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재석 177명, 찬성 170명, 반대 3명, 기권 4명으로 통과되고 있다. 개정안은 불법·허위 정보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자는 취지로 여당이 추진했다. 고의로 허위 또는 조작된 정보를 유포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법원이 인정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배액배상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박종민 기자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위 주도로 추진된 허위조작정보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입법 취지는 허위로 조작된 정보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데 있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사회, 여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를 입법화 한 과정과 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이 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이렇게까지 '거칠게', '빨리' 입법화 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일부 사실 관계만 잘못되어도 허위 정보로 규정하는 등 규제 대상이 지나치게 넓고 모호할 뿐더러 국가가 나서 허위·조작 정보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게 옳은 지 갑론을박이 여전해서다. 표현의 자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지만, 법을 주도한 여당은 각계 각층의 의견만 들었을 뿐 수렴하진 않았다. 시민사회, 언론, 학계 등이 입을 모아 수 차례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 언론개혁특위는 지난 8월 출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론만 대상으로 삼을 게 아니라고 언급하면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최민희 의원 대표로 10월 23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 언론, 학계 등이 반대하면서 연내 입법이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과방위 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더니 같은날 과방위 전체회의도 통과했다. 야당은 반대했지만 숫자로 역부족이었고 논의는 없었다.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최민희 의원안 거의 그대로다. 허위 정보 또는 조작 정보인 줄 알면서 손해를 가할 의도나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타인의 인격권이나 재산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보의 유통이 금지된다. 문제는 '손해를 가할 의도',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 '공공의 이익 침해'와 같은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데 있다. 입법 과정에서 학계와 시민단체 등은 권력자가 허위·조작 정보의 모호성을 악용해 권력 비판 보도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지만, 민주당은 "언론의 보도로 인해 정치인이나 기업이 위축되는 건 어떻게 할 거냐"며 "언론은 성역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언론은 당연히 성역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무조건 잘하지도 않았다. 반성할 점이 수두룩 빽빽이다.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보도로 사회적 해악을 끼친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일부 기자와 언론이 그렇다고 온 언론의 비판과 문제 제기를 이렇게 사회적 협의 없이 강제로 틀어 막는 건 위험하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의 책무여서다. 이는 비단 기자와 언론만의 문제도 아니다.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침해는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무제한 토론이 종료된 뒤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이번 개정안에서 언론의 권력 감시 위축을 막는 장치가 부실한 점도 특히 우려스럽다. 현재도 정치인, 고위 공무원 뿐 아니라 기업 임원들은 언론의 정당한 의혹 제기에도 '전략적 봉쇄 소송'을 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판 보도를 위축시키기 위해 언론과 기자에 시간과 비용 부담을 주기 위해서다. 민주당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비판과 감시 활동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배액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 무분별한 소송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는 검토 보고서에서 "전략적 봉쇄 소송 인정 요건 중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비판과 감시 활동을 방해하려는 목적' 등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측면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비판을 받은 권력자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비판이 아니었다고 다짜고짜 소송을 걸 우려가 커진다는 의미다. 기자와 앵커를 했던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이나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해봤던 정치인들은 이 점을 더욱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직결된 중요한 법안을 '땜질 수정'을 반복하며 급하게 처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이후 본회의 직전까지 법안이 바뀐 걸 봤을 때 과연 여당 내에서도 숙의가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라면서 "입법 과정의 후진성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 후 법안 내용과 취지 등이 모두 부적절하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성명문을 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허위조작정보 유통 금지를 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해외에서 문제적 법안 내용을 보고 더욱 주목 받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개정안을 발판 삼아 허위 정보라는 명목으로 '비판할 자유', '진실에 다가가는 노력'까지 처벌하는 결과를 만들어선 안된다. 박근혜 국정농단 의혹, 윤석열 비상계엄설은 처음엔 허위 정보라고 치부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때 허위·조작 정보라고 소송을 걸고 처벌했으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