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조선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조선소를 방문할 수 있다는 설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짧은 일정 속에서도 조선소를 방문하게 되면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이른바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한층 탄력이 붙을 수 있다.
한미 협력 상징, 트럼프 한국 빅3 조선소 방문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차 오는 29일 한국을 방문한다. 조선업계 내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국내 3대 조선업체인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가운데 한 곳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현재로서 낮지 않다. 한미 조선업 협력은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성과로 내세울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방문에서도 조선업 분야 협력 각서 체결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쇼맨십 강한 트럼프 대통령 성격상 미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의 방대한 규모를 미국인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이 꼽히고 있다. 한화가 인수한 한화필리조선소는 이미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의 상징물처럼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사 회장이었던 1998년 6월 방한해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중공업의 옥포조선소를 방문한 전례가 있다.
APEC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도 유력한 방문지로 거론되고 있다. HD현대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와 손잡고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 건조에 참여하기로 했다. 유지·보수·정비(MRO) 중심이었던 한미 조선 협력을 '함정 건조'라는 한 차원 높은 단계로 격상시킨 예다.
조선3사는 아직 미국측의 연락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가능성을 열어놓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는 입장이다.
마스가 프로젝트 한미 관세협상에도 중요한 역할
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의 현장 방문 가능성이 대두될 만큼 현재 한국 조선업이 한미관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단순한 경제협력의 범위를 벗어났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기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마스가 프로젝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감을 드러낸 카드중 하나다. 결국 마스가의 진척 여부가 한미과세 협상 결과와 직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흥 해양세력으로 등장하려는 중국을 견제해야만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지속적인 해군 전력 보강은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다. 세계 조선업에서 중국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기술력이나 생산력에서 중국과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한국과의 전략적 동맹 강화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불가피한 선택이다. 한국 조선업계 입장에서도 힘겨운 중국과의 경쟁을 위해 미국이라는 거대시장을 독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전 세계 최대 전력을 보유한 미해군 전력 강화사업은 최첨단 기술 이전과 수익 확보에서 절대적이다.
한미 조선업 동맹에 일본까지 참여하면서 한미일 동맹의 초석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일 기간 중 조선업 분야 협력 각서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매체들이 26일 보도했다. 일본의 조선업 투자는 양국 관세 협상에서 합의된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항목에 포함된 협력 분야 중 하나다. 한미 조선업 동맹이 한미일 동맹으로 확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느슨해진 3국 동맹을 견고히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선소 방문이 성사된다면 이런 윈-윈 전략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조선소 현장에 서 있는 사진이 전 세계에 공개될 경우 단순한 상징성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마스가 장밋빛 전망만 아냐…산적한 난제들
조선업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앞이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풀기 힘든 난제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난항을 겪고 있는 한미 관세 협상이 변수다. APEC 기간 중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가능성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발언은 신중함을 넘어 부정적 어조를 띄기 시작했다. 오현주 국가안보실 3차장은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 간담회에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과 관련해 "현재 진행되는 것을 볼 때 이번에 바로 타결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세협상이 반드시 마스가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양국 관세 협상 과정에서 카드로 등장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관세협상이 장기화될 경우 미칠 부정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조직적인 견제에 나섰다는 점도 변수다. 중국 상무부는 최근 한화오션의 미국 내 자회사(한화 Shipping LLC, Hanwha Philly Shipyard 등) 다섯 곳을 제재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중국 조선업의 국가지원 의혹을 공식 조사 대상으로 올린데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조선소를 방문해 중국을 겨냥한 발언을 한다면 중국의 제재는 더욱 거칠어질 수도 있다. 자칫 과거 사드 사태때와 같이 미중 양국간은 조용하고 한국에만 제재가 단행되는 현상이 재현될 수도 있다.
마스가가 현실화될 경우 그 과실을 우리가 제대로 맛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과제다. 미국내 조선소 건립으로 인해 한국 본사 조선소 물량을 자칫 미국 조선소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런 현상은 배터리 업계가 이미 겪은 딜레마다. 전기차 배터리 업계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대응' 명분으로 미국 현지공장 투자를 늘림에 따라 국내 라인은 축소되는 부작용이 빚어졌다.
HD현대가 이번에 헌팅턴 잉걸스와 손잡고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 공동 건조에 나서는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는 듯 하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미 군함의 해외 건조를 금지한 '번스-톨레프슨법' 등 현행법상 제약으로 실제 건조는 미국 내에서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