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국무회의 주재. 연합뉴스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기엔 30일이면 충분했다. 1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대응TF 구성을 지시한 걸 필두로 국무회의에선 대통령이 이전 정부 장관들과 열띤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공직사회에 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주호 국무총리 권한대행 겸 교육부장관은 1일 국무회의에서 "전 정부 시절 임명된 국무위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한 달은 숨가빴지만 치밀하고 치열했다. 대선 직후 새정부가 서둘러 출범한 것치곤 다소의 인사잡음을 제외하면 인사와 국정장악, 정책, 소통 등의 측면에서 안정감을 심어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shrewd'라는 영어표현을 썼다. 임기초 국정운영을 '영리하게, 빈틈없이' 하고 있다는 외부평가인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SNS에 "지난 30일, 5200만 국민의 간절한 열망과 소망을 매 순간 가슴에 새겼던 치열한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한 달에 흐르는 키워드는 '실용'과 '소통'이다. 실용은 인사와 정책 모두를 관통한다. 취임사에서 '이념보다는 실용'이라고 강조했듯 인사스타일에서는 이른바 '일머리'를 우선했다. 러시아 대사를 역임한 우윤근 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원내대표는 " '네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실용적으로, 실무에 밝고 일 잘하는 사람 위주로 인사가 이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교안보라인 인선에서는 이종석 국정원장과 위성락 안보실장, 조현 외교부장관 후보자를 기용함으로써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적절하게 힘을 실어주는 균형과 조화를 추구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때 경험자인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을 재기용한 것도 실용적인 인사스타일에 해당한다. 한 전직 경제관료는 "검증된 전문가 중심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본다. 정부가 정상적으로 인수인계된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검증된 사람을 쓰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사정 라인을 정성호 법무-봉욱 민정수석 체제로 구축한 것은 정권교체에 담긴 민심 중 하나인 검찰개혁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최근 검찰개혁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인물들로 수뇌부 인사를 단행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실용의 또다른 측면은 유연하다는 점인데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반 오광수 민정수석과 이승엽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인사잡음이 커지자 뜻을 굽혔다. 인사 논란으로 검찰개혁에 실패하고 정권마저 내어준 문재인 정부 때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을 것이다.
수용성을 높인 정책 추진도 눈에 띈다.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집값을 잡기 위해 과거 진보진영에서 흔히 쓰던 증세 대신 대출규제를 통해 명분은 살리면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채택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전직 고위관료는 "집값 폭등 등 시급한 문제는 급한대로 대책을 내놓고, 큰 그림이 필요한 과제는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청사진을 마련하는 식으로 정책추진에 있어 투트랙 전략을 펴고 있는 건 지금 상황에서 바람직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기업관은 원칙과 실용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친기업 행보를 이어가면서도 주가조작 등 경제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에는 단호하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상법개정에도 적극적이다. 우윤근 전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은 몇가지 원칙은 세우되 그 안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는 지도자"라며 "정권 초 성적표는 80점 이상을 주고 싶다"고 긍정평가했다.
불통 이미지로 점철됐던 전임 윤석열 정부의 기저효과 때문일까? 이재명 정부 취임 한 달은 소통과 탈권위가 도드라진다. 국무회의는 토론식으로, 수석보좌관회의는 실무자까지 참여해 진행된다. 윤석열 정부 당시 카이스트 입틀막 사건이 파문을 일으킨 것과 정반대로 지난달 25일 광주 타운홀미팅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제게 고함치던 분, 마이크 줄테니 들어와서 말씀하시라"고 한 발언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취임 30일 만인 3일 첫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을 통한 대국민 소통에 나서는 것도 이례적이다.
시작이 반일 수 있지만, 여전히 임기는 4년 11개월 남았다. 내란극복과 검찰개혁, 민생입법, 국가 성장동력 회복을 위해서는 이제부터가 진짜다. 지금은 새정부가 날개를 달았지만 자칫 삐끗하면 추진동력은 언제든 상실할지 모른다. 꼭 필요한 개혁과제들은 관철하되 넘치거나 다수당의 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 주변 측근의 투명한 관리도 필요할 것이다. 저성장,저출산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었던 게 아니라 대책이 먹히지 않았던 만큼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방향전환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