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한국은행이 물가를 자극하는 환율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환율이 안정되더라도 최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영향 때문에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높은 에너지 가격 수준이 장기화하면,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하 카드 사용이 제한될 전망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전날 3.0%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은 이창용 총재는 "경기 상황만 보면 지금 금리를 내리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현재 환율 수준은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이라든지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동결 이유를 설명했다.
12‧3 내란사태가 촉발한 정치 리스크 확대로 내수가 큰 충격을 받아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내란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30원 상승한 영향으로 물가가 걱정할 수준까지 오르면서 기준금리 동결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 원달러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는다. 내란사태 이후 1470원대까지 상승한 환율이 금리를 인하할 경우 1500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시추시설. 연합뉴스하지만 문제는 최근 에너지 가격의 급등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라니냐로 인한 한파와 난방 수요 증가, 여기에 공급 불안이 겹친 영향으로 분석된다.
라니냐는 동태평양 해수온도가 평년보다 0.5도 낮은 상태를 뜻하는데 최근 동태평양 해수온도는 평년보다 1.1도 낮은 상태다. 이와 함께 지구 온난화로 극지방과 중위도 지역의 기온차가 커지면서 제트기류가 약화해 북극 한파가 남하해 북반구에 극심한 추위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난방 수요가 늘면서 15일(현지시간)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전거래일보다 3% 상승한 백만 btu(열량 단위)당 4.08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종가 기준 최근 2년 사이 최고치다.
이날 WTI(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도 3.81% 오른 80.45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으로 80달러를 돌파했다. 12월 한 달 동안 천연가스와 WTI 가격은 각각 8%와 5.5% 상승한 상황이다.
또 미국은 지난 10일 러시아 에너지 당국과 기업, 유조선 등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취임 전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를 서두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조치로 중국과 인도로 우회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 타격이 불가피해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여기에 OPEC+(석유수출국 협의체)는 감산 규모 축소 시기를 올해 1월에서 4월로 연기했고, 한파로 인한 북미 지역의 원유 생산도 차질을 빚고 있다.
키움증권 심수빈 연구원은 "유럽의 천연가스 재고가 2022년 이후 처음으로 5년 평균보다 낮은 수준까지 내려왔고, 미국의 재고도 5년 평균 수준에 근접해 수급 여건이 타이트하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최근 미국 내 한파 발생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 발표는 공급 불안을 추가로 자극할 수 있는 이슈"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물가 상승 기류는 미국 12월 CPI(소비자물가지수)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CPI 상승률은 전월 대비 0.4%로 예상치에 부합했다. 하지만 에너지 부문만 보면 2.6% 상승해 전월 0.2%보다 크게 올랐다.
이에 따라 미국도 오는 29일 열리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페드워치를 보면, 오는 29일 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예상이 97.3%로 압도적 우세를 보인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에너지 및 식료품 가격의 불안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본격화할 슈퍼 트럼피즘(트럼프의 생각과 아이디어)에 따른 물가 리스크가 잠재해 아직 경계감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진투자증권 이정훈 연구원도 "연내 1~2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이 소멸하지 않았지만, 고용이 지금처럼 견고한 이상 연준은 급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트럼프라는 불확실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 역시 12월 소비자물가가 1.9%로 전월(1.8%)보다 상승했고, 올해 초 2%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물가 전망 경로상에서 환율과 유가 움직임, 공공요금 인상 시기 및 폭, 내수 흐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