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준 대표이사. 유튜브 '쎈 홍 선생' 화면 캡처서울대학교에 1천억 원 기부로 화제가 된 교육 출판사 '좋은책신사고(이하 신사고)'의 홍범준 대표를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
핵심은 비윤리적 기부자의 돈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다. 홍 대표의 이번 기부는 국내에 생소했던 '오염된 기부'에 대한 논쟁의 도화선이 됐다.
반복된 지사·총판 숙청과 실종된 구성원 존중
홍 대표의 '악명'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건 2021년 초부터다. 홍 대표는 학원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철수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가맹지사들과 계약을 해지했다. 당시 신사고는 '쎈수학 러닝센터'와 '스마트쎈 클래스' 등 2개의 학원 프랜차이즈를 운영해 전국 36개 지사에 849개 가맹점(학원)을 유치했다.
학원 프랜차이즈 사업 규모는 급성장했지만 이익 실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다. 홍 대표는 망설임없이 사업을 정리했다. 방식은 비열했다. 영업 실적 상위 10위권 지사와 보통 실적을 낸 지사, 활동 2달 밖에 되지 않는 지사를 섞어 전체 가맹지사의 80%에 계약해지 통보를 했다. 계약 해지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어 지사장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보통 프랜차이즈 본사는 사업 초기 영업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영업권을 지사에게 일임하는 대신 그들이 유치한 가맹점이 본사에 보내는 가맹비 일부를 지사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나눠주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신사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업이 일정 수준 이상의 궤도에 올랐음에도 이익이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자 지사에 보내던 수수료를 줄이려 했다.
2021년 당시 신사고아카데미 산하 '쎈수학러닝센터' 지사장들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 쎈수학러닝센터지사혐의회 제공이익 독점 목적…"불법 아닌 갑질" 법의 사각지대 악용
수천 명의 생계가 달린 일이었지만 홍 대표는 소송을 제기한 지사장들에게만 법원 판결에 따라 마지못해 보상했을 뿐 나머지 피해자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본사와 가맹지사의 계약이 '연 단위'로 이뤄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갑질일 수 있지만 불법은 아니라는 행태였다.
그의 계약해지 방식 앞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쩔쩔맸다. 수많은 지사장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찾아갔지만 '위법은 없다'는 대답만 들을 뿐이었다.
홍 대표의 갑질은 연례행사처럼 이어졌다. 2022년 말에는 매출의 30% 이상을 책임지던 핵심 총판 15곳을 내쳤다. 이후 새로 모집한 총판과는 "총판이 오픈마켓 플랫폼을 이용한 유통행위를 금하고 이를 어길 시 별도 통보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문구를 넣어 계약했다.
온라인 판매 이익에 대한 수익배분 문제는 신사고 본사와 총판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난제였다. 홍 대표는 기존 체제에서 총판이 갖고 있던 온라인 판매 실적을 본사로 돌렸다. 이 계약 해지 역시 '갑질'일뿐 불법은 아니었다.
결국 홍 대표의 갑질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2021~2022년 홍 대표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지만 거부했다. 2022년에는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이마저도 비웃으며 회사 건물 안으로 숨어버렸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관할 고용노동지청에 진정서를 제출한 '좋은책신사고' 직원이 고용노동청 조사원과 나눈 진술조서 일부. 독자 제공인권유린적 경영…노조의 탄생과 '비상식적 입양'
내부의 고통은 더 컸다. 줄곧 이어져 온 비인격적 대우와 '면벽 근무' 등 가혹 행위가 극에 달했다. 홍 대표는 사내 이메일과 메신저 등을 마음대로 볼 수 있도록 정보수집·이용 동의서를 강제적으로 받아 감시하고 이를 해고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는 부당해고 논란을 피하기 위해 '부동노동행위 후 자진 퇴사' 방식으로 직원들을 내보냈다. 당시 고용노동청이 받은 피해 직원들의 진술서를 보면 "대표이사가 특정 임원에 대한 비리조사를 지시했는데 없다고 보고하자 사직을 강요했다"라던가 "특정 임원과 친하다는 이유로 퇴사를 강요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심지어 '퇴직 사유'란에 '사장님 지시'라는 문구가 적인 사직서도 발견됐다. 퇴직한 직원들 중에는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이들도 적잖았다.
홍 대표의 전횡에 2022년 한 해에만 본사와 자회사 직원 4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결국 2022년 11월 신사고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현재까지 회사와 다투고 있다. 지금까지 부당노동행위나 부당해고를 인정받거나 다투는 사안은 20여건에 달한다.
그의 비상식적인 경영방식이 직원의 삶마저 바꿨다. 홍 대표의 지시로 벽을 마주하며 인격 살인을 당했던 피해자는 이제 노조 사무국장이 돼 노무사 공부를 하며 동료들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거듭된 재판과 노동위원회에서 패소한 홍 대표는 상식 밖의 행보를 보였다. 그는 지난해 직원 7명을 양자·양녀로 입양해 경영권을 승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황당한 결단의 속내는 노조와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신사고 측은 재판부에 제출한 서면을 보면 "직원 7명을 입양해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인물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불법행위를 하겠느냐"고 주장하는 문구가 나온다.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부당노동행위를 방어하기 위해 '천륜(天倫)'을 재판의 방패막이로 삼은 셈이다. 직원을 소모품처럼 부리다 법적 책임 앞에서는 '자식'으로 포장하는 기만적인 태도에 현장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연합뉴스입법으로 이어진 피해…내란정국 불구 '가맹지사 보호법안' 국회 통과
홍 대표의 기행은 결국 국가적 입법의 신호탄이 됐다. 지난해 말 여야는 내란사태라는 정국 속에서도 '가맹사업법 개정안(가맹지사 보호법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홍 대표의 갑질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논의가 급진전을 이뤘다. 이 법안은 홍 대표가 그동안 '갑질일 수 있지만 불법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던 지사의 일방 계약해지 등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나아가 지사장들의 단결권도 보장하고 있다.
특정 기업인의 전횡이 국가의 법령까지 바꾼 초유의 사례다. 그의 기행이 정치권도 통합시킨 셈이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발전기금 협약식에 참석한 유홍림 서울대 총장(왼쪽)과 홍범준 좋은책신사고 대표(오른쪽). 연합뉴스지사·가맹점·총판·직원의 눈물로 쌓은 '면죄 기부금'
법과 윤리를 무시하며 쌓아 올린 1천억 원이 이제 서울대학교의 이름으로 '세탁'되려 하고 있다.
홍 대표는 지난 13일 '발칙한 자연과학적 상상과 수리 논증을 위한 무주·쎈 연구 기금' 1천억 원을 서울대에 기부했다. '무주(無住)'는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홍 대표의 철학이 들어간 말이고, '쎈'은 학습서 출판사인 좋은책신사고의 대표 브랜드라고 한다. 단일 기부로 서울대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이다. 이 돈은 향후 10년 이내에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과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쓰일 예정이다.
서구권 대학들이 비윤리적 기업가의 기부금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돈에 담긴 고통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꿈꾸는 1천억 원의 연구기금이 정작 누군가의 파산 선고와 정신과 약봉지 위에서 만들어졌다면 그 기금으로 얻은 학문적 성취를 과연 인류의 진보라 부를 수 있을까.
피눈물로 쌓아 올린 기부금이 과거의 과오를 덮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홍 대표가 진정으로 교육 발전을 위했다면 재판용 '입양 쇼'나 거액의 기부로 눈가림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짓밟은 수천 명의 피해자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