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설 명절을 앞두고 탈루 혐의액 5천억원 규모의 생필품 업체 14곳에 대해 국세청이 칼을 빼들었다. 밀가루와 조미료, 농산물부터 생활용품과 프랜차이즈까지 가격은 올리고 세금은 줄인 업체들이 주요 대상이다.
국세청은 9일 먹거리와 생활필수품 가격 상승으로 물가 불안을 초래한 14개 업체를 대상으로 4차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가격 담합 등 독·과점 구조를 활용한 가공식품 제조업체 6곳, 농축산물 유통·생필품 제조업체 5곳,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3곳이며, 이들의 탈루 혐의 금액은 약 5천억원에 달한다.
거짓 계산서 수취하여 담합이익 축소하고, 사주 일가 인건비 과다 지급, 계열사로부터 고가 매입하여 담합이익을 분여한 밀가루 가공업체. 국세청 제공이번 조사에는 최근 검찰에 의해 담합 혐의로 기소된 밀가루 가공업체 대한제분이 포함됐다.
대한제분은 제조사 간 가격과 출하량을 사전 조율하는 방식으로 최근 5년간 제품 가격을 44.5% 인상했으며, 거짓 계산서를 주고받아 원재료 단가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약 1200억원 규모의 탈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주 일가에게 수십억원의 인건비를 과다 지급하고 장례비와 고급 차량 유지비 등을 회사 비용으로 처리한 사실도 드러났다.
간장·고추장 등을 생산하는 조미료 업체는 원재료 국제가격이 하락했음에도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제품 가격을 10% 이상 인상했다. 늘어난 영업이익 역시 사주 자녀 소유 법인과의 고가 거래나 임차료 지급 등을 통해 축소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도 할당관세로 낮은 가격에 과일을 수입하고도 소비자 가격은 오히려 인상한 청과물 유통업체, 특수관계 법인을 거쳐 유통비용을 부풀린 생활용품 업체, 원재료비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는 동시에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을 활용한 분식 프랜차이즈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일부 프랜차이즈는 로열티와 광고분담금 등을 신고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먹거리 독・과점 업체 등 총 1785억원 추징. 국세청 제공
국세청은 지난해 9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물가 관련 탈세 의심 업체 103곳을 조사했으며, 이 가운데 53곳에 대해 1785억원을 추징했다.
특히 맥주·라면·아이스크림 등 독과점 구조 업종에 대한 추징액이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시장 점유율 1위인 오비맥주는 음식점 리베이트와 특수관계 법인 거래를 통해 가격 인상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한 것으로 확인돼 천억원을 추징받았다.
국세청은 공정거래위원회나 검찰·경찰 수사에서 담합이나 독과점 행위가 확인될 경우 조세 탈루 여부를 정밀 분석해 즉시 세무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이번 조치는 물가 안정을 강조하고 있는 정부 기조와도 맞물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독과점을 이용해 국민에게 고물가를 강요하는 행위는 국가의 공권력을 총동원해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국세청은 "물가 안정 지원도 국세청의 기본 업무"라며 "장바구니 물가 불안을 야기하는 탈세와 불공정 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