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관님께서 (딥페이크 프로그램으로 합성된) 이미지를 보여주셨어요. 가짜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놀랐어요. 원래는 제가 분명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인데 다른 사람의 나체 사진이랑 합성해놨더라고요."
20대 여성 A씨는 이른바 '지인 능욕' 성범죄 피해자다. 가해자들이 놀이처럼 부르는 이 말의 의미는 여성 지인의 얼굴 사진을 나체에 합성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하는 행위를 뜻한다. A씨는 최근 불특정 다수의 피해가 속출하며 딥페이크 성범죄가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부각되기 이전부터 이 범죄가 피해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몸소 겪었다. 그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10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 7월 20대 남성 B씨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허위 영상물 편집·반포),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송치했다.
B씨는 지난 2월부터 7월 초까지 A씨를 비롯한 여성 10명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성 착취물 제작을 의뢰하고, 완성된 딥페이크 이미지 수백 장을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 등을 통해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알게 된 지인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A씨와는 2018년 무렵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만나 알게 됐는데, 2020년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그러나 A씨와 B씨의 연결고리는 남아 있었다. 바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였다.
"인스타그램 스토리(24시간 동안만 게시되고 사라지는 게시물)에 올렸던 제 사진을 활용해서 딥페이크를 만들었더라고요. 어쩐지 매번 스토리를 본 계정 중에 B가 꼭 있었어요. 피해 사실을 알고 난 뒤로 계정을 비공개로 돌렸고, 제 사진은 웬만하면 안 올립니다."
A씨는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뒤로 합성된 이미지가 얼마나,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공포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번에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가 엄청 이슈가 되면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가해자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도 알려졌잖아요. 관련 기사를 보면서 '내 사진을 보고도 사람들이 저런 대화를 했을까' 싶어서 두렵더라고요. 괜찮은 줄 알았는데…밤에는 아무래도 괴로워요. 잊어버리려고 하는데도…."
B씨는 경찰 조사에서 "호기심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지난 7월 18일 기소돼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재판부에 여섯 차례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4일에도 B씨 변호인 측에 전화가 와서 '합의할 생각 없느냐'고 묻더라고요. 혐의가 인정돼도 최대 형량이 5년이라는데 그렇게 형을 받을 가능성도 낮고, 가해자는 5년을 살고 나와도 여전히 20대거든요. 또 범죄를 저지를까 봐, 그게 제일 무섭죠."
딥페이크 성범죄가 급속도로 퍼지자 지난달 27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은 처음으로 텔레그램 법인을 내사하는 등 엄정 대응에 나섰다.
특히 경찰은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해 범죄 창구로 활용되고 있는 텔레그램의 대표 등에 대해 혐의가 특정되면 입건은 물론 국제 공조를 통해 강제 수사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텔레그램에 대해 성폭력범죄 처벌특례법상 방조 혐의 등으로 입건 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A씨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텔레그램 등 딥페이크 범죄가 확산되는 통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관련법에 명시된 처벌 수위도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접 당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시선이 가장 화나요. 가해자에게 아무 잘못도 저지른 적이 없는데 그냥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당한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