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식료품을 받기 위해 경기 평택시 '그냥드림' 매장을 찾은 시민들이 업무 개시를 기다리고 있다. 정성욱 기자"1번부터 5번까지 먼저 드릴게요."
16일 오전 경기 평택시 '그냥드림' 매장. 이곳을 운영하는 송탄푸드뱅크 임재효 소장이 개시를 알리자 20평 남짓한 매장이 분주해졌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어르신들은 일어날 채비를 했고, 뒤늦게 온 사람들은 재차 자신의 순번을 확인했다.
1번 번호표를 든 한 어르신이 연락처와 주민등록번호 등을 적은 개인정보동의서를 제출하자, 인적사항을 확인한 직원이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봉투 속에 든 물건은 라면과 즉석밥, 참치캔과 김 등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식료품. 어르신은 여러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매장을 나갔다.
이날 처음으로 그냥드림 매장을 방문한 김미숙(가명·71)씨는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30분을 걸어서 왔는데 너무 필요했던 복지"라며 "주변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인들에게 알려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경기 평택 송탄노인복지센터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한 '그냥드림' 매장. 정성욱 기자'그냥드림'은 매장을 방문하는 시민 누구에게나 2만원 한도로 식료품을 제공하는 먹거리 기본보장 사업이다. 보건복지부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을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첫 방문 때는 경제력이나 직업 여부와 관계없이 수령이 가능하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방문부터는 실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상담과 복지서비스를 연계한다. 한 사람당 그냥드림을 이용할 수 있는 횟수는 최대 3회다.
그냥드림이 문을 연 지 이제 막 한 달이 넘은 시점이지만,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평택 그냥드림의 경우 주 3회(월·수·금) 운영하고 있지만 이미 450여명이 식료품을 받아갔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대기줄도 생겼다. 이날도 영업시간보다 1시간여 전인 오전 8시 30분부터 대기줄이 생겼다. 임 소장은 "찾아오는 시민들이 점점 많아져서 이제는 번호표를 배부해 순서대로 제공하고 있다"며 "늦게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시민도 많다"고 말했다.
물량·일손 부족하지만…"복지 사각지대 발견해 보람"
경기 평택시 '그냥드림' 매장을 찾은 한 시민이 식료품이 든 봉투를 받아가고 있다. 정성욱 기자이날 물량은 매장을 연 지 불과 20분 만에 동이 났다. 매장을 찾는 시민들이 많은 반면, 물량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매장을 찾은 시민들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끝이 났냐"며 직원들을 붙잡고 물었다.
아직 시범운영 단계이다 보니 인력도 부족했다. 평택의 경우 전담인력은 푸드뱅크 소속 2명뿐. 그마저도 1명이 휴가 등으로 빠지면 남은 1명이 모든 일을 도맡아야 한다.
이날도 매장 바로 옆에 위치한 송탄노인복지센터 남재현 센터장이 봉사 차원에서 방문해 일손을 보태야 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성과와 보람을 느끼고 있다. 남 센터장은 "그냥드림의 순기능은 우리 복지시스템이 발견하지 못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는다는 것"이라며 "어른신들 외에도 범죄피해나 신용불량을 겪고 있는 시민들이 조용히 와서 도움을 요청한다"고 설명했다.
李대통령, 경기지사 시절 시작…이젠 전국으로 확대
라면과 참치캔, 즉석밥 등이 들어있는 '그냥드림' 봉투. 정성욱 기자이번 사업은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 당시 운영했던 '경기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에서 착안했다. 이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당시 푸드뱅크 등 복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취약계층에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을 지원했다.
성남, 평택, 광명 등 경기도 3개 시군에서 시작된 사업은 31개 지자체 전역으로 확산됐다. 이후 코로나19가 한풀 꺾이면서 사업은 일몰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SNS에 "굶주림으로 빵을 훔칠 수밖에 없는 장발장이 지금 우리 이웃이 되고 있다"며 "어떤 경우에도 범죄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배가 고파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가가 사회가 할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냥드림은 현재 전국 70여 곳에서 시범사업 중이다. 경기도에서는 광명·동두천·안성·이천·파주·평택·화성시 등 7개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복지부는 내년도까지 전국 운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