 공개할 사항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다만 안 장관도 "호르무즈 해협은 실질적인 전쟁 상황"이라며 "헌법 60조 2항에 의거해 반드시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도 "대외적으로는 약간의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오직 국익과 국민의 생명을 염두에 두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절차를 거치겠다"고 말했다.
정부 또한 여야 할 것 없이 분출된 '신중 대응' 요구를 주목하면서, 미국의 요구에 대한 대응을 해 나갈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