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CBS 이균형 대표"군주된 자는,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나라는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킨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게 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말이다. 잘 알려졌듯 '군주론'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의 대표적 근거로 꼽히며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과연 비윤리적 전체주의의 선구자였을까? 아니면 허울 좋은 도덕을 벗겨내고 냉정한 현실을 꿰뚫어 본 탁월한 정치철학자였을까?
그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고, 지금으로부터 무려 500여 년 전 르네상스 시대에 마키아벨리가 갈파했던 '군주론'을 소환한 이유는 우리가 그와 비슷한 군주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그 '군주'께서는 서두의 '군주론' 앞부분과 중간 부분까지도 싱크로율 거의 100%에 가까운, 완벽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맨 뒷부분에서는 단어 몇 개가 바뀌었다. 그런데 어쩌랴, 단어 하나의 차이가 남극과 북극의 차이라고 하니…
그 '군주'께서는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배신도 하고, 잔인해졌으며, 인간성을 포기했고, 이단 논란 등과 함께 신앙심조차 버린지 오래였다.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니 그에 맞게 임기응변으로 어마무시한 계엄도 불사하며 주저없이 사악해 졌다. 그런데 이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군주론'에서는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로 적고 있지만, 우리 '군주'였던 분은 '나라'라는 단어를 삭제하고서 '아내'와 '측근'을 집어넣었다.
10원 짜리 하나 챙기지 않았다는 장모에서부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채상병 격노설, 공천개입 의혹까지… 식단으로 치면 뷔페요, 농사로 치면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지는 전 '군주 부부'의 '엔드리스 크라임 페스티벌'은 3개 특검이 동시다발로 가동되면서 연일 문전성시다.
그런 '군주'를 지내셨던 분이, 불법 계엄에 따른 사법 처리를 절대 피하지 않겠다며 대국민담화까지 발표하셨던 분이 끝까지 저항하며 용산 관저에서 체포된 것도 모자라 이젠 '실명 위기' 진단서까지 들이밀었다. 이어진 특검 소환에 불응하면서 또다시 발부된 체포 영장을 온몸으로, 그것도 속옷 바람으로 완강히 거부했고, 결국 영장 집행은 무산됐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렇게 추한 '군주'가 있었던가?
이 과정에서 필자는 '실명 위기 진단서'에 눈길이 간다. 그 진단서는 분명히 맞다고 본다. 그러나 진단서의 발부 시기는 잘못됐다. 그 진단서는 그 '군주'께서 후보로 나섰을 때였어야 했고, 군주로 등극했을 때에는 실명 진단을 내렸어야 했다. 왜냐고? 그때부터 그 '군주'께서는 이미 '국민'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 '군주'께선 우리 국민들에게 몇 가지 선물도 던져주셨다. 바로 '반면교사'가 돼 주셨다는 것이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 불법 계엄과 같은 사태가 재발할 수 있는 여지의 싹을 아예 없애주셨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강화된 우리 국민(특히 군인)들의 민주화 역량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선의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경계와 감시로 유지된다는 것도 배웠다. 바라건데 그토록 지대한 공헌을 하신 군주께선 앞으로 치료도 잘 받으시고 시력도 회복하시라. 그리고 두 눈 똑똑히 뜨고서 무수한 재판 받으며 '군주'는 어떠해야 했음을 뼈저리게 돌아보시라! '군주'가 챙겨야 할 것은 '와이프'와 '측근'이 아니라 '국민'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