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1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을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채상병 특검법과 지역화폐법을 처리하려고 했으나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동으로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의료대란 해결'을 우선시한 우 의장의 입장을 이해한다면서도 오는 19일 본회의에서 3개 법안을 한꺼번에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의 총선 공천 개입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해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시효가 지나기 전 김건희 특검법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3자 특검 추천' 내용을 넣은 채 상병 특검법도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넘어 재의결 가능성이 크지 않아 정쟁만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우원식 '제동'에 추석 전 본회의 특검법 처리 불발…민주, 19일 일괄 통과 목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민주당에 따르면 12일 의원총회에서 박찬대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의장과 충분히 협의했고 의료대란에 대한 국민 걱정도 크기 때문에 일정 기간을 정부·여당에 주는 것도 명분이 있다"며 "19일 3개 법안을 일괄 처리하는 것으로 얘기됐으니 수용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의원들은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반발도 있었다. 당초 민주당은 이날 대정부 질문으로 열린 본회의에서 법안 처리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절차를 밟기 위해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단독으로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과 지역화폐법을 의결해 본회의에 부의했다. 그러나 우 의장이 법안을 상정하지 않겠다고 하자 정청래 법사위원장 등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우 의장이 선을 넘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법안 처리 시점에 특히 민감했던 이유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 때문이다. 김 여사가 지난 4·10 총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추가한 김건희 특검법 내용 중 관련한 선거법 공소시효가 내달 10일 만료되기 때문에 그전에 법안이 처리·시행돼야 한다는 게 야당 주장이다. 26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처리 시 15일 이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거부권이 공소시효를 넘겨 행사될 수 있다. 반면 1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면 물리적으로는 공소시효 만료 전 재의결까지 추진할 수 있어 민주당이 법안 처리 연기에 동의한 모양새다.
채 상병 특검법의 경우 이번이 4번째(본회의 의결을 추진하지 않은 3번째 법안 포함) 발의로, 21대 국회 때부터 시작해 2차례 대통령 거부권 행사와 재의결 실패를 겪었다. 민주당은 그동안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을 대여 공세의 최전선에 두고 특검법도 처리도 최우선 순위에 둬왔다. 그러나 재의결 정족수(200석)를 넘기 위해 3차 까지는 없던 '제3자 특검 추천'안을 자체 발의하는 등 여당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며 속도가 늦춰진 모양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번에도 특검법 통과가 안 되면 국정조사를 추진할 것"이라며 "이후 공수처 수사가 끝나면 다시 특검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민주당은 특검법 중 공소시효등으로 인해 시의성이 대두된 김건희 특검법과 비(非)특검법이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지역화폐법까지 두 법안을 우선 상정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법은 19일까지 처리하면 재의결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우 의장의 판단에 동의하는 의견이 있었다"며 "특검법안 2개를 올리는 것 보다는 특검법 1개와 민생법안 1개를 올리는 것이 더 부담이 적을 것이라는 시각이었다"고 말했다.
냉각기 무색한 여야 정쟁 우려…"특검법 대신 민생법안에 힘줘야"
윤창원 기자다만 이 같은 판단이 무색하게 19일 본회의에서 야당의 요구대로 특검법 등 쟁점 법안들을 상정하면 일주일 간의 냉각기가 무색하게 여야가 또 다시 정쟁에 매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에서 민생 공통 공약을 추진하자며 협치(協治)의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현재는 그 성과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민주당이 이번에 법사위에서 처리한 민생 법안에 대한 여야의 '시각차'도 크다. 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국가 책무로 규정하는 내용의 지역화폐법은 민주당 입장에선 민생을 위한 당론 법안이지만, 국민의힘은 '재정 부담에 따른 국가채무 급증'을 이유로 결사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서민들을 안심시켜준다는 차원에서 추석 전 처리를 목표로 했지만 시기를 놓치면서 '추석밥상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때문에 민주당 내에선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 실망이 너무 크기 때문에 더 세게 공격하고,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등 '이재명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우 의장의 결정으로 인해 쟁점 법안의 추석 전 본회의 상정이 불발된 만큼, 연휴 기간 민생 이슈를 선점하려면 관련한 현안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당 관계자는 "국민도 뻔한 정쟁용 법안인 걸 알지 않겠느냐"며 "김건희 특검법과 채 상병 특검법 등 민생과 거리가 있는 사안 두 가지를 동시에 다루려 하기 보다는 민생 관련 현안에 힘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