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여당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처리가 임박한 가운데, 사법부는 코너에 몰린 양상이다. 대법원이 예규에 근거한 자체적인 전담재판부 안을 내놓았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사실상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법부는 막판까지 대응책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서울고법은 전체 판사회의를 개최하고 대법 예규 제정에 따른 전담재판부 사무분담 논의에 나선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이날 전체 판사회의를 개최하고 대법 '국가적 중요사건 전담재판부' 설치 예규와 관련한 후속 절차를 논의한다.
앞서 대법 소속 법원행정처는 지난 18일 열린 대법관 행정회의에서 해당 예규를 제정하기로 결정했다. '국가적 중요사건'은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 중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파장이 매우 크고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다. 각급 법원장은 해당 사건을 전담해 집중적으로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고, 법원장은 전담재판부가 사건을 신속하고 충실히 심리할 수 있도록 인적·물적 지원을 해야 한다.
전담재판부 도입은 더불어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처리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사법부 스스로 내놓은 대안이다. 현재 진행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외환 관련 사건은 서울고법에서 진행될 항소심부터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법 전체 판사회의에선 형사부 2개부 이상에 따른 사무분담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해당 안건이 받아들여지면 내년부터 형사재판부가 총 16개로 구성되고, 이 중 2~3개 형사항소부는 전담재판부로 지정하게 된다.
아울러 구체적인 전담재판부 숫자, 구성 절차 및 시기도 전체 판사회의를 토대로 심의를 거쳐 확정할 계획이다.
고법 관계자는 "내년 법관정기인사 시 2개 재판부 증원에 필요한 법원 6명의 증원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모든 전담재판부에 각 재판부 심리를 보좌할 최소 3인 이상의 재판연구원들을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민주당이 대법 예규 제정에도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며 나서는 상황에서, 사법부의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이날 열릴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우선 상정·처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법조계에선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가 '위헌성'이 있다는 지적을 제기해왔다. 판사 추천 방식 등이 '무작위 배당 원칙'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특정 내란 사건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재판부를 설치하는 것이기에 '표적 입법' 논란도 일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건배당은 사법행정의 핵심인데 이것을 입법부가 대체해 위헌 논란도 여전히 수반된다"며 "절차적 문제 때문에 재판이 장기간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이 예규를 근거로 내놓은 내란재판부 안은 '무작위 배당'을 원칙으로 하고, 배당 받은 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사법부는 이러한 안이 위헌성을 제거한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천 처장은 "사법행정권이 입법부에 의해 대체되는 위헌적 상태를 막을 수 있다는 점, 무작위 전산배당에 의한 배당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 관계자 역시 "예규를 통해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같은 절차 지연 없이 사건배당의 무작위성과 임의성 원칙도 유지하면서 신속한 재판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대해 판사 추천 방식을 일부 손질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다만 대법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는 상태로 법이 통과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입법이 강행되면 대법 예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규와 법령 내용이 배치될 경우 법률의 효력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법률에 맞게 예규를 수정해야 한다.
대법 관계자는 "법원이 입법만 기다리면서 법률안에 대한 공정성, 위헌성 우려만 제기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라면서도 "법률이 상위 규정인 만큼 법이 통과되면 그 절차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