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CBS는 3·1절을 맞아 우리 민족의 상징, 태극기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태극기는 3·1운동부터 분단과 냉전, 군사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최근의 '태극기 집회'까지 같은 태극기지만 전혀 다른 얼굴로 사용돼 왔는데요.
오늘은 시대를 통과하며 끊임없이 새 의미를 덧입어 온 태극기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오요셉 기자입니다.
[기자]
1919년 3·1운동 당시 태극기는 전 민족을 아우르는 깃발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사용이 금지됐던 태극기가 3·1 만세운동을 통해 다시 광장에 등장하면서, 태극기는 독립과 자주, 민주공화국의 꿈을 상징하는 민족 보편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교회와 기독학교는 독립선언서 인쇄와 태극기 제작·배포의 핵심 거점이 됐고, 교인들은 한 사람의 신앙인이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최영근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회가 공감한 3.1 운동의 정신이 뭐냐 하면, 독립선언서에 표출된 민주주의에 기반한 건강한 민족주의, 여기서 민족은 하나의 종족주의가 아니고요. 한 사람 한 사람 2천만 대한국민으로 대변되는 바로 그 시민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래서 건강한 나라, 민주공화국의 이상이 이미 있었던 것이죠."
장신대 최영근 교수는 "3.1운동 이후 상해에서 조직된 임시정부는 왕정 복고를 추구한 게 아니라, 민주공화제도를 채택했다"며 "새로운 체제를 형성해 냈다는 측면에서 3.1 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철저히 세계의 평화와 인류 공존에 기여해야 한다는 3.1운동의 정신은 기독교 사상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자료사진해방 이후, 분단체제 아래에서 태극기의 성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3·1 정신의 건국이념을 담은 국기로 출발했지만, 남북 분단과 미·소 냉전이 겹치면서 태극기는 점차 반공주의 국가를 대변하는 상징체계로 협소해졌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념 대결의 경험이 더해지자, 태극기는 공산주의의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체제를 수호해야 하는 전투적 반공주의의 상징으로 굳어졌습니다.
특히, 정당성 확보를 위해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군사 독재정권은 태극기를 앞세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 태극기는 민주화운동의 광장에서도 펄럭였습니다.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1980년대 거리 시위에서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독재 정권에 저항했습니다.
같은 태극기이지만 한쪽에선 국가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 다른 한쪽에선 민주주의와 주권재민의 깃발로 쓰인 겁니다.
[손승호 박사 /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사무국장]
"태극기 앞에 국가와 민족에 대한 완벽한 순종·복종을 강요하게 되는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고, 그런 상황 속에서 국가라고 하는 것이 어떤 조직이어야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갖는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게 되면서, 태극기 안에 이제 좀 더 민주· 자유· 평화 이런 가치들이 스며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죠."
민주화운동 당시 태극기를 흔드는 시민들의 모습. 자료사진2000년대 들어 등장한 '태극기 집회'는 태극기의 의미를 다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해방 직후부터 누적된 반공주의적 태극기 전통 위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기점으로. 특정 정치 세력과 극우 이념을 상징하는 깃발처럼 비쳐습니다.
여기에 반공 국가주의와 결합한 한국교회 일부의 왜곡된 근본주의 신앙이 더해지면서, 복음보다 권력과 힘을 앞세우는 '극우 기독교·태극기 부대' 현상이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홍승표 박사 /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연구이사]
"태극기가 펄럭이는 자리에 성조기나 이스라엘 국기도 같이 동원되는 것은 특정 국가나 정치 이념, 정치 세력, 그리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씀드리면 권력을 지향하는 거거든요. 힘을 숭배하는 거고. 국가 권력으로부터 종교적 특혜를 입는 정치적 메커니즘 안에서 국가주의적 개신교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국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거죠. 예수님의 복음과는 솔직히 상반되는 겁니다. 권력과 제휴되고 힘을 숭배하는 수단으로 동원되는 것, 그것은 비복음적이다…"
역사의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상징해온 태극기.
오늘 우리가 들어 올려야 할 태극기의 얼굴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다시 한번 묻게 합니다.
CBS뉴스 오요셉입니다.
'태극기집 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흩날리는 모습. 자료사진[영상기자 이정우 정선택 ] [영상편집 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