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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일꾼'' 이재순 검사 검찰을 떠나다

''강력통''으로 이름 날려…''자녀안심 학교보내기 운동'' 기획하기도

이재순 서울 고등검찰청 검사가

 

많은 이들에게 소박한 일꾼으로 알려진 이재순 서울 고등검찰청 검사가 25년 만에 검찰을 떠났다.

서울지검에서 첫 검사생활을 시작한 이 전 검사(사법연수원 16기)는 의정부지검과 대검찰청 검사, 서울지검 형사 3부장검사, 천안지청장 등을 거치며, 검찰 업무의 주요 분야인 특수, 강력과 공안, 기획과 일반 형사 분야를 두루 섭렵해 많은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평검사 시절 12·12와 5·18 사건, 오대양 사건 등 큰 성과

평검사 시절에는 ''파주 스포츠 파'', ''안성파 범죄단체 사건'', ''이천지역 조직폭력배 두목 출신 군의원 사건'' 등을 인지수사하면서 ''강력통''로서 법조계의 이름을 날렸다.

특히 12·12와 5·18 사건, 오대양 사건, 정보사 부지 사기사건 등 굵직굵직한 특수 사건에 수사검사로 파견돼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전 검사가 기획한 각종 프로그램들은 일회성 전시행정이 아닌 검찰청과 지역사회가 합심할 수 있는 단단한 뿌리를 만들었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대검찰청에서 검찰 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기획한 청소년 범죄 대책프로그램인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은 지금까지도 전국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을 정도다.

이 전 검사의 진가는 대검찰청 노동담당 주무과장으로 화물연대 사건, 부안의 방폐장사태 등에서 발휘됐다.

강성노조나 보수 어느 한 쪽의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고, 법률에 입각한 원칙론을 앞세워 사태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방침은 ''합의와 온정''을 중시하던 사회노동정책을 ''원칙''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전환점이 됐으며, 이같은 리더십과 업무 처리 능력을 인정받아 노무현 정권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발탁됐다.

◈ 숱한 일화 남겨

오랜 검사생활 동안 이 전 검사가 남긴 숱한 일화도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오대양 사건 수사를 하던 당시, 서울지검 검사로서 대전지검에 파견을 나가 몇 주에 걸쳐 밤을 세우며 일했는데, 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아들 둘이 검찰청에 찾아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에 몰두하다 보니, 수 시간 동안 기다리게 해 당시 네 살 박이의 어린 아들이 검찰청 앞마당에서 ''이재순 아빠 나와라''고 소리쳐 마침 그 부근을 지나던 당시 대전지검 검사장이 그를 불러냈다는 일화는 이 대전지검장이 후일 회고하는 글로 세상에 알려졌다.

또한 특별수사 과정에서 계속 뻔한 거짓말을 하는 피의자에게 "내가 000님에게 00라고 비난성 욕을 하고 싶습니다만 수사관으로 욕을 할 수 없으니, 피의자께서는 제가 욕을 했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은 후일 영화 ''공공의적 2''에서 대사로 나올 정도로 회자된 일화다.

◈ 안팎으로 봉사하는 모습으로 기억

추풍령 산골 오지에서 태어난 이재순 검사는 초등학교 시절 시골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있는 부모님을 떠나 서울에서 누이들과 어렵게 유학하며 우여 곡절을 겪었다.

때론 사기를 당해 지붕도 없이 벽만 있는 집에서 하늘을 보며 잠을 청해야 했고, 생활비와 주거비가 충분하지 않아 무수히 전학도 다녀야 했다.

검사가 된 후에도 주말이나 휴가 등 바쁜 와중에도 부모님을 위해 ''거름통''을 지고 시골 땅에 농사를 지었던 모습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안팎으로 남들에게 봉사하는 머슴노릇을 마다 않으며 자신을 죽이고 남들을 돋보이게 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 이재순 검사가 지난 9일 퇴임식과 함께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그의 다양한 경력과 소박하고 성실한 인간성 덕에, 강호에 나가더라도 지역사회에 큰 기여를 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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