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전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가운데, 당초 제출된 원안에서 최소 28개 조항이 변경되거나 추가·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법안은 이르면 이달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자가 직접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점을 감안해 사업자에게 제조 과정과 인허가 등에 관한 정보를 청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된 점은 피해자에게 유리한 변화다. 다만 기존에 구제급여를 받아온 일부 피해자의 민사재판청구권을 제한하는 불리한 수정도 있었다.
이번 전면 개정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국가 책임을 인정한 지난 2024년 6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건을 '사회적 참사'로 인정하고 '국가배상' 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지난해 12월 원안이 발의된 뒤 지난달 국회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최종 수정된 대안이 제출되는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원안이 왜, 어떻게 수정됐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러한 방식의 입법은 향후 위헌 논란, 제도 불신, 사회적 갈등을 확대시킬 위험이 있다"며 "국회가 본회의 처리 이전 단계에서라도 피해자 단체와의 공식 협의 절차를 즉각 진행하고, 피해자 권리 침해 우려가 제기된 조항들에 대해 실질적이고 전면적인 재검토에 착수할 것"을 촉구했다.
원안서 최소 28개 조항 변경…국회 대안 마련
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여당 주도로 추진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전부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뒤 지난달 6일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심사, 같은 달 11일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를 거치며 당초 원안에서 최소 28개 조항이 변경되거나 추가·삭제됐다. 이 같은 수정사항이 반영된 대안은 바로 본회의에 부의돼 이달 중 의결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CBS노컷뉴스가 비교·대조한 원안과 대안 변경 사항 가운데 유의미한 부분은 9건이다.
우선 국가배상 절차를 신청한 피해자의 배상 여부와 배상액 등을 정하는 '가습기살균제 배상심의위원회' 구성 요건(제7조 제3항)이 일부 달라졌다. 심의위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30명 이내 위원으로 법관·변호사·관련 전문의·기후에너지환경부와 법무부 소속 고위공무원 또는 검사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원안에서는 전체 위원 중 법관과 변호사의 비중을 '3분의 2 이상'으로 정했지만 수정안에서는 '과반 이상'으로 줄였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배상심의위에서 법률 전문가 수가 줄면 향후 법리 판단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견해와 함께,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단에 필요한 전문의 비중이 늘어난다면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가습기살균제뿐 아니라 석면, 살생물제 등 환경오염 피해 구제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환경피해관리센터'를 설립해 운영하려던 계획이 '가습기살균제 전담센터'로 좁혀진 점도 눈에 띈다(제20조). 보호 범위를 줄이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지만 전담센터를 두는 것이 법령 취지에 더 부합한다는 해석도 있다.
또 원안에서는 원료물질 사업자도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납부하는 분담금의 '100분의 45'에 해당하는 금액을 별도 분담금으로 납부하도록 명시했지만 수정안에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으로 변경됐다(제31조 제5항). 이로 인해 추후 분담금 규모가 줄어들 경우 피해자에게 불리한 수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피해자의 정보청구권을 보장하고 이를 강제할 수단까지 명시해 권리를 강화한 조항이 새롭게 포함된 점은 피해자에게 유리한 수정으로 꼽힌다. 대안 제40조, 제41조, 제49조는 원안에는 없었다가 기후환노위 심사 과정에서 추가됐다.
제40조는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과 범위, 구상권 범위를 확정하기 위해 가습기살균제 사업자와 원료물질 사업자에게 제조 과정, 사용 설비, 사용 물질의 종류와 농도, 독성, 생산·판매 및 인허가 등에 관한 정보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자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정보 제공을 거부할 경우 주무 부처인 기후부 장관이 판단해 정보 제공이나 열람을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제41조는 법원이 자료 제출을 명령하거나 거부 사유를 판단해 열람 범위를 지정할 수 있도록 했고, 제49조에서는 정보 제공이나 열람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연 1회 1억 원 범위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제35조에도 이 같은 수정 내용이 재차 반영됐다.
민사청구권 제한 등 불리한 수정…피해자는 몰랐다
부칙 제6조 2항이 삭제된 점은 피해자에게 불리한 수정으로 지목됐다. 삭제된 조항은 기존 특별법에 따라 유족과 피해자로 인정돼 구제급여를 받아온 경우 과거의 구제급여 청구 시점부터 10년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가 중단돼 권리 구제를 위한 추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법무부 반대로 삭제됐다. 우리 법률 체계에서 허용되지 않는 소급입법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기사: 가습기살균제 '소멸시효 중단' 조항 삭제…10년 전 피해자 영향은)그러나 기존 구제급여는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기에 마련된 특별법에 따른 제한적인 구제수단이었고,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피해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해당 부칙 삭제는 피해자에게 불리한 수정이라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칙 제8조 역시 기존 인정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급여 지급 중단 사유를 추가해 불리한 수정으로 지적됐다. 기존 인정 피해자들은 구제급여가 이번 개정법 시행으로 손해배상금으로 전환되기 전까지 구제급여를 계속 받을 수 있지만 손해배상금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6개월 이내 제출하지 않을 경우 제출 기한이 지난 시점부터 구제급여 지급을 중단하도록 하는 제8조 1호가 대안에 추가됐다.
민변 노동위원장인 정병욱 변호사는 "부칙 변경은 모두 피해자 측에 불리하게 변경된 것으로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6조 2항 삭제를 두고 "피해자들이 정부 배상에 이의가 있으면 소송으로 가야 한다"며 "법무부 반대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 사건은 특수한 경우고 피해자가 워낙 많고 (피해를) 몰랐다가 (피해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소멸시효 자체에 대해선 특례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1997년 제품이 출시돼 판매되다가 원인 미상의 폐손상 환자가 다수 발생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가 조사에 착수한 건 2008년, 제품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확인한 건 2011년이다. 국가 책임 역시 2024년 6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야 인정됐다. 이 같은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독소조항 그대로" 본회의 전 재논의 요구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간담회. 연합뉴스이 같은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민변 환경보건위원장 남성욱 변호사는 원안에 있다가 대안에서도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반영된 일부 조항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본칙의 소멸시효 조항(대안 제42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번 개정안은 '피해 발생일부터 30년까지'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장기소멸시효를 폐지한 점이 큰 변화로 꼽힌다. 그러나 '피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10년까지'인 단기소멸시효는 그대로 유지됐다. 남 변호사는 "부칙 제6조 2항 삭제와 마찬가지로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들이 손해배상금을 받기 위해 증빙서류를 첨부해 배상심의위에 신청해야 하는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한 제12조 2항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배상심의위의 지급 결정 이후에도 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지급 신청을 하지 않으면 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보는 제17조 2항 역시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고 지적했다. 배상심의위 결정에 불복해 재심의를 신청할 때도 30일 이내에 서류를 갖춰 신청하지 않으면 지급 신청이 철회된 것으로 간주된다.
배상심의위의 손해배상금 지급 결정에 동의하면 국가 및 가습기살균제 사업자와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 제19조에 대해서도 "지급 결정을 받아들이면 이후에는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없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민변 환경보건위원회와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이튿날인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피해자 단체와의 공식 협의, 공청회, 의견 제출 절차가 사실상 배제된 채 전부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한 것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며 "대규모 사회적 재난 관련 입법에서 피해자 참여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요소"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이 사실상 마지막 입법 수정의 기회"라며 "법사위 통과는 입법 절차의 한 단계일 뿐 입법적 정당성과 헌법적 정당성까지 완성됐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국민의 생명과 건강, 인권과 직결된 법률이라면 본회의 이전 단계에서라도 충분한 재검토와 수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후부, 법안 수정 내용 뒤늦게 피해자에 안내
기후부 손삼기 환경피해구제과장은 "법안(원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8월 피해자 단체 대표-장관 간담회를 비롯해 5차례 온라인 간담회를 진행하고 제출 이후에도 12월 29일 온라인 간담회를 개최해 참여자 253명 가운데 53명의 의견을 제출받는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또 "이런 의견 수렴 내용이 국회 심사 과정에서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했다"면서 "다만 공청회 개최 여부는 국회 기후환노위에서 의결로 정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본칙 제42조와 부칙 제6조와 관련된 단기소멸시효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의 단기소멸시효 삭제 요구를 반영해 제42조에 소멸시효 특례 조문(중단 사유 규정)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제42조 2~3항에는 배상심의위 심의 기간 동안 민사재판 청구권 소멸시효를 중단하고, 심의 결정서를 송부받은 날부터 10년의 소멸시효가 새로 시작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해당 조문을 기존 피해구제 신청까지 포괄하도록 확대 적용하기 위해 적용례를 추가로 만들어 (부칙 6조 2항) 시도했지만 관계 부처 반대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위헌성 등이 지적돼 결국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또 "부칙 제6조 2항 삭제로 민사재판 청구권이 제한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일부"라며 "대부분의 피해자는 기존 특별법보다 단기소멸시효가 늘어나는 효과를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피해자 김경영씨는 지난달 25일 기후부가 개정안 통과와 관련해 마련한 간담회에서 "법안이 2월 11일 법사위를 통과했다면 최초 안호영 의원이 발의한 원안에서 어떤 부분이 수정됐고 무엇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는지 사전에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다른 피해자들도 "오늘 이 자리에서 설명해주는 줄 알았다",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김성환 장관은 "앞으로의 구제 절차를 담은 종합 안내서에 법안 수정 내용을 추가해 3월 10일 전까지 각 가정에 전달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기후부는 각 가정에 우편으로 안내서를 발송하고 해당 내용을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에도 게재할 계획이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은 2017년 2월 제정돼 같은 해 8월 시행됐고 이후 2018년과 2020년 일부 개정을 거쳤지만, 전부 개정이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장관은 개정안 처리 시점과 관련해 "늦어도 3월 안에는 처리될 것으로 본다"고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