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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선에서 만난 '민통선 사람들'…"매일 북한이 보이지만 가지 못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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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분단의 선에서 만난 '민통선 사람들'…"매일 북한이 보이지만 가지 못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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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통일걷기 4일 차 지나며 100km 넘겨
    통일걷기 일행 반기는 민통선 안의 사람들
    민통선도 '보통의 하루', 남북관계 따라 긴장도
    남은 9일 강원도 고성까지 DMZ따라 이동

    과거 금강산으로 향했던 끊어진 철길 위를 통일걷기 참가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박수연 크리에이터과거 금강산으로 향했던 끊어진 철길 위를 통일걷기 참가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박수연 크리에이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른 아침부터 날이 흐렸다. 하늘에선 똑똑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빗줄기로 이어졌다가 또 그치기를 반복했다. 회색빛 하늘 아래에서 한반도 모양이 그려진 파란색 조끼를 입고 줄지어 걷던 무리는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먹구름이 뜨거운 해를 가리고, 적당히 떨어지는 비는 딱 더위가 가실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왼편으론 드넓은 논으로 덮인 철원 평야가 펼쳐졌다. 무릎보다 조금 위 정도의 높이까지 균일하게 올라온 벼들이 아직은 파랗게 익어가던 참이었다. 그 뒤로 펼쳐진 안개 더 너머로는 흐리지만 또렷하게, 산의 능선들이 좌우로 뻗어나갔다. 저 능선 너머가 북한과 바로 접한 비무장지대(DMZ)다.

    분단의 흔적·평화의 기원 공존하는 철원

    2025 통일걷기 일행들이 지난달 31일 강원도 철원 월정리역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수연 크리에이터2025 통일걷기 일행들이 지난달 31일 강원도 철원 월정리역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수연 크리에이터
    지난달 31일 이들이 걸은 곳은 남한의 최북단, 강원도 철원의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부, 통상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된 지역이다. 이들은 나흘 전 파주 임진각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쭉 펼쳐진 분단의 선 DMZ를 따라 걷는 중이다. 지난 2017년 처음 시작돼 올해로 9번째 열리는 '2025 통일걷기'의 여정이다. 이번 행사는 오는 9일까지 총 12박 13일 동안 민통선을 넘나들며 약 300km 넘는 거리를 걷는 일정이다.

    참가자들은 지난 사흘간 임진각부터 연천을 거쳐 철원에 도달하기까지 100km 가까이 걸었고, 이날 일정은 백마고지와 인접한 철원 대마리의 두루미평화관에서 출발했다. 목적지는 과거 금강산으로 가는 철길이 지났던 '금강산 철길마을'이다. 중간에 DMZ 남방한계선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마지막 기차역 월정리역과 철원 평화전망대를 거치는 코스다.

    철원은 단순한 접경 지역을 넘어 6.25 전쟁 당시 교전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 중 하나로 그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며 오랜 기간 접근이 제한돼 자연적으로 회복된 습지에 다양한 조류와 생물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분단의 흔적과 자연의 회복, 평화의 기원이 공존하는 공간인 것이다.

    9년째 한 번도 빠짐없이 행사에 참여했다는 장백건(59)씨는 "철원을 걷다 보면 분단의 현실과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생태, 그리고 조국을 지키는 군 장병들의 헌신은 물론 그 바로 옆에서 벼농사를 짓는 우리의 삶 등 모든 걸 다 한 번에 느낄 수 있다"며 "가장 첫 번째로 꼽는 절경"이라고 말했다.

    민통선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50년째 민통선 내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는 강동철(76)씨가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수연 크리에이터50년째 민통선 내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는 강동철(76)씨가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수연 크리에이터
    자연도 반갑지만, 평화를 기원하며 묵묵히 분단의 선을 따라가는 참가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건 역시 사람이었다. 명칭과 달리 민통선은 민간인의 출입이 아예 통제된 곳은 아니다.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민통선 안에 위치한 마을은 10 곳이 되지 않을 정도로 소수다.

    이날 통일걷기 참가자들은 민통선 내 위치한 샘통고추냉이 농장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DMZ의 천연 암반수로 재배한 고추냉이와 송어회가 메뉴였다. 폭염을 피하기 위해 해뜨기 전 아주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선 참가자들에게는 꿀맛 같은 식사였다.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샘통고추냉이 농장의 대표 박상운(58)씨는 "단순하게 식사를 제공한다면 그저 정성을 담으면 되는데 어제는 잠을 좀 설쳤다. 이분들이 왜 이 더위에 통일대장정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며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이라는 게 혹서기의 대장정보다도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싶어 고마웠다"고 했다. 박씨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겠지만, 희망을 갖고 염원을 담아 계속 실천한다면 언젠가 이뤄지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창 논 농사일에 매진하던 농민들도 이따금 일을 멈추고 통일걷기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거나 목례하며 반겼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는 것, 어찌 보면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민통선 안의 사람들도 보통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50년째 민통선 내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는 강동철(76)씨는 "과거엔 전방 통제가 말도 못 하게 강했지만 많이 없어졌다"면서 "대북·대남 방송 때문에 시끄러워서 불편할 때가 있긴 해도 너무 익숙하게 몸에 벴기 때문에 여기도 다 똑같이 산다"고 말했다.

    이날 20km 넘는 걷기 여정을 마치고 참가자들이 도착한 곳은 넷째날 숙소인 '금강산 철길마을 체험관'이다. 이미 나흘간의 걷기로 몸 곳곳에 상처와 체력적인 부담이 쌓인 참가자들은 숙소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린 듯 곳곳에서 탄성을 내뱉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첫 행사 때부터 이곳 체험관에서 통일걷기 일행들을 맞이했다는 체험관의 사무장 이동한(68)씨는 민통선 안에서의 삶에 대해 "정치적인 이유와 남북관계 등에 따라서 민간인들에 대한 군의 태도나 통제가 달라진다든지 대남방송으로 인해 생활이 안 될 정도로 불편하기도 하다"며 "매일 같이 북한이 보이고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지만, 가보지는 못한다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이씨는 "이렇게 걷는 분들의 염원들이 빨리 이뤄져서 평화가 오고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인영 의원 "민통선 안에서부터 평화의 꿈 퍼져나가길"

    지난달 31일 걷고 있는 2025 통일걷기 일행들. 박수연 크리에이터지난달 31일 걷고 있는 2025 통일걷기 일행들. 박수연 크리에이터
    이제 통일걷기 일행은 남은 9일간 고성까지 200km 가까운 구간을 걷고 또 걷는다. 올해 통일걷기는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 열리는 행사여서 더욱 주목된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결 국면이던 한반도가 화해·협력 분위기로 바뀌기를 염원하는 취지가 담겼다. 올해는 사단법인 통일걷기와 CBS가 공동주관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등 범여권 의원 55명이 공동주최했다.

    맨 처음 통일걷기를 기획한 이인영 의원은 이번 행사 첫날부터 참가자들과 함께 걸으며 자리를 지켰다. 이 의원은 나흘째인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통일을 마음의 중심에 세우고 평화를 만들기 위해 걷는 길은 날씨가 좋을 때나 굳을 때나 또 비가 오나 아니면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늘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 평화가 오고 통일이 와도 이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민통선 안에서부터 평화의 꿈이 다시 퍼져나가고 또 일으켜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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