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 작품 '거미집' 스틸컷. 이 영화는 걸작을 만들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겪는 어느 감독의 여정을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 바른손이앤에이 제공'무엇을 할 것인가.'
어쩌면 우리 주변 흔한 물음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만한 평범한 문장이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 보면 그것은 단순한 물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당장 행동하고 실천하라는, 물음을 가장한 능동의 요청인 까닭이다. 지금 여기, 벼랑 끝에 내몰린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약을 선언하는 머릿돌 첫머리에 쓰일 법한 제언이다.
'영화, 무엇을 할 것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영화를 이렇게 풀이한다.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해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
이 점에서 영화와 영화관을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커다란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 시스템은 스펙터클로 대변되는 영화만의 특징으로 흔히 거론된다. 이와 더불어 영화관은 때때로 오감으로 각인된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기도 한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백재호 이사장은 "예전에 본 영화를 떠올리면 어느 영화관이었는지까지 기억나는 경우가 있다"며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지닌 매력 덕분일 텐데, 지금 멀티플렉스는 그러한 개성이 사라진 탓에 콘텐츠로서 영화만 남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백 이사장은 "독립예술영화관을 찾아 다니는 관객들은 그 공간적인 매력에 끌리는 것"이라며 "그러한 극장들이 살아남아 우리 주변에 가까이,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세상이 삭막해졌다고들 하는데, 사람들이 영화를 같이 보려고 모이지 않아서 삭막해진 것인지, 삭막해졌기 때문에 더는 모여서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인지, 뭐가 먼저인지 알 수 없다"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본 뒤 밥 먹으면서 편하게 영화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우리 삶 속에 영화와 함께하는 순간들이 다시 한번 깊게 뿌리내리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지난 2021년 6월 22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점에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관객에게 영화 예매 할인 혜택을 준다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박종민 기자'연결' '공감' '위로'…문화공간 극장, 본질에 충실하라
공간으로서 영화관은 집단 경험의 장으로 널리 회자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이 주는 위로와 공감의 정서 덕에 '연결'되고 싶은 우리네 열망이 다소 해갈되는 까닭이리라.
이는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나 OTT 플랫폼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싱어롱(sing-along) 상영관에 관객들이 운집하는 이유일 것이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케데헌' 싱어롱 관객들은 이미 넷플릭스로 그 콘텐츠를 여러 번 봤을 텐데도 돈과 시간을 들여 영화관에 다시 모였다"며 "결국 한데 모여서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이는 '연결' '공유' 등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키는 공간으로서 극장의 가치"라고 설명했다.
영상콘텐츠 비평가인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윤석진 교수는 "영화가 일상에서 가장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이라면, 영화관은 문화예술활동 공간이 되는 게 맞다"며 "멀티플렉스 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익을 외면할 수 없으니 팝콘 등 먹거리 판매에 치중하는 측면도 있겠으나, 이젠 여가 활동을 중시하는 소비자 인식 변화에 맞춰 영화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가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은 회장 역시 "지금 영화관은 관객이 크게 줄어 수익 구조가 좋지 않은 탓에 인력을 줄이고 시설 재투자도 못하니, 서비스 질까지 낮아지는 악순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단기 이익을 좇는 이러한 행위는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 때 관객 발길을 더욱 끊기게 만드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영화관이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극복하려면 스크린 상한제 등 조치로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도록 하고, 극장 측이 손해 보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제도적으로 어떻게 보완해 줄 수 있는지 심도있게 고민돼야 한다"고 봤다.
지난해 9월 1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새로운 경험 창출 실험 '타개책'…"불행 아닌 불황일 뿐"
한국영화와 영화관이 코로나19 이전, 이른바 황금기로 당장 되돌아갈 리는 만무하다. 그러기에는 이미 먼 길을 지나온 듯하다.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이원재 교수는 "영화와 극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전히 극장이 주는 스펙터클이 필요한 영화가 있다"면서도 "단 극장 경험 외에도 다양한 대안적 미디어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극장 몫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길이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매체 기술과 서비스 다양화로 인한 극장 산업의 상대적 약화는 불가항력적인 성격이 있다"며 "앞으로 극장 시스템이 새로운 소비자 경험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향후 극장 산업의 전망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당장 수익이 없어도 다양한 미디어 경험을 위한 실험과 시도들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이 안에서 극장도 나름의 새로운 시도와 실험들을 통해 현재 상황을 진취적으로 타개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이동하 대표 역시 "할리우드 등지에서 활동하는 명감독들을 중심으로 큰 스크린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화적 언어를 찾아내 보여 주려는 시도가 일고 있다"며 "이렇듯 다시 처음부터 쌓아 나가려는 창작자들과 프로젝트 진행자들의 이심전심 어린 동참이 결국 관객들을 다시 한번 극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은 회장은 "한국영화는 호황 뒤에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결코 '불행'이 아니다. '불황'일 뿐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희망은 여전히 살아 있다"며 "그 희망은 최근 주목받는 독립영화계의 새로운 시도가 담긴 영화들인데, 지금 칸·베니스 등 유수 국제영화제에서 그 존재를 미처 모를 뿐"이라고 전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한국영화가 산업적 측면에서 성장에 치중해왔다면 이제는 문화적 측면도 함께 살펴보고 가꿔 나가야 할 때"라며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영화계뿐 아니라 관객, 정부, 국회 등이 다같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