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아동성범죄자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제프리 엡스타인이 생전에 정·재계 유력 인사들을 초대해 파티와 만찬을 벌였던 뉴욕 맨해튼의 저택 내부 사진을 단독 공개했다. 저택 곳곳에는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정치인, 재계 인사, 학자 등의 사진과 물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은 엡스타인이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자택에서 운영한 비공식 사교 모임의 실체와, 그를 둘러싼 권력 네트워크의 구체적인 면면을 드러내는 단서로 주목된다.
'궁전 같은' 7층 저택… 입구엔 '인맥 과시용' 액자, 천장엔 조각상
뉴욕타임즈가 4일(현지시간) 보도한 엡스타인 저택 내부 사진. 웨딩드레스를 입은 동상이 줄에 매달려있는 모습이다. 뉴욕타임즈 제공보도에 따르면 저택 입구 복도에는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듯 정재계 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수십 점이 액자에 담겨 일렬로 배치돼 있었다. 중앙 홀 천장에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밧줄을 움켜쥔 여성 조각상이 매달려 있다.
NYT는 이를 "궁전 같은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사진을 제공한 이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입수 경위는 밝히지 않았다.
1층 식당은 엡스타인이 각국의 유명 인사, 학자, 정치인, 기업인들을 번갈아 접대하던 공간이었다. 손님들은 커다란 직사각형 테이블에 놓인 표범 무늬 의자에 앉았다. 일부 참석자들에 따르면 마술사가 와서 공연하기도 했고, 손님이 도표를 그리거나 수학 공식을 쓸 수 있도록 칠판이 있기도 했다.
저택 내부 곳곳에는 엡스타인이 교류한 정·재계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록 밴드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복도에 걸려 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빌 게이츠가 "내가 틀렸다!(I was wrong!)"고 직접 서명한 1달러 지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과 찍은 사진도 저택 안에 놓여 있었다.
뉴욕타임즈는 4일(현지시간) 엡스타인의 워싱턴 저택 사진을 입수해 보도했다. 해당 사진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다. 뉴욕타임즈 제공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사진도 등장했다. 엡스타인은 트럼프 대통령, 당시 연인이던 멜라니아 여사, 그리고 자신의 핵심 측근이었던 기슬레인 맥스웰과 함께 촬영한 사진도 보관하고 있었으나, 해당 사진에서는 맥스웰의 모습만 의도적으로 잘려 나가 있었다고 한다.
사무실엔 '롤리타' 초판…범죄 온상이었던 침실 층엔 감시카메라
2층 엡스타인의 사무실에는 1955년 초판 '롤리타'가 전시돼 있었다. 성적 집착을 느끼는 중년 남성이 12살 소녀를 반복적으로 성폭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무실 한쪽에는 엡스타인이 박제 호랑이를 양탄자 위에 누인 채 진열해 둔 모습도 포착됐다.
NYT는 3층을 침실과 악명 높은 마사지실, 여러 개의 욕실이 있는 장소라고 소개했다. 침대 위 구석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것이 사진에 보인다. 마사지실 사진에는 벌거벗은 여성 그림들, 커다란 은색 쇠공과 족쇄, 윤활제가 진열된 선반이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엡스타인은 10대 소녀들에게 이곳에서 나체 마사지를 시키고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마사지실에는 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생일편지서도 드러난 정재계 연결고리…"뱀파이어와 사는 드라큘라 성"
NYT는 2016년 엡스타인 생일을 맞아 그에게 전달된 축하 편지 7통도 함께 공개했다. 편지에는 영화감독 우디 앨런,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 언론계 거물이자 부동산 재벌 모티머 주커먼,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기업가 조이치 이토, 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바라크 전 총리와 부인은 편지에서 엡스타인을 "사람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묘사하며 "호기심이 끝이 없는 사람", "우리 모두가 앞으로도 당신의 식탁에서 함께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우디 앨런은 저녁 모임을 "루고시가 젊은 여성 뱀파이어 세 명과 사는 드라큘라의 성"에 비유했다. 젊은 여성 뱀파이어는 해당 저택에서 근무하던 젊은 여성 종업원을 칭하는 말로 보인다. 촘스키와 이토, 크라우스 등도 엡스타인과의 지적 교류에 감사를 표했다.
대다수 인물들은 NYT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다만 크라우스 박사는 "편지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엡스타인 자택에서 과학자, 작가들과 흥미로운 토론을 나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