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캡처'피스메이커' 트럼프가 평화가 아닌 '화염'으로 2026년의 포문을 열었다. 미군 특수부대와 150여 대의 항공기를 동원한 전격 작전으로 베네수엘라의 철권통치자 니콜라스 마두로를 생포했다. 마약과 테러 등 미국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무력으로 주권국 지도자를 축출한 행위는 국제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위험한 전례"임이 틀림없다.
이 충격파는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로 향할 것이다. 트럼프–김정은 재회로 '한반도의 봄'을 고대해온 우리에게는 적지 않은 변수다. 트럼프는 지난 10월 방한 당시 "김정은을 만나러 다시 오겠다"고 공언했다. 현재로선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된 오는 4월이 유력한 시점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평양 방문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하지만 트럼프의 의욕과는 별개로, 북미 정상회담이 백악관의 우선순위에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다. 러-우 전쟁 종전 협상은 제자리걸음인데 '베네수엘라'라는 전선이 추가됐다. 트럼프는 "정권 이양기까지 베네수엘라를 직접 통치하겠다"고 장담하지만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연합뉴스과거 미국은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을 축출했으나 중동은 더 깊은 격랑에 빠졌다. 미국 역사상 최장 전쟁으로 기록된 아프가니스탄 전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에서 유사한 늪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더욱이 현재 트럼프 정부는 국무장관이 국가안보보좌관까지 겸직하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백악관이 산적한 국제 난제들을 동시에 다룰 '멀티태스킹' 역량이 될까. 백악관에서 트럼프–김정은 회동을 준비하는 키맨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태로 미·중 관계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트럼프 2기 국가안보전략(NSS)의 핵심은 이른바 '돈로(Donroe·도널드 트럼프와 제임스 먼로의 합성어) 독트린'이다. 19세기 고립주의였던 먼로 독트린을 '트럼프식'으로 확장한 이 구상은, 사실상 남미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압도적 우위를 각인시키겠다는 선언이다. 이번 베네수엘라 공습은 그 '돈로 독트린' 구현을 위한 첫 신호탄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공습에 대해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패권적 행위를 단호히 반대한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연합뉴스평양의 김정은도 베네수엘라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번 공습은 지난해 6월 B-2 폭격기 등을 동원해 이란 내 핵시설 3곳을 초토화한 '미드나잇 해머(Midnight Hammer)'에 이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두 번째 '중대 군사작전'이다. 전면전이 아닌, 특정 목표만을 제거하는 '외과수술식' 일회성 타격이 특징이다.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참수 작전'과 궤를 같이한다. 실제로 2019년 트럼프 1기 당시 미 특수부대의 북한 침투 작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지난해 미 언론을 통해 폭로되기도 했다.
김정은은 평소 친분을 과시해온 트럼프의 이런 행동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역시 믿을 건 핵뿐"이라며 자신의 핵단추를 어루만졌을까, 아니면 "트럼프를 만나 보험이라도 들어야겠다"며 협상 테이블을 떠올렸을까. 4일, 동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그 불안과 탐색이 뒤섞인 무력시위였까.
연합뉴스이런 상황에서 '페이스메이커' 이재명 대통령은 무엇을 해야 할까. 트럼프 1기의 '과오'를 냉정히 복기해보자.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미 정상의 만남을 견인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동력이 탈선하지 않도록 역내 주요 플레이어들과의 공조를 공고히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북핵 문제의 본질은 북미 관계 정상화에 있지만, 그 과정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중국과 일본의 역할도 절대적이다.
트럼프 1기에는, 중국은 북한을, 일본은 미국을 각자의 이해관계로 끌어당기며 강력한 원심력을 발휘했다. 그 틈에서 한반도 평화의 궤도를 지키려던 한국의 구심력은 번번이 분산됐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주변국이 북미 대화를 독려하는 '지지대'가 되도록, 나아가 대화가 궤도에 오른 뒤에는 '트럼프발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을 '구조적 틀'을 갖추도록 우리가 판을 깔아야 한다.
연합뉴스이를 위해 '한반도 평화'를 핵심 의제로 하는 한·미·일 그리고 한·중·일 전략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 과거 정부에서 한·미·일 협력이 대북 억지력이라는 '외눈박이 공조'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한반도 평화 견인을 위한 유연한 협력이 가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한·중·일 정상회담의 경우 최근 중·일 관계 경색으로 녹록지 않으나,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가 역내 안정과 각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끈질기게 설득해야 한다. 최소한 대북 문제만큼은 한·중·일 협력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2026년 한반도의 운명은 경기장 안의 선수들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 페이스메이커가 얼마나 정교한 '장외전'을 펼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중대한 분수령이자 기회의 시작이다. 6년 만에 성사된 방중이 '돈로 독트린'의 파고 속에서 한반도 평화의 구심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박형주 칼럼니스트
- 전 VOA 기자, 『트럼프 청구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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