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전남 목포시 목포문화예술회관에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황인기 작가의 레고 블록 작품 '오래된 바람'이 공개되고 있다. 김한영 기자전통 수묵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가 오는 30일부터 개막한다. 특히 올해부터 해남이 전시 공간에 새롭게 더해지며 목포와 진도를 잇는 전시 지형이 한층 넓어졌다.
27일 전라남도 문화재단에 따르면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는 오는 30일부터 10월 31일까지 두 달 동안 해남과 진도, 목포에서 동시에 열린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문명의 이웃들'. 바다를 매개로 형성된 아시아 수묵문명을 조명하며, 서구 중심 미술사 속에서 소외돼 온 동아시아 미학을 다시 비춘다. 20개국에서 83명의 작가(팀)가 참가해 다양한 수묵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해남, 진도, 목포 3개 권역에서 펼쳐지는데 조선에서 현대, 그리고 세계로 이어지는 '시간여행형 동선'이 특징이다.
해남은 조선 후기 문화를, 진도는 일제강점기를 거친 근현대 수묵을, 목포는 세계화된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가장 큰 관심은 조선 후기 화가 공재 윤두서의 걸작 '세마도'. 말을 씻는 장면을 담은 이 작품이 무려 321년 만에 원본으로 최초 공개된다.
그동안 해남 종가에서만 보관돼온 이 작품이 일반에 공개되는 만큼 역사적 의미가 크다.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전시는 목포 문화예술회관과 실내체육관에서도 열린다. 특히 체육관은 천장 9m, 500평 규모로 새롭게 구성돼 대형 작품을 스펙타클하게 감상할 수 있다. 레고 블록으로 몽유도원도를 재현한 작품 등 다양한 설치작도 마련돼 관람객의 눈길을 끌 전망이다.
한영섭의 대지 N0.4003. 김한영 기자한국 동양화의 거장 한영섭은 10m가 넘는 프로타주 기법 대작을 선보인다. 직접 그리지 않고 탁본처럼 찍어낸 독창적 방식으로 전통 수묵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광주 출신 김민정은 글로벌 감각이 담긴 실험작을, 김은진은 자개를 활용해 빛과 재질감을 살린 산수화를 선보인다.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특성상 한 번 참여한 작가가 연이어 출품하지 않는 관례가 있다. 이에 따라 지난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이번 전시에서 모두 제외됐다.
조직위는 기존 참여 작가 대신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신진 작가들로 전시를 새롭게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수묵계의 기성 유명 작가들이 빠지고 젊은 작가들 중심으로 무대가 꾸려졌다.
윤재갑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 총감독은 "처음에는 전시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우려도 있었지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다"며 "오히려 기존의 대가들보다 더 신선하고 강렬한 울림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해외 작가 참여도 대폭 확대돼 전체의 40%에 달한다. 해외 작가들은 전쟁과 식민, 난민 문제 같은 현대사회의 아픔을 예술로 풀어냈다.
27일 전남 목포시 목포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025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 프레스 오픈에서 윤재갑 총감독이 이란 출신 작가 파라스투 포로우하르의 작품 'Written Room'을 설명하고 있다. 김한영 기자 독일로 망명한 이란 출신 파라스투는 이슬람 서체를 차용해 전쟁과 억압의 현실을 표현했다. 겉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내용은 섬뜩한 메시지를 담아 강렬한 대비를 보여준다.
폴란드의 푸세미스와프는 한국에 머물며 현지 먹과 붓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인도네시아 출신 마리안토는 400년 네덜란드 식민 경험을 수묵의 언어로 풀어내며 탈식민의 서사를 그려냈다.
이처럼 유럽과 아시아 작가들은 기후 위기와 정치적 억압을 동시대적 언어로 표현하며 수묵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27일 전남 목포시 목포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025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 프레스 오픈에서 김은영 전라남도 문화재단 대표(오른쪽)와 윤재갑 총감독이 행사 진행에 앞서 준비하고 있다. 김한영 기자비엔날레 조직위는 이번 비엔날레가 전통 수묵의 가치를 넘어,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확장성을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총감독은 "비엔날레의 가장 큰 미션은 침체된 동양화와 동아시아 미학을 세계 보편 문명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다"며 "근현대 이후 서구 중심의 미술사 속에서 수천 년 동안 발전해 온 동아시아 해양 미학이 왜소해졌는데, 이를 복원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다"고 말했다.
김은영 전라남도 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올해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가 새로운 K-콘텐츠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 사무국은 이날 개막을 앞두고 국내외 언론을 대상으로 프레스 오픈 행사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