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통일걷기 9일차, 참가자들이 민통선 출입문을 지나 두타연으로 향하고 있다. 양구=진유정 기자좀처럼 쉽게 열리지 않을 법한 회색빛 민통선 철문이 무거운 마찰음을 내며 순례객들에게 길을 내어준다.
2025년 통일걷기 9일차. 참가자들은 하늘보다 산의 녹음이 더 넓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강원도 양구군 민간인통제선 안으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도솔산 전투 등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양구. 그 상흔 속에서도 민통선과 비무장지대 사이에는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이 숨쉬고 있다.
30여분을 걸었을까.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폭염의 기세를 꺾는 힘찬 물소리가 자연의 안내자가 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자연스레 인도한다.
"와! 두타연이다"
사태천이 굽이굽이 흐르다 굽어진 부분의 양쪽이 동시에 깎여 물굽이 사이에 좁고 가느다란 곡류목이 만들어지고 또 다시 곡류목이 끊어지면서 직선에 가까운 물길이 생긴다. 이 물길에 상류와 하류의 높이 차이로 폭포가 생겼고, 물이 계속 폭포 아래를 침식시키면서 움푹한 물웅덩이를 만들어냈다.
주위의 산세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며 오염되지 않아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알려진 두타연이다. 높이 10m, 폭 60여m의 계곡물이 한곳에 모여 떨어지는 두타폭포는 굉음이 진동하고 한낮에도 안개를 만들어낸다.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두타연은 20m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하다.
지친 걸음들을 위로하고 힘을 더해주기 충분한 풍광이다.
이인영 의원 등 통일걷기 참가자들이 두타연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양구=진유정 기자통일걷기 참가자 가운데 양구 비무장지대에서 군생활을 마쳤다는 최인석 씨(성공회대 대학생)의 감회는 남다르다.
"지난해 1월에 전역했는데요. 비무장지대 근무가 힘들긴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특유의 예쁜 환경이 있습니다. 특히 밤이 되면 별이 되게 예쁘게 뜨거든요. 산양,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구요"
"제가 근무했을 때는 북한과의 긴장 관계가 조금 심했던 시기여서 폐쇄되기도 했던 지역인데, 이제는 개방이 잘 돼서 많은 사람들이 두타연과 민통선 안에 있는 천혜의 자연들을 함께 느끼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인묵 전 양구군수가 양구 민통선 이북 지역의 생태 가치의 중요성을 인터뷰하고 있다. 양구=진유정 기자열리고 닫히길 반복했던 두타연 가는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긴 시간 마주했던 조인묵 전 양구군수도 양구 민통선 숲길에 동행했다.
"두타연은 우리 양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우리 양구 군민들이 좋아하고 국민들이 사랑하는 곳이지요. 두타연 일대는 생태 안보 지역이기도 합니다. 아쉬운 것은 최근까지 이곳에 오는 길이 많이 제한된 점이었는데 새 정부가 두타연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천연기념물 산양도 양구 민통선과 비무장지대의 또 다른 상징이다. 탐방로 곳곳에서 산양의 배설물과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도심에서 접하기 어려운 각종 새들의 노랫소리도 풍광의 운치를 더한다.
양구 민통선 이북 탐방로 곳곳에서 쉽게 발견되는 천연기념물 산양의 배설물과 흔적들. 양구=진유정 기자굵은 땀을 닦아내면서도 최태영 박사(국립생태원)의 얼굴은 한껏 들떠 있었다.
"오색 딱따구리 소리 들으셨죠? 평지에 숲과 습지가 이렇게 넓은 면적이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서는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대에 형성돼 있습니다. 학술적 가치는 물론 보존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올해로 9년, 내년이면 10년차를 맞는 통일걷기는 '걷기'를 넘어 남북을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와 주변의 생명, 생태 가치에 주목하고 문화, 통일에 대한 염원을 접목한 새로운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동료 의원들과 통일걷기를 준비한 이인영 의원은 "두타연을 비롯한 민통선 이북 지역의 생태 환경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활짝 개방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이곳을 찾는가 이런 것들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통일과 평화에 대한 마음과 또 생태를 잘 보존하고 지켜 나가야 하는 마음, 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개발 발전의 지체와 소외감으로부터 벗어나서 이곳이 분단과 적대화 전쟁의 상징이 아니라 공존과 평화와 통일 번영의 땅으로 탈바꿈하는 데 있어서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그런 꿈을 품으며 걸음을 옮기려 합니다"
2025년 통일걷기는 인제를 지나 9일 고성 통일전망대를 거쳐 DMZ박물관에서 해단식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