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2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열린 여야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18일 만에 여야 지도부와 오찬 회동을 하며 여야간 소통 복원의 물꼬를 텄다.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간 회동이 역대 정부와 비교해도 빠른 편인 데다가, 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협치를 강조한 만큼 '정치 복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야 소통 복원 방점…추경∙청문회 등 민감 이슈 목소리 '절제'
이 대통령은 22일 오후 12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송언석 원내대표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불러 약 1시간 45분간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야당 지도부와의 회동인 만큼 이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외교∙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야가 협력해야 한다는 통합 메시지를 강조했다.
외교 분야와 관련해서는 "여야 없이 공동 대응해야 하는 문제다. 앞으로도 대외 문제에 관한 건 함께 입장을 조율해 가면서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협조를 구했고, 경제 분야에 대해선 "가능하면 신속하게 현재 어려운 상황을 함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회동 장소 선정 과정에서도 용산 대통령실 등 사무 공간보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가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끼리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과 야당과의 상견례 자리인 만큼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내각 인선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열린 여야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 대통령,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송언석 원내대표, 우상호 정무수석. 연합뉴스취임 후 720일만에 野지도부 만난 尹과 차별화
속도감 있는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간 회동으로 직전 정부인 윤석열 정부의 '불통' 이미지가 재부각된 반면, 보수층에서는 이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성'에서 '소통'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를 만난 시점은 역대 정부와 비교해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720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4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59일 만에 야당 지도부를 만났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당시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은 그 자체로 주목을 받았지만 △채상병 특검법 수용 △김건희씨 관련 의혹 등 정리 △민생회복지원금 등 야당의 제안을 윤 전 대통령이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불통' 이미지는 오히려 부각됐다.
대통령실이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 시기를 앞당긴 데는 야당과의 소통을 원하는 이 대통령의 뜻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오찬 자리에서도 "가능하면 많이, 빨리 뵙자는 입장이었다"며 추가 회동 가능성을 열어뒀다.
애당초 대통령실 참모진은 이 대통령에게 7월 초 야당과의 만남을 추진할 것을 건의했지만, 이 대통령은 G7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당일인 지난 19일 국무회의 참석 직전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 조기 추진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강성 지지층에 힘입어 관료 탄핵과 특검 도입 등을 추진하던 모습과는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취임 직후 여당이 주도하는 '밀어붙이기' 정국에서도 이 대통령은 속도 조절론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여당이 '대통령 재판 중지∙면소법'이라고 불리는 형사소송법과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을 추진할 당시 참모진에게 해당 개정안에 대해 "지금 처리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민주당의 숙원 과제인 사법∙언론 개혁안에 대해서도 "서두르기보다 각계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숙의 과정을 거쳐 새 원내지도부가 판단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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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 튼 '정치복원'…'강성 지지층' 등은 남은 과제
이번 회동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회동의 의미에 대해 '정치 복원'에 방점을 찍었다. 다만 여야를 가리지 않고 '팬덤 정치' 내지는 '강성 지지층'에 기대는 한국 정치 문화를 단시간에 개선하는 것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서로간 대화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첫발은 뗀 것 같다"며 "솔직히 말하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여야 모두 지지자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아직 형성돼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한발짝 나가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라며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조금씩 진전시켜 나가려는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