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윤창원·황진환 기자·대통령실 제공윤석열 대통령을 구속에 이르게 한 결정적 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윤 대통령 자신과 그 주변에서 '입의 혀'처럼 굴며 비상계엄을 부추기고 모의하며 함께 실행한 내란 혐의의 공범자들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12·3 내란사태'로 수사를 받고 구속기소 된 핵심 측근들은 윤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정점이자 우두머리(수괴)임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됐다는 평가다.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19일 오전 3시쯤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을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차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이유를 밝혔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체포영장에 이어 구속영장 발부도 현직 대통령 최초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체포된 이후 공수처 조사에 일관되게 비협조적이었다. 사실상 검사의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대면조사 역시 체포 당일 한 차례만 진행됐고, 이후부터는 소환조사에 불응해 추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건 내란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공범들의 진술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상계엄 준비부터 선포, 실행까지 윤 대통령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던 이들이 수사기관에 당시 상황을 상당 부분 진술했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지난 17일 검찰로부터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과 계엄 3인방(여인형 방첩사령관·곽종근 특전사령관·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 5명의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검찰뿐 아니라 공조수사본부 내 경찰, 국방부의 수사 자료도 협조를 통해 참고하고 필요한 경우 영장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특수본),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 수사를 통해 구속돼 재판을 받게 된 피의자는 10여 명에 달한다. 박 총장과 계엄 3인방, 문 사령관 외에도 윤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을 준비하고 시도했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국회 출입을 통제하고 봉쇄를 시도했던 조지호 경찰청장·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이 줄줄이 수의를 입었다. 법조계에선 공범들이 모두 구속된 마당에 가장 죄질이 나쁜 윤 대통령의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많았다.
예상을 깨고 직접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등 거대 야당의 횡포와 국헌문란을 국민에게 알리려는 경고성 계엄"이라는 기존 주장을 고수하며 내란 혐의를 부인했다. 앞서 12·12 담화에서도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느냐.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 병력을 투입한 것이 폭동이느냐"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공범들 중 이같은 주장에 공개적으로 동조한 사람은 김 전 장관 정도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내란의 주범으로 윤 대통령을 가리키고 있다. "국회에 들어가려는 의원을 다 체포해. 잡아들여. 불법이야"(조지호 청장), "본회의장으로 가서 3명이 (의원)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해제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이진우 사령관),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곽종근 사령관) 등 윤 대통령의 관여를 입증할 주변의 진술은 넘쳐난다.
무엇보다 자신의 혐의에 대해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한 윤 대통령의 태도가 스스로를 가장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은 것이란 평가도 있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 조사에서 '대통령의 통치행위인 계엄은 판검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로 말한 뒤 이름이나 주소, 직업 등을 묻는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전날 영장심사에서도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결백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태도가 외려 독이 된 것이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청구서에 "범행에 대한 인정이나 반성이 없다"는 취지와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는 문구를 담았다.
한편 공수처와 경찰 등으로 이뤄진 공조수사본부는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이후 "향후 법과 절차에 따라 윤 대통령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