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6·3 조기대선을 앞두고 주요 대선주자들의 사법개혁안이 나왔지만 '일반 시민' 입장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담겼는지 의문이 나오고 있다. 고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이의신청권이 사라지고, 장기 미제 사건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점 등은 당장 불편함이 체감되는 사안이지만 개선책은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수사기관 개편이라는 거대 공약 속 '디테일'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고발인 이의신청권 소멸 후폭풍…공익신고 위축·피해자 대리도 불가
"누군가는 인생을 걸고 공익신고를 하는데 경찰에서 불송치 하면 끝나는 거예요."
'백제병원 피해자모임' 대표 고(故) 김인규씨와 공익신고를 진행해 온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김씨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말했다. 올해 1월 경찰에서 백제병원 고발 사건을 불송치 하기로 했다는 통화를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 변호사는 김씨가 심장질환으로 급작스레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는 2019년 충남 논산시에 있는 백제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숨지는 사건을 겪고 피해자모임 대표를 맡아 병원의 여러 비리 의혹을 신고했다. 병원은 고발 당했지만 경찰은 사건을 불송치했고, 더는 이의 신청을 하지 못했다. 2022년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과정에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고발인 이의신청권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는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고소인만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공익신고자나 사회적 약자들은 주로 제3자가 대신 나서 '고발'을 한다는 데 있다.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사건은 당사자가 신원 노출을 우려하기 때문에 기관이나 단체가 고발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과 아동, 노인 등 스스로 피해를 인식하고 고소에 나서기 어려운 피해자들의 사건도 마찬가지다.
최 변호사는 고발인 이의신청권이 사라진 후 공익신고자들에게 면목 없는 전화를 걸어야 할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경기도의 한 대형 한의원의 비리를 고발한 직원들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으로 공익신고가 무위로 돌아간 것은 물론, 한의원으로부터 억대 소송까지 당하기도 했다.
장애인 인권 기관의 한 관계자는 "자신의 이름도 쓰기 어려운 피해자인데 직접 고소하는 형태로 사건을 진행해야 한다"며 "이런 궁여지책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불리한 해석으로 돌아올까봐 늘 걱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특성상 초반 진술이나 증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적극성이 진범과 추가 피해를 드러내는 데 결정적"이라며 "검찰은 보완수사에 제약이 많고 경찰은 사건 처리에 허덕이고 있다. 범죄자만 좋은 꼴"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23년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보장하고 적정한 이의신청 제기 기간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장기미제 사건 4년 새 2배 증가…검경 간 '핑퐁' 심화
일반 형사사건의 지연도 사건 관계자들 입장에선 애가 타는 부분이다. 특히 장기미제사건은 계속 증가세다. 22일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공받은 '검찰 장기미제사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수사미제기간 6개월을 초과한 사건은 9123건에 달한다. 2020년 6개월 미제사건이 4693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4월 기준으로 봐도 수사미제기간 6개월을 넘긴 사건은 8750건, 3개월 초과 사건은 1만1118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미제사건 증가는 지난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경 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졌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로 꼽힌다. 과거에는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을 수사지휘 하는 검사가 어떻게든 기소나 불기소로 종결 처리를 했지만, 바뀐 제도에선 검사가 보완수사를 지시해 사건을 경찰로 돌려보내면 검찰에선 사건이 처리된 것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검경 간 '핑퐁'이 일상화됐고, 사건이 돌고 돌아 다시 검찰에 쌓이면서 장기미제사건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법무부 집계, 검찰 장기미제사건 현황.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제출 자료일선 검찰청의 한 형사부 검사는 "고소인이 이의신청한 사건은 경찰에서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검찰에 송치되고 이에 대해 또 보완수사를 지시하는 등 기관 간 '핑퐁'식으로 사건이 돌다가 결국 장기미제 상태로 검찰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경찰은 증가하는 사건과 인력난에 허덕이고, 검찰은 수사권이 줄어들면서 경찰 송치 사건을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많이 쓰는 현상도 생겼다. 여전히 형사부 검사들의 업무는 과중하지만,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직접수사가 가능한 특수수사 영역 등으로 인력이 더 많이 배치되는 문제도 더해졌다 .
조용우 법무법인 더킴로펌 변호사는 "간단한 재산범죄 사건도 검찰로 넘어가기까지 체감상 1년은 넘게 걸린다"며 "경찰이 송치 후 검사가 보완수사를 명하면 검찰에선 사건번호 자체가 없어진다. 책임소재가 불명확하니 사건 처리도 하세월"이라고 밝혔다.
주진우 의원은 "장기미제사건 급증 등 수사지연과 부실수사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단순히 누구의 수사권을 뺏느냐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효율적인 수사를 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사법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수사기관 개편만 공약…시민 '불편' 고려해야
황진환 기자
제도 변화 과정에서 혼란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그러한 혼란을 야기한 법률의 공백과 충돌을 수습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고발인 이의신청권이나 장기미제 사건 증가와 관련한 문제 의식을 담은 공약은 모든 대선 주자들에게 전무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검수완박의 문제를 지적하며 윤석열 정권은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을 추진했다. 그러나 거물급 정치인이나 기업인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다시 열어뒀을 뿐 일반 형사사건의 어려움을 야기하는 원인들은 수정되지 않았다.
차기 정부가 수사기관을 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정당 대선후보의 수사부문 관련 공약을 정리하면 '검찰 수사권 폐지' 또는 '공수처 폐지'로 요약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검찰 수사·기소 분리와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통제 강화 △검사 징계 파면제도 도입 등 '검찰개혁 완성'을 10대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공수처 폐지'만을 공약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경찰에 완전히 몰린 수사권한을 누가 통제할지에 대해서도 답이 있어야 한다"며 "검찰이 해온 인권 관련 기능들을 어디에서 맡을 지도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