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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쿠팡은 왜 '진짜' 미국인을 대표에 앉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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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론/칼럼

    [칼럼]쿠팡은 왜 '진짜' 미국인을 대표에 앉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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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의원 질의에 답변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의원 질의에 답변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국회 청문회 등에 불려간 기업인들이 청문회를 돌파하는 전술은 크게 두 가지.
     최선책은 정확한 사실 관계와 설득력 있는 논리, 명백한 근거 제시 등으로 국회의원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차선책은 어리숙한 동문서답으로 의원들의 공세 의지를 지레 포기하게끔 하는 방법이다. 한마디로 아주 똑똑하거나 아니면 바보 노릇을 해야 무탈하게 국회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연말 있었던 쿠팡 청문회에서 쿠팡 대표는 어떤 전술을 썼을까?
    똑똑함도 아니었고 바보스러움도 아니었다. 의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도발'이었다. 청문회에 출석한 해럴드 로저스 한국 쿠팡 임시 대표는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는 태도로 언성을 높였다. 로저스 대표의 도발적 태도는 한국 구회의원들을 실제로 자극했고 일부 의원들은 호통으로 로저스 대표를 누르려 했다.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쿠팡은 그동안 한국인 (또는 한국계)을 한국 쿠팡 대표로 임명해왔다. 그런데 한국 국회의 청문회를 앞두고 국적도 외모도 '진짜' 미국인인 로저스를 임시대표로 임명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한국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로저스를 대표로 임명한 것은 청문회 돌파용 '2번 전술'을 쓰려는 계산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보인 로저스 대표의 태도는 이와 거리가 멀었다.

    우려스러웠다. 백인의 미국 기업인이 동양의 정치인들에게 둘러싸여 '조리돌림' 당하는 장면을 미국의 정관계 인사들은 어떻게 인식할지 뻔하기 때문이다. '감히 누가 미국인을 건드리냐'는 식의 '미국 우월주의'를 부추길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가 지난 23일 쿠팡 청문회를 비공개로 열었다. 쿠팡이 한국 정부로부터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았는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로저스 대표를 불렀다. 쿠팡은 한국 국회에서 로저스 대표가 '수모'를 겪는 영상 등을 미 의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저스 대표 역시 '유출된 개인정보에 금융 결제 정보가 없어 민감하지 않다'거나 '유출 규모가 고작 3300여건에 불과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쿠팡이 미국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내 존재감은 미미하다. 아마존이 미국 내 이커머스 시장의 40% 정도를 장악하고 있고 월마트와 애플, 코스트코 등 거대기업들이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쿠팡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독점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쿠팡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한국 시장에서 창출하고 있다.
     
    쿠팡은 또 한국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했다. 무료 배송과 자유로운 환불 및 교환,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되는 '로켓 배송'과 신선 식품 세벽 베송인 '로켓 프레시' 등등 한국 소비자에 맞는 서비스로 시장을 석권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왼쪽)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 하원 법사위에서 비공개 증언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왼쪽)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 하원 법사위에서 비공개 증언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쿠팡 성공의 이면을 한꺼풀 벗겨보면 착취에 가까운 '노동력 쥐어짜기'가 있다. 한 방송사의 잠입 취재에 따르면 배송될 물품을 선별해 포장하는 일용직 노동 현장은 속도를 높이라는 관리자들의 고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UPH(시간당 처리 개수)가 떨어지는 노동자는 수시로 관리자에게 불려 갔다. 심지어 화장실도 보고하고 가라는 관리직의 말은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깝다며 여공들의 저녁 식사에 국을 주지 않았던 1970년대 노동현장을 떠올리게 했다.
    전쟁같은 심야 노동으로 일용직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시간당 1만원 정도로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쿠팡은 이마저도 줄이기 위해 퇴직금 '리셋 규정'과 같은 위법적 내용을 취업규칙에 담기도 했다.
     
     반 인권적 노동을 고집하는 '듣보잡' 기업을 위해 미 의회가 청문회를 연 것은 앞서 지적했듯 미국 우월주의가 작용했다고 본다. 미국 기업을 지키는 것이 미국 경제를 살리는 것이요, 미국 기업의 잘잘못은 오직 미국만이 판단한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쿠팡의 미 정관계 로비는 이런 심리를 적극 활용했을 것이다.
     
     이번 청문회가 한국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무역법 301조발동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쿠팡은 청문회가 끝난 뒤 성명을 내고 "쿠팡이 양국 경제 관계 개선과 안보 동맹 강화, 무역 투자 증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일개 기업이 안보 동맹 운운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그럼에도 쿠팡의 성명에 주목하는 이유는 '미국과 관세 협상이 흔들리니 안보 협상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한국 정부의 딜레마를 쿠팡이 꿰뚫어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쿠팡을 처벌하면 미국 정부가 한국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고 한미 간 관세 문제가 헝클어지면 핵 재처리와 핵 추진 잠수함 건조 등 한국 정부가 바라는 안보 현안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압박이 읽힌다. 현실성 없는 과대 해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명을 낸 사람이 랍 포터 쿠팡 본사 글로벌 대외협력 최고책임자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국 정부를 조롱하고 경제를 쥐락펴락하려는 쿠팡의 행태에 직접적이고 궁극적 피해자인 한국 소비자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머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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