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북한은 지난 9일부터 전방 일부 지역에서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우리 군 당국이 지난 5일 전방의 고정식 확성기를 모두 철거하자 북한도 호응을 한 것이다.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달 28일에 낸 대남담화에서 이재명 정부의 첫 긴장 완화조치인 대북확성기 방송중단에 대해 "진작에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가역적으로 되돌려 세운데 불과"하다며 "평가받을만한 일이 못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가역적 조치'라는 김 부부장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우리 군 당국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에 이어 전방에 설치된 20여개 고정식 확성기를 철거하자, 북한도 일단 일부 지역의 확성기 철거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모든 지역의 확성기를 철거하는지 여부는 앞으로 지켜봐야하겠지만 우리 군 당국이 먼저 긴장완화 조치를 취하면 여기에 북한도 비례적으로 대응하는 양상이 확인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재명정부의 능동적 선제조치에 대한 북한의 수동적 화답조치"로 평가했다.
확성기 철거에 이어 북한이 8월 한미연합훈련 실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관심이다.
한미양국은 오는 18일부터 열흘 동안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되, 야외기동훈련 중 절반가량인 20여건의 훈련을 9월로 연기한 바 있다.
여기에는 8월의 폭염상황도 반영됐으나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한국 정부가 훈련을 일부 조정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한미연합훈련을 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한미훈련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북한이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반응을 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일로 관측된다.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담화에서 이재명 정부를 향해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대결기도는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면서 "우리의 남쪽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며 미한은 상투적 수법 그대로 저들이 산생시킨 조선반도정세악화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해보려고 획책할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미 정해진 훈련 일정을 새 정부가 여러 제약 조건 속에서도 일부 조정을 한 것이지만, 북한입장에서 훈련이 어쨌든 실시된다는 점에서 불충분한 것으로 평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행동 대 행동의 차원에서 확성기 방송 중단과 철거 등 자신들에게도 유리한 사안에 대해 비례적인 호응을 했지만 정부의 남북접촉 시도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최근 인천 석모도 해안에서 발견된 북한 주민의 시신 인도 계획에 아예 반응을 하지 않았고, 앞서 지난 달 표류어민 6명의 해상 송환과정에서도 남측과 말을 섞지 않는 침묵의 간접적 대응만을 했을 뿐이다.
북한은 다만 이런 접촉 시도에 일체 응하지 않으면서도 남한 언론 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재명 정부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여정의 대남담화만 봐도 '선 대 선'을 촉구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북 제안, 정부의 개별관광 추진검토, 통일부 명칭변경 논란 등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각종 정책 현안에 대해 북한이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 대해 조건부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김여정의 대미담화가 국내 일부 언론에만 보도된 익명의 미 백악관 당국자의 발언으로 시작된다는 점은 북한이 우리 언론을 얼마나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연합뉴스김여정 부부장이 적대적 2국가 기조에 따라 "한국과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남북접촉 및 대화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지난 정부 시기 대남 언급 자체를 피하던 것과는 비교된다. 이른바 '악플'이 때로는 '무플'보다 더 큰 관심을 반영할 수도 있다.
러·우 전쟁 휴전논의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 등 한반도 정세의 급변속에 북한도 당분간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안에 한해 비례적 대응을 하며 상황관리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우여곡절 끝에 북미대화의 문이 열리면 그 연장선에서 남북관계도 북한이 주장하는 '두 국가'를 고리로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 모색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이 대남담화와 대미담화를 사실상 동시에 발표한 것은 두 문제를 큰 틀에서 한 쌍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