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내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반입할때 예외적으로 누려온 개별 허가 절차 면제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공장의 '현상 유지'는 할 수 있지만 생산 역량 확대나 기술 업그레이드는 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중국 생산 시설의 활용도가 낮아질 수 밖에 없어 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날벼락…美 "VEU 명단서 삼성·SK 제외"
오는 2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관보 정식 게재를 앞두고 사전 공개된 관보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명단에서 중국 법인인 '인텔반도체 유한공사'(다롄 소재)와 '삼성 반도체 유한공사', 'SK하이닉스 반도체 유한공사' 등 3곳을 제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텔반도체 유한공사는 SK하이닉스가 인수했기 때문에 한국 반도체 기업을 VEU 명단에서 제외한다는 의미다.
VEU는 별도의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적 지위를 의미한다. 앞서 미 상무부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때인 지난 2022년 중국의 기술 굴기를 막기 위해 미국기업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은 건별로 허가를 받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기업은 VEU로 지정해 별도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 명단에서 국내 기업들을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미 상무부는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내 공장의 '현상 유지'는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며 이런 조치는 관보 정식 게시일(9월 2일)로부터 120일 후부터 실행된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은 한미 정상회담 개최 나흘만에 공개됐다.
반도체 관세 최혜국 대우 물음표 속 VEU 제외까지
연합뉴스우리 정부는 이런 방침을 사전 공유받았다며 국내 기업들이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관보 게재 직후 낸 보도참고자료에서 "VEU 지위 철회 대상 기업들에겐 120일 간의 유예기간이 부여되고 정부는 그간 미국 상무부와 VEU 제도의 조정 가능성에 관하여 긴밀히 소통하여 왔다"며 "VEU 지위가 철회되더라도 우리 기업들에 대한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계속해서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상 유지는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기 때문에 단기적인 타격은 크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반도체 생산 시설은 지속적인 공정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인데, 생산 시설 확장이나 개선이 어려워지면 중국 생산 시설의 활용도는 점점 떨어질 수 밖에 없어 이에 대한 피해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 일정을 마치고 31일 귀국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삼성전자 등의 VEU 제외 조치와 관련한 질문에 "일 열심히 해야죠"라고만 답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선 VEU 제외 시행 4개월 간 한미 정부가 협상을 통해 이번 조치 시행을 더 유예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는 희망섞인 관측도 나온다.
반도체 관세 최혜국 대우 등 한미 합의문 언제 나오나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격화한 미중 기술패권 전쟁이 확산 국면을 보이고 있고, 기업들의 경영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사양을 낮춘 AI(인공지능)칩인 H20칩의 대중(對中) 수출을 제한하고 나섰고, 이후 엔비디아에 H20용 HBM(고대역폭메모리)를 공급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타격을 받았다.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을 출자 전환하는 식으로 인텔의 지분을 확보하며 삼성전자 등과도 인텔식 지분 거래가 가능하다고 밝히며 경영권 위협 우려를 키우기도 했다. 관련국과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자 외국 기업 지분 확보에 대해서 선을 긋긴했지만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한 반도체 보조금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반년 넘게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
최대 100%의 부과 가능성이 언급된 반도체 품목 관세를 두고도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미국 측이 한국 기업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구두로 언급하긴 했지만 이와 관련된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고,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관련 내용이 논의되었는지 확인되지 않아 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 반도체 관련 조치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갖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