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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에 깃든 1500년의 자부심…"전통을 잇는 장인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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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일반

    모시에 깃든 1500년의 자부심…"전통을 잇는 장인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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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진짜를 맛보다 : 지리적표시(PGI)가 보증하는 지역 명품 농산물 이야기. 지리적표시제는 단지 이름이 아니라, 신뢰와 품질의 증거다. 그 땅의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리적표시 25호 '충남 한산모시'


    정교한 손길로 짜여진 하얀 천. 햇살에 반짝이는 까슬한 직물. 여름날, 몸에 붙지 않아 시원한 옷감 '모시'. 천오백 년을 이어온 이 전통 섬유는 지금,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 장인들의 손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산모시'라는 이름에는 자연과 역사, 기술과 제도가 함께 짜여 있다.
     
    한산모시는 일반적인 농산물 외에, 지역성과 전통성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한산은 안개가 잦고 습도가 높아 질 좋은 모시풀의 재배와 제작에 최적의 기후 조건을 갖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진상되던 귀한 여름 옷감이었고, 지금도 가장 체계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한산모시짜기는 196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14호로 지정됐으며,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그 전통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한산모시 옷. 노컷TV캡처한산모시 옷. 노컷TV캡처
    ◇ 지리적표시 25호 한산모시, 천년을 짜온 바람의 직물
     
    모시는 줄기에서 섬유를 추출해 실을 만들고 베틀에서 짜기까지 수 단계의 손길이 필요하다. 모시를 재배하고 수확해 줄기를 꺾고 모시풀 바깥층을 벗겨내 속껍질을 햇볕에 말리고 물에 적시는 과정을 반복해 모시의 최초 섬유질, '태모시'를 만든다.

    이를 이로 쪼개 굵기를 일정하게 하고(모시째기), 무릎에 손바닥으로 비벼 잇고 꼬아 실 형태로 만든다(모시삼기). 실을 정렬하고 바디에 끼운 뒤, 콩풀을 입혀 날실을 정리하는 과정(모시매기)를 거쳐야 비로소 우리가 익숙히 아는 베틀에 앉아 모시를 짜는 과정(모시짜기)에 도달한다. 고도의 기술이자 장인정신의 집약체다.
     
    모시실은 건조하면 바삭하고 줄어들어 끊어지기 쉬우므로, 습도 조절이 중요하다. 날실이 끊어지면 풀솜을 조금 꼬고 비빈 후 코팅해 이어주고, 잔가락은 바로 쪽가위로 잘라준다. 모든 공정이 손으로 이뤄지며, 성인 옷 한 벌 분량의 1필(폭 31cm, 길이 약 22m)을 짜는 데 서너 달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한산모시 짜는 모습. 노컷TV캡처한산모시 짜는 모습. 노컷TV캡처
    ◇ 전통을 잇는 장인의 손길
     
    박미옥 장인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한산세모시짜기 1호 보유자다. 그의 모시 인생은 열일곱 살, 어머니의 베틀을 훔쳐 타던 시절부터 시작됐다.
     
    "엄마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어요. 근데 너무 하고 싶어서 몰래 올라가서 짰어요. 1cm 짜다 떨어지면 놀라서 내려오고 그랬죠."
     
    그렇게 시작한 모시 짜기는 이제 49년째. 그만큼 자부심이 가득하다.
     
    "세모시는 실이 너무 가늘어서 눈꼽만한 티끌만 있어도 안 돼요. 나도 짜고 나면 '내가 이걸 짰나?' 싶을 정도로 감탄해요. 그건 아무나 못 해요.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모시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지금도, 후계자는 귀하다. 힘든 작업에 비해 수익이 적고,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박 장인은 "이 귀한 전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전수자들이 계속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산모시 콩풀 칠하기 장면. 노컷TV캡처한산모시 콩풀 칠하기 장면. 노컷TV캡처
    ◇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자산 '한산모시' 
     
    한산모시 후계자 양성 교육에 참여 중인 김민선 씨는 섬유에 관심이 많아 모시 제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번에 교육을 받으면서 짜기, 삼기, 날기, 매기 같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됐어요.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커요."
     
    그녀는 매기 과정을 특히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모시 한올 한올에 애정을 담는다.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로 귀한 작업이잖아요. 하나의 역사를 잇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힘들어도 계승해야죠."

    한잔모시의 지리적표시 인증서. 노컷TV 캡처한잔모시의 지리적표시 인증서. 노컷TV 캡처
    ◇ 지리적표시제, 전통을 잇는 든든한 울타리
     
    한산모시 생산자들은 지리적표시 등록 후 더욱 엄격한 품질 관리와 전통 방식 보존에 힘쓰고 있다. 매년 전수 교육과 생산 기록을 철저히 관리하며, 지역의 전통문화재로서 가치를 지키는 데 주력한다.
     
    한산모시조합 임은순 대표는 2006년 모시 농가들과 함께 조합을 만들어 지리적표시제 등록까지 추진한 주역이다. 그 전엔 중국산 모시를 한산모시로 둔갑시켜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접 재료를 수매해서 농가에 공급하고, 짠 모시는 우리가 전량 구매해요. 짜는 사람은 자기 돈 안 들이고 인건비만 받죠."
     
    지리적표시 등록, 단체표장을 한번에 완료한 이후, RFID 태그를 활용한 진품 보증 시스템이 도입됐다. 모시풀 재배부터 필모시 완성까지 모든 생산 이력과 생산자 정보가 마이크로칩에 기록되어 있고, 태그를 통해 생산 과정과 생산자의 이름, 생산지, 제품 등급까지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RFID 태그와 정품인증서, 검사필증이 함께 제공되어 농가 보호는 물론, 품질 보증까지 가능하게 만들었고, 소비자는 '진짜' 한산모시임을 안심할 수 있었다. 소비자 신뢰가 쌓이자 지금은 되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산모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섬유예요. 섬유 박람회도 전국적으로 드문데, 우리는 해마다 모시문화제를 이어가고 있어요. 이게 전 세계에서 유일한 100% 수작업 섬유예요. 나라에서도 지켜줘야죠."

    지리적표시제가 한산모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고 전한다.

    한산모시에 현대 기술로 염색한 제품. 노컷TV 캡처한산모시에 현대 기술로 염색한 제품. 노컷TV 캡처
    ◇ 전통과 미래가 만나는 곳, 한산모시
     
    지리적표시제도는 농산물뿐 아니라 지역 전통 공예까지 보호하며, 단순한 문화 보존을 넘어섰다. 천오백년을 이어온 한산모시는 자연이 빚어낸 소재와 장인의 정성, 그리고 국가의 체계적인 보호가 어우러진 진정한 '전통 브랜드'다. 지리적표시라는 든든한 울타리 덕분에, 한산모시의 품질과 명성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모시풀 수확부터 실 뽑기, 베틀 위에서 올을 엮고 짜내는 전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과 손기술이 요구된다. 오랜 경험이 쌓여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보니 전수자 또한 많지 않아, 장인들과 관계자 모두 후계자 양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한산모시 장인들은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 묵묵히 손길을 이어간다. 천년의 역사와 기술이 깃든 이 직물에 담긴 진짜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에 전통공예품을 구매할 때, '한산모시'라는 이름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와 정성을 기억해 보자. 지리적표시제가 붙은 모시는 그 지역의 흙, 바람, 사람을 입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본 프로그램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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