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장서 원문. 국립한국문학관 제공3·1절을 맞아 국립한국문학관이 '파리장서' 친필 원본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3·1운동 직후 전국 유학자들이 파리평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한국문학관(관장 임헌영)은 24일 '3월을 빛낸 문학인'으로 곽종석과 김창숙을 선정하고, 두 사람이 협의해 작성한 '파리장서' 원본을 공개했다. 공개 자료는 곽종석의 친필로 작성됐으며, 후대 한학자 이가원과 정무연이 남긴 배관기(拜觀記)까지 덧붙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이른바 '파리장서 사건'은 3·1 독립선언서에 유림 대표의 서명이 없었던 데 대한 자각에서 출발했다. 김창숙이 대표 역할을 맡아 전국 유학자들의 뜻을 모았고, 거창의 유학자 곽종석에게 초안을 부탁해 함께 자구를 다듬으며 최종본을 완성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전국 137명의 유학자가 연명한 독립청원서가 마련됐다.
작성된 장서는 상해를 거쳐 파리로 전달될 예정이었으며, 당시 한국 대표로 파리에 파견돼 있던 김규식에게 우송됐다. 곽종석은 원문을 한 줄씩 찢어 짚신 속에 감추는 방식으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달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이후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서 곽종석, 김복한 등 20여 명이 옥고를 치렀다.
김창숙은 당시 상황을 두고 "망국의 책임을 져야 할 유교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어찌 그 부끄러움을 견디겠는가"라고 통탄했고, 곽종석은 "오늘이야말로 죽을 곳을 얻었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된다. 문학관은 이러한 발언이 지식인으로서의 자각과 결단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파리장서'는 여러 문헌을 통해 내용이 전해졌지만, 친필 원본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문학관은 "이번 공개로 자료의 실체를 온전히 확인하게 됐다"며 "3·1운동이 신분과 처지를 막론한 전 국민적 독립운동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료"라고 밝혔다.
특히 이 문서는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외교문서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전통 사상에 기반한 장중한 문장으로 독립과 평화의 가치를 설파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무게와 문학적 전달력을 함께 갖춘 텍스트로 평가된다. "진실로 만국이 평화하다 할진대 우리 한국도 만방의 하나이니 어찌 우리만 평화롭지 않겠는가"라는 구절은 지금 읽어도 울림을 준다.
'이달을 빛낸 문학인' 곽종석·김창숙. 국립한국문학관 제공 국립한국문학관은 자료 공개와 함께 곽종석과 김창숙을 '이달을 빛낸 문학인'으로 선정하고, 오는 3월 26일 성균관대학교에서 '파리장서'를 조명하는 학술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달을 빛낸 문학인'은 국립한국문학관이 새로 기획한 사업으로, 매달 기념할 만한 문학인을 선정해 관련 자료 공개와 연계 행사를 진행한다. 문학관은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