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붙잡힌 총책 A씨. 서울청 제공텔레그램을 통해 이른바 '지인 능욕방' 등을 운영하며 불법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고, 조직원 간 유사 강간까지 지시한 혐의 등을 받는 사이버성폭력 범죄집단 총책이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질 예정이다. '목사'로 불린 이 30대 총책이 벌인 악랄한 범죄의 피해자는 230명이 넘고, 이 가운데 150여명은 10대로 나타났다.
경찰은 과거 박사방 사건으로도 불린 'N번방 사건'을 수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위장 수사, 텔레그램과의 수사 공조 등 모든 수사기법을 동원해 조직원 전원 검거에 성공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23일 열린 언론 브리핑을 열어 2020년 5월부터 이번 달까지 텔레그램을 통해 이른바 '자경단'이라는 사이버성폭력 범죄집단을 운영한 총책 A(33)씨를 지난 15일 경기 성남시에 있는 주거지에서 붙잡았다고 밝혔다. 17일 구속된 A씨는 23일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될 예정이다. A씨 외에도 13명의 조직원 전원이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다.
자경단에 지인의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 등 허위 영상물을 제작해 제공한 혐의 등을 받는 B(30)씨 등 73명 가운데 40명도 검거됐다. 경찰은 나머지 33명도 추적 중이다.
경찰이 파악한 이번 사건의 피해자 수는 총 234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159명이 10대, 20대 이상이 64명, 인적사항 미상이 11명이었다. 과거 '박사방 사건'의 경우 피해자 수는 73명이었으며 이들 73명 중 미성년자는 16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의 피해 규모는 '박사방 사건'을 뛰어넘는 것이다. 성별에 따른 피해 현황을 보면 234명 가운데 성 착취 피해자 수는 남성 84명, 여성 54명이었으며 허위영상물 피해자 96명은 전부 여성으로 파악됐다.
자경단 일당이 제작한 성착취물과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개수는 총 1546개에 달하며, 실제 유포된 영상물 수는 427건으로 확인됐다.
서울경찰청 제공제작된 영상물 가운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도 1004개나 된다. 경찰은 유포된 영상물에 대해 접근 차단∙삭제 조치 등을 진행해 2차 가해 발생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총책 A씨가 범죄집단 조직원을 포섭한 방식도 엽기적이다. 그는 과거 'N번방 사건' 등의 수사기법까지 연구하며 완전범죄를 노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씨에 대한 심리 검사를 전날 진행한 결과 '반사회적 인격 소유자'인 점을 확인했다.
A씨는 성별과 나이대와 상관 없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범행 대상을 물색해 접근한 뒤 신상정보를 확보하고 '약점'을 잡아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예컨대 지인 딥페이크 합성물 제작∙유포 행위 등에 관심을 보인 남성에게는 지인능욕방 가입을 빌미로 유인해 신상 정보와 합성 대상자의 정보를 확보하고, 태도를 바꿔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인터넷상에서 성적 호기심을 표현하는 여성에게도 '당신의 사진이 유포될 것 같다'며 접근해 신상정보를 확보한 뒤 협박 등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찰청 제공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렇게 약점을 잡은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1시간 간격으로 일상을 보고 받는 등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인 대상 허위 영상물에 관심을 가진 행위에 대해 벌을 준다는 명목으로 나체를 촬영해 전송하도록 강요하면서 이들을 옭아맸다.
특히 A씨는 심리적 지배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에게는 '남성과 성관계를 하면 지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전국 곳곳에서 미성년자 여성 10명을 강간하고, 이런 범죄 행위를 촬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조직원에게 다른 조직원을 유사 강간하도록 지시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조직원은 피해자 가운데 범행에 동조하는 사람으로 구성됐다. A씨는 목사, 집사, 예비 전도사 등 계급을 나눠 '상명하복 지휘체제'를 구축해 조직을 운영했으며, 피해자 물색과 성착취물 등 제작∙유포, 조직원간 유사 강간, 활동자금 관리 등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운영한 범죄집단이 실제 교회 단체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목사라는 계급을 쓰게 된 경위는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주인공인 황정민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며 "조직 계급을 다양하게 나눈 이유는 조직 규모가 크다는 점을 과시하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2023년 12월 21일 피해자의 신고를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국 경찰서에 접수된 사건 60건을 차례로 이송 받아 집중 수사했으며, 200회의 압수수색을 통해 A씨의 휴대전화 등을 확보하고, A씨가 제작한 모든 성착취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수사기관에 비협조적이었던 텔레그램과의 공조 체계를 구축한 점도 중요한 수사 성과로 볼 수 있다. 경찰은 수사 착수 이후 텔레그램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지난해 9월 24일 범행 관련 자료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서울경찰청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과 협력해 수사 정보 확보에 나섰다.
수사팀은 과거 '박사방 사건', 'N번방 사건'을 전담한 경험이 있다. 이런 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수사관들이 직접 A씨가 운영 중인 텔레그램 대화방 등에 잠입하는 위장 수사를 진행해 총책 등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서울경찰청 오규식 사이버범죄수사2대장은 "사이버 범죄자들이 지인 합성물에 관심 있는 미성년자들의 약점을 빌미로 각종 범죄에 가담시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도록 조종한 것을 확인했다"며 "총책 A씨는 평소 수사기법을 연구하며 추적을 피하고자 철저히 텔레그램만을 사용하고, 절대 검거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완전한 범행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검거된다는 사실을 범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