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해 피청구인 좌석에 앉아있다. 사진공동취재단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직접 변론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진행된 수사 결과나 국회 청문회 증언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고수하면서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3차 변론기일에서 '비상입법기구 예산을 확보하라는 쪽지를 준 적이 없다',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한적이 없다', '선관위 장악은 부정선거 의혹 사실 확인 차원' 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 대부분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즉각 반박되는 모습을 보였다. 23일 오후 윤 대통령의 4차 변론기일이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이와 같은 태도를 유지하며 변론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尹 쪽지 준 적도, 만든 적도 없다는데 …"김용현은 당시 그 자리에 없어"
"준 적도 없고 계엄을 해제한 후에 한참 있다가 언론에 메모가 나왔다는 것을 기사에서 봤다…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밖에 없는데 장관은 그때 구속돼 있어서 구체적으로 확인을 못 했다"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국가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쪽지를 기획재정부 장관에 준 적이 있나"라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22일 국회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와 이미 드러난 수사 결과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의 주장은 하나하나 반박되고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류영주 기자특히 이날 청문회에선 김용현 전 장관이 국무위원들에게 쪽지를 건네기 어려웠다고 보이는 정황이 공개됐다. 김용현 전 장관을 보좌한 김철진 국방부 군사보좌관은 청문회에서 김 전 장관이 밤 11시 10분까지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렀다고 증언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김 전 장관 공소장에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장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덕수 국무총리,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문건으로 지시한 시각은 밤 10시 43분으로 추정된다"며 "최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문건을 받은 게 확실하고, 대통령 발언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쪽지를 받았다고 지목되는 최 권한대행도 윤 대통령과 대화 직후, 관련 쪽지를 받은 사실을 일찌감치 인정했다.
"대통령이 들어가시면서 제 이름을 부르시…저를 보시더니 참고라죠, 이것 참고하라고 하니까 옆의 누군가가, 누군가가 저한테 자료를 하나 줬습니다" (지난해 12월 13일 국회 출석 발언)
직접 건네 받지는 않았지만 윤 대통령이 말을 하자 옆에 있던 누군가가 쪽지를 줬다는 것은 윤 대통령이 쪽지의 존재를 알고 있고, 사실상 직접 건넸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최 권한대행의 경우, 계엄 직후 기재부 관료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해당 쪽지를 내보이며 "사직서를 쓰겠다"는 등 비상계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CBS 노컷뉴스 취재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기재부 관료들은 "환율보다 대외신인도 악화가 우려된다. 특히 대외신인도 회복에는 15년이 걸린다"며 사퇴를 강하게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종민 기자12.3내란 당시 국무회의 참석자인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계엄 당일 오후 윤 대통령으로부터 비상계엄 선포 소식과 함께 관련 업무가 담긴 쪽지를 직접 건네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도 조 장관은'대통령이 직접 쪽지를 준 것이 맞나'라는 질의에 "맞다"고 재확인했다.
이같은 윤 대통령의 '쪽지 부정'은 과거 자신의 발언과도 배치된다. 그는 앞서 지난 17일 서울서부지법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선 "김 전 장관이 쓴 것인지 자신이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답하면서 쪽지가 건네진 사실 자체는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말을 바꾸면서까지 쪽지 전달을 부인하고 있는 배경엔, 해당 내용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국회를 무력화하려고 시도한 행위가 입증돼 재판부가 위헌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최 권한대행에게 전달한 것으로 의심되는 쪽지엔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을 지시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는 국회를 무력화시키려고 했다는 의도를 입증할 중요한 증거로 꼽힌다. 때문에 헌재도 지난 21일 3차 변론기일에서 이 부분을 가장 먼저 캐물었다.
체포 지시도 안했다는데…수사 결과는 尹을 겨눠
"(국회의원 체포 지시) 없습니다."
또 그는 3차 변론기일에서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과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에게 계엄 선포 후 계엄 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이 있나"라는 문 권한대행의 두 번째 질의에 위와 같이 단 4글자로 단호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나온 검찰 수사 결과와도 배치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1월 초 윤 대통령이 이진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전화해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라",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도 이날 청문회에서 윤 대통령의 주장을 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계엄 당일 저녁 10시 53분에 윤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밝히면서"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선거 신뢰 의문" vs 선관위 "대법원 판결로 불가 입증"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에 의문 드는 것들이 많이 있었고 팩트를 확인하자는 차원이었다."
그는 12.3 내란 사태 당시 선관위에 계엄군을 투입시킨 것을 두고도 '부정선거' 가능성을 거론하며 "팩트 확인 차원"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글은 새해 초 윤 대통령이 직접 만년필을 들고 밤새 작성했다는 '국민게 드리는 글'과는 사뭇 다르다. 이 글을 보면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확신론자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선관위의 엉터리 시스템도 다 드러났습니다. 특정인을 지목해서 부정선거를 처벌할 증거가 부족하다 하여 부정선거를 음모론으로 일축할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 체포 직후 공개된 '국민께 드리는 글'의 일부)
선관위와 국회, 그리고 대법원판결마저도 그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선관위는 윤 대통령과 그의 변호인단이 탄핵 심판 변론 과정에서 제기한 부정선거 주장에 대해 보도자료를 내고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투표관리관 도장이 뭉개진 일명 '일장기 투표지'나 신권처럼 '빳빳한 투표지' 묶음이 부정선거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선관위는 대법원의 판결을 거론하며 "일장기 투표지, 빳빳한 투표지 등 투표지 위조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선거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이 이미 입증됐다"고 반박했다.
국회 측은 더 이상 근거 없는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심리 과정에 포함해선 안 된다며 헌법재판소에 관련 증거 신청을 제한해달라고 요청했다.
23일 윤 대통령의 4차 변론기일이 예정된 가운데 이날 변론에서는 김 전 장관도 출석을 예고하고 있어 윤 대통령과 대질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헌재는 이날 변론에서 '쪽지 작성 주도자', '계엄 포고령 작성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