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중앙로지하상가. 박우경 기자"지하상가에서 보낸 세월이 벌써 25년입니다. 매달 120만 원씩 더 보태더라도, 제 젊음을 바친 점포만은 지켜야했습니다."
운세 상담사 A(58)씨가 2평 남짓한 자신의 점포를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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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중앙로지하상가 상인들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1994년 지하상가 개통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온 삶의 터전이 존폐 기로에 놓였다.
대전시의 공개경쟁입찰에서 생계수단인 점포를 지키고자 높은 입찰가를 무리해서 적어냈기 때문이다. 공개경쟁입찰 전과 비교해 160~300% 상승한 사용료(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영업 중인 점포 지키려…' 무리한 입찰가 제시한 배경
A씨는 25년 전 7천여만 원의 권리금을 내고 점포를 인수했다. 모두 대출이었다. 지하상가는 엄연히 대전시 소유의 공유재산이지만, 당시에는 임차권을 양도·양수하면서 권리금이 오가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대전시가 중앙로지하상가 점포 임대를 공개경쟁입찰로 전환하면서, 기존 상인들의 생계기반이 직격탄을 맞았다.
A씨는 자신의 점포가 다른 사람에게 낙찰될까, 최저가의 5배를 높여 적어냈다. 온비드(공공자산온라인 입찰시스템)에 노출된 높은 점포 조회수도, 누군가가 자신의 점포를 눈여겨보는 듯해 A씨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입찰 결과, A씨 점포에는 A씨를 포함한 단 2명이 투찰했다. A씨는 가까스로 점포를 다시 낙찰받았지만 이전보다 매달 사용료와 관리비가 120만 원 늘어난 부담을 안게 됐다. 과거에 지불했던 권리금 7천만 원도 되돌려받을 길이 없었다.
A씨는 "서른 세살에 지하상가에 터를 잡았고 이제 예순을 바라보고 있다"며 "바깥세상도 모르는 내가 이제와서 어떻게 다른 일을 하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유일한 생계수단이자 내 젊음을 바친 점포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는데 방법이 없었다"며 "주변 상인들도 온비드에서 높은 조회수를 의식하고 불안해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입찰가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024년 1차 중앙로지하도상가 구역별 일평균 조회수 추이. 5월 27일 단 하루 A,B,C,D 4개 구역의 조회수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제공치솟았던 조회수…막상 뚜껑 열어보니 너도나도 '단독입찰'
패션 창업의 꿈을 안고 지하상가를 찾은 청년들도 높은 사용료에 휘청이고 있다.
옷 가게를 운영하는 B(38)씨는 10년 전 대전지하상가에 첫 점포를 열었다. 매일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 도매시장에서 의류를 받아왔다. 코로나에 첫 위기를 맞고 함께 영업했던 청년 대부분이 떠났다. 당시 빌린 대출금도 갚지 못한 B씨는 점포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대전시가 공개경쟁입찰을 진행하면서 두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B씨는 영업 중인 점포가 다른 사람에게 양도될 것을 우려해 경매 최저입찰가의 2배를 적어냈다.
온비드에 자신의 점포 조회수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B씨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입찰결과, 투찰한 사람은 B씨 1명이었다. 높은 조회수와 달리 단독 입찰이었다.
B씨는 "입찰결과 발표일에 지하상가 상인 친구 3명과 불안에 떨며 결과를 확인했는데, 우리 3명 모두 단독입찰이었다"며 "점포 3곳의 조회수가 상당히 높았는데 어떻게 단독 입찰일 수가 있나 의아했다"고 말했다.
입찰 전 80~90만원의 도로사용료를 지불하고 영업했던 B씨는 현재 320만원의 사용료를 내고 있다.
B씨는 "친한 동생 1명을 직원으로 두고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임금 지불도 빠듯한 상황"이라며 "사용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서 10년을 몸 담았던 가게를 버리고 떠나야하는건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오전 대전 중앙로 지하상가 상인 224명으로 구성된 중앙로비상대책위원회가 점포 입찰 과정에서 공무원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담당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소하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박우경 기자사용료 허덕이다 폐업도 속출…"기존 상인 우선권 고려했어야"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하는 C(57)씨는 입찰 전후 사용료가 월 198만 원에서 550만 원으로 뛰었다. 30여 년간 대전지하상가에서 장사해 온 C씨는 가족회의 끝에 입찰 마지막날 높은 금액을 적어냈다.
C씨는 "내 점포 누적 조회수가 100회를 훌쩍 넘어 '10명 정도는 입찰에 참여하겠구나' 싶어 입찰가를 높였다"며 "막상 결과를 보니 단독입찰이었고, 대부분 상인들도 단독입찰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상인들 3명은 막대하게 오른 사용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폐업했다"며 "적어도 영업중인 상인들에게는 입찰 우선권을 주는 등 생존 방안을 고려해줬어야하는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대전시는 지난해 5월 23일부터 29일까지 7일간 '2024년 1차 중앙로지하도상가 점포별 사용자허가 선정입찰'을 진행했다.
하지만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온비드(공공자산 온라인 입찰 시스템)를 이용한 전자입찰과정에서 구역별 매장 조회수 평균값이 균일하게 나타나고, 특정일에 440곳의 모든 점포 조회수가 급감하는 등 이상 흐름이 포착됐다며 상인들은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전지하상가 관리주체인 대전시와 시설관리공단은 공유재산법에 따라 공개입찰경쟁을 진행했으며, 조회수 조작은 근거 없는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유재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입찰을 진행한 것"이라며 "조회수 조작은 사실무근일뿐더러, 입찰은 전자입찰시스템을 통해 투명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