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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마체고라 대사의 사망이 남긴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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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웅의 글로벌 포커스]
    북한군 파병 핵심 고리 역할
    러시아서 귀환 뒤 北서 급사
    러·북, 사망 원인 일체 함구
    가족들, 평양서 조문객 맞아
    과로사 단정 일러, 의문 남아

    2025년 5월 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대사와 만나고 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러시아의 2차 대선 승리 80주년(전승절)을 기념해 축하문을 낭독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연합뉴스2025년 5월 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대사와 만나고 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러시아의 2차 대선 승리 80주년(전승절)을 기념해 축하문을 낭독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지난 6일 급사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의 사망 장소 및 죽음의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 외교부는 지난 8일 마체고라 대사의 별세 사실을 발표하면서 이런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사망 장소에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마체고라 대사가 숨지기 며칠 전까지 모스크바에 출장 중이었기 때문이다.
     
    사망한 지역이 출장지인 러시아인지 아니면 근무지인 북한인지 만이라도 밝혔더라면 궁금증이 훨씬 덜 생겼을 것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지난해 7월 발레리안 슈바예프 알제리 주재 러시아 대사가 사망했을 때는 그가 알제리에서 순직했다며 장소를 확인했다.
     
    하지만 마체고라의 사망 장소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만약 러시아가 고의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 말 못할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은 2025년 8월 22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인민군 해외작전부대 지휘관·전투원 국가표창 수여식'을 열었다. 사진은 당시 행사에서 러시아에 파병됐다가 전사한 북한군의 사진을 보며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모습. 연합뉴스북한은 2025년 8월 22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인민군 해외작전부대 지휘관·전투원 국가표창 수여식'을 열었다. 사진은 당시 행사에서 러시아에 파병됐다가 전사한 북한군의 사진을 보며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모습. 연합뉴스
    그의 사망 장소뿐 아니라 죽음의 원인 역시 궁금증을 낳고 있다. 마체고라는 1955년 11월 21일생이다.  
    만 70세의 고령이지만, 최근까지 대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북한의 평양 봉쇄와 국경 차단에도 불구하고 약 4년 동안 평양에 남아 외부 세계에 소식을 전했다.
     
    유의할 점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진전된 북러 관계의 한 가운데 마체고라 대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체고라는 특히 북한 주재 특명전권 대사로서 1만 명이 훨씬 넘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유가족에게 보낸 애도사에서 이 부분을 콕 찝어서 강조했다.
     
    "마체고라 대사의 노력으로 북한의 파병과 관련된 문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북한군의 파병은 전쟁의 장기화와 전사자의 증가로 연결됐다.
     
    무려 8천 km 밖에서 참전한 북한 병사 수천 명도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체고라 대사의 급사를 계기로 북한군의 파병을 조율하는 핵심 고리였던 그의 역할은 더 주목받고 있다.
     
    그가 왜, 어떻게, 어디서 갑자기 사망했는지에 각국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평소 북한군의 파병에 강력 반발해왔던 우크라이나는 마체고라 대사의 사망과 관련해 현재까지 아무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5년 12월 10일 마체고라 대사를 조문하기 위해 평양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이 손을 잡은 여성이 마체고라 대사의 딸(안나 마체고라), 그 옆이 아들(세르게이 마체고라)로 보인다. 연합뉴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5년 12월 10일 마체고라 대사를 조문하기 위해 평양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이 손을 잡은 여성이 마체고라 대사의 딸(안나 마체고라), 그 옆이 아들(세르게이 마체고라)로 보인다. 연합뉴스
    현재까지 공개된 사실을 근거로 볼 때 마체고라의 사망 장소는 북한의 평양이 유력하다.  
     
    몇몇 국내외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그는 러시아 출장을 마치고 북한으로 귀임한 직후 숨진 것으로 보인다.
     
    마체고라의 유가족이 평양시 중구역 서문동에 위치한 러시아 대사관에서 조문객을 맞이했다는 사실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러시아 대사관 측과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마체고라의 아들과 딸로 추정되는 인물이 조문객을 접견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을 찾아가 '유족들을 위로했다'고 확인했다.
     
    만약 마체고라 대사가가 러시아에서 사망했다면, 당연히 가족들도 시신의 확인과 인수 등을 위해 모스크바에 있어야 했을 것이다.
     
    지난 10일 평양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른쪽 무릎을 꿇은 채 마체고라 대사의 영정 앞에 꽃을 바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10일 평양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른쪽 무릎을 꿇은 채 마체고라 대사의 영정 앞에 꽃을 바치고 있다. 연합뉴스
    눈길을 끄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파격적인 조문 모습이다.
     
    김정은은 오른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헌화를 했다. 고인에 대한 최고의 예우다.
     
    이것은 김 위원장이 현재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를 얼마나 절박하게 여기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공개한 다른 사진을 보면 최선희 외무상은 마체고라 대사의 영정 앞에 선 채로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
     
    한쪽 무릎을 꿇은 김정은의 조문은 그래서 더 부각된다. 지나치다싶은 이런 예우의 이면에 감춰진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김정은은 푸틴 대통령에게 전문도 보내 각별한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조전에서 "북러 관계가 굳건한 동맹으로 강화되는 여정에 마체고라 대사의 헌신적 노력이 깃들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10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마체고라 대사를 애도하기 위해 영정 앞에 서있는 모습. 연합뉴스10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마체고라 대사를 애도하기 위해 영정 앞에 서있는 모습. 연합뉴스
    마체고라 대사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서 러시아 외교부의 발표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다.
     
    다만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공개한 그의 사망 전 일정을 근거로 몇 가지 추정을 해볼 수 있을 뿐이다.
     
    마체고라 대사는 사망 10여 일 전인 2025년 11월 25일 혹은 그보다 며칠 전에 평양을 출발해 본국인 러시아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본국 출장의 주요 목적은 11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12차 북러 정부간 경제 공동위원회 회의 참석 및 지원이다.
     
    회의에는 러시아 측에서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알렉산드르 노박 부총리가 직접 나왔고, 북한에서는 윤정호 대외경제상이 참석했다.
     
    노박 부총리가 참석했다는 것은 북한에 대한 원유 제공이 중요 안건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러시아에 미리 도착해 있던 마체고라 대사는 회의 하루 전인 11월 26일 모스크바에 새로 문을 연 북한 식당 '승리'를 방문했다.
     
    이어 다음날인 27일에는 북러 경제 공동위원회 참석 인사들과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람했다.
     
    이후 5일 뒤인 12월 2일에는 모스크바 시립 사범대학 대학을 방문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러시아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이것이 공개된 마체고라 대사의 마지막 출장 일정이다. 아마 외교관으로서 마지막 대외 행사였을 수도 있다.
     
    마체고라는 이후 며칠 뒤 북한으로 귀환했을 것으로 보이며, 12월 6일 토요일에 사망했다.
     
    그의 사망 이틀전인 12월 4일 평양에 폭설이 내렸다. 이 정도 일정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그의 사망 원인은 과로 또는 사고 등이다.

     2025년 12월 2일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가 모스크바 출장 중 모스크바 시립 사범대학에서 한국어 전공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하는 모습. 마체고라 대사는 이 행사 4일 뒤인 12월 6일 갑자기 사망했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홈페이지 캡처2025년 12월 2일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가 모스크바 출장 중 모스크바 시립 사범대학에서 한국어 전공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하는 모습. 마체고라 대사는 이 행사 4일 뒤인 12월 6일 갑자기 사망했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마체고라 대사의 사망 원인을 단순 과로나 불의의 사고로 단정짓는 것은 조금 섣부르다.
     
    다른 나라와 전쟁이나 교전을 하고 있는 국가의 외교관은 뜻밖의 위험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16년 12월 튀르키예 주재 러시아 대사 안드레이 카를로프는 수도 앙카라의 미술관에서 총격을 받고 피살됐다.
     
    총격범은 놀랍게도 튀르키예의 현직 경찰관이었다. 그는 권총을 손에 쥔 채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를 잊지 말라" 고 외쳤다.
     
    시리아의 알레포는 러시아군이 전투기와 폭격기까지 동원해 시리아 반군과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던 도시다.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도살자'로 불리던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를 돕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했다.
     
    이런 러시아를 응징하려던 22살의 튀르키예 청년은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희생양으로 고른 것이다.
       평양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정면의 오른쪽 벽에 안드레이 카를로프 대사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물이 부착돼 있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를 지낸 카를로프 대사는 지난 2016년 튀르키예 대사로 근무하던 중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사진은 대사관 방문객들이 카를로프의 기념물 앞에서 묵념하는 모습.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관 홈페이지 캡처평양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정면의 오른쪽 벽에 안드레이 카를로프 대사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물이 부착돼 있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를 지낸 카를로프 대사는 지난 2016년 튀르키예 대사로 근무하던 중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사진은 대사관 방문객들이 카를로프의 기념물 앞에서 묵념하는 모습.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튀르키예에서 재직 중 피살된 카를로프 대사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북한 주재 대사로 평양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래서 평양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건물의 앞쪽 벽면에는 지금도 그의 얼굴 모습이 새겨진 추모 기념물이 부착돼 있다.
     
    카를로프 대사는 마체고라 대사보다 나이가 1살 많다. 러시아 외교부는 둘이 친구 사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모두 북한 근무를 했다는 점 이외에, 근무 중 현지에서 사망했다는 공통점도 같게 됐다.
     
    지난 16일 모스크바 중앙임상병원에서 열린 마체고라 대사의 장례식에는 카를로프 대사의 부인도 참석했다.
     
    앞으로 평양의 러시아 대사관 벽면에 마체고라 대사를 추모하는 기념물도 설치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말 통역사 출신인 그는 북한 주재 대사로 11년을 근무하면서 북러 관계를 혈맹으로 끌어올리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러시아 당국은 사망 장소와 원인을 공개하지 않은 채, 그를 전쟁의 위기 속에서 조국을 구한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다.

    한국(북한)어 통역사 출신인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대사는 한국의 부산에 있는 러시아 총영사관에서 참사관급 영사로서 첫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홈페이지 캡처한국(북한)어 통역사 출신인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대사는 한국의 부산에 있는 러시아 총영사관에서 참사관급 영사로서 첫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마체고라 대사는 1999년 부산에 있는 러시아 총영사관에서 외교관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정도로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는 외교관으로서 성실한 모습과 함께 '북한군 파병'이라는 무거운 역사가 동시에 기억될 수밖에 없다.

    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 전 YTN베이징 특파원, 해설위원실장

    ※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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