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검찰총장 이원석은 교양과 집요함을 가진 검사로 평가받았다. 검사시절 내내 그가 사건을 그런 방식으로 처리했는지는 전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회적 이목을 끄는 '어둠의 사건'에서 이원석은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상관의 어지간한 방해 공작에 굴하지 않고, 사건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어찌됐든 진실의 한조각을 맞추려고 노력한 그런 검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애초에 검찰총장직은 그에게 어울리는 직책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인내와 차분함이라는 좋은 덕성을 가졌다. 하지만 권력과 맞서 검찰의 공정성을 지킬 용기를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임기 2년의 검찰총장에 취임한 그는 '큰형님' 윤석열 대통령과 '황태자' 한동훈 법무장관의 엄처시하에 끼었다. 임기초 천금같은 일년 사오개월의 시간을 겉돌았다. 수사기록 뭉치를 들고 집에 퇴근해 새벽까지 훑어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야당 편향의 표적수사를 더 부추겼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여야간 형평있는 수사를 지휘.감독하려 노력했다는 아무런 흔적은 없다. 두 권력 주변에서 위성처럼 맴돈 검찰총장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법무장관 한동훈이 떠나고 검찰총장으로 '이러면 안되겠구나'라고 겨우 현실을 각성한 시기가 올해 1월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마리 앙뜨와네트 발언' 후폭풍으로 이른바 '윤-한 충돌'이 발생하기 직전이다. 영부인의 주가조작과 명품백 혐의 처리를 두고 대통령과 서울중앙검장이 충돌했던 때와 그 시기가 겹친다. 이때서야 "검찰총장직을 던지겠다"며 '리틀 윤석열'로 불렸던 송경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옹호하고 나섰지만 그것도 4.10총선 때까지 유보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아무리 상념을 해봐도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명언만큼 검찰총장 이원석 처지를 잘 설명해주는 글귀는 없는 것 같다. 총선에서 참패한 대통령은 5월 13일 검찰 인사에서 측근 칼잡이들을 승진시키는 방식으로 토사구팽시켰다. 여사 보호라는 명제 앞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칼잡이들도 파리 목숨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의 속성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출근길, 이원석은 7초간 침묵했다. 겨우 한마디 터트렸다. 지금 돌아보면 한편의 블랙 코미디인 것이다. "인사는 인사이고, 수사는 수사입니다. 저는 검사들, 수사팀을 믿습니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박종민 기자그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들이 석달 뒤 알게됐다. 서울중앙지검장 이창수는 총장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심지어 수사 검사도 그를 들이받았다. 여사 조사 방식에 대한 불공정을 지적하자, 이창수는 "나만 조사하라"고 대들었다. 수사 검사는 "열심히 수사한 것 밖에 없는데 감찰 대상으로 분류돼 화가 난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사표를 던지겠다고 으름장도 놓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 그대로다. 그 순간 이원석은 30년 검사 생활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지나는 경험을 하며 "넌 무엇을 기대했는가?"라고 자문했을지 모른다.
검찰총장으로 체모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뭇머뭇 그의 스텝은 계속 꼬여갔다. 그의 말과 행동은 분열됐다. 명품백 사건을 검찰 수사심의원회의 회부하던 날, 그는 "검찰 판단은 적절했다"고 쉴드를 쳤고, 수심위의 불기소 결정에 대해선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 곧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리분별이 분명했던 검사 이원석이 검찰총장 감투를 쓰고 왜 이렇게 변했을까. 이 총장은 스스로 인내심의 발로라고 변명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대한민국 검찰총장이 대통령 권력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것이라고 단호하게 해석한다.
명품백 사건으로 청탁금지법을 무력화시킬 것 같으면 검찰총장은 본래 특별수사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해당 특별수사팀을 구성한다는 것은 검찰 관례로 보면 기소를 전제로 한 판단이었다. 기소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무엇하러 수사팀을 구성했겠는가. 실컷 방관하다가 수사팀을 급조했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는 권력 앞에서 우물쭈물했다.
필자는 검사 이원석 개인을 아직도 평가하고 존경한다. 공직자의 품위로 본다면 그만큼 스스로를 절제하고 다독였던 사람도 드물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검찰총장으로서 이원석의 지도력은 '빵점'이라 생각한다. 총장직 내내 그는 우물쭈물했다. 그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결정할 용기를 상실했던 검찰총장이었다고 이원석을 기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